우리민족 숨결 곳곳에 배어 있는 태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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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 숨결 곳곳에 배어 있는 태백산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3.04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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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제사지내던 천제단 3기, 산신단, 돌무지군, 소도 등

 

태백산은 여러번 올랐다. 굳이 횟수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대여섯번 되는 것 같다. 겨울산도 좋고, 봄이나, 여름, 가을 산도 좋다.

태백산은 흙산이어서 지루하지만 편안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더해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 우리 민족의 숨결이 배어 있는 소재가 곳곳에 남아 있어 고대사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 태백산 출발지의 석장승 /사진=김인영

 

입구에 들어서면 만나는 것이 석장승(石長丞)이다. 경주 괘릉에서 보는 문인석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돌미륵 같아 보이기도 하다. 원래의 위치는 북쪽 1,200m 지점인 미루둔지(장승둔지)에 있던 것을 1950년대에 태백산 망경사로 옮겼는데, 1987년 태백시가 현재 위치로 옮겨 놓았다.

이 돌장승은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과 연관지어 태백산신의 수호신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울러 석상의 코 일부가 마모되었는데, 경주 남산 불상의 코가 떨어져 나간 것과 비슷하다. 석상의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의 미신이 초래한 결과인 듯하다. 제작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 단군성전 /사진=김인영

 

조금 더가면 단군성전이 나온다. 현대에 만들어 진 건축물이어서 역사성은 그다지 없다.

성전은 1975년 김대년씨를 비롯해 지역의 유지들이 모여서 국조단군봉사회를 구성하고, 성금을 모아 1982년에 지은 건물이다.

성전 안에는 단군(檀君)의 영령과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이 곳에서 단군 제례를 지내고 있다.

태백산을 오를 때마다 이 곳을 들렀지만 이 곳이 단군과 어떤 의미로 연결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삼국유사」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웅은 삼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太伯山)[태백산은 즉 지금의 묘향산(妙香山)이다.]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서 그곳을 신시(神市)라고 불렀다. 이 분을 바로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한다. 환웅천왕은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ㆍ생명ㆍ질병ㆍ형벌ㆍ선악 등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시켰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환웅이 내려온 태백산을 북한의 묘향산으로 비정했다. 그러니 이 태백산이 아니다. 게다가 「삼국유사」의 태백산(太伯山)은 ‘맏 백’(伯)자여서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있는 태백산(太白山)과 한자가 다르다.

고대 사학자 가운데 「삼국유사」에서 적시하는 태백산이 백두산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어찌했건 백두산과 묘향산은 갈수 없는 곳이니, 단군신화를 모시는 이들이 태백산에 성전을 만들었을 것이다.

 

▲ 단군성전 내부 /사진=김인영

 

태백산 출발지는 당골이다. 무당들이 사는 마을이다. 5·16 이전에는 당골에 꽤 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박정희 정부가 미신 타파 운동을 벌이면서 무당들이 마을을 떠나고 지금은 가옥이 몇채 남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 하산길에 무당들이 굿하는 소리가 들리곤 한다.

이 당골에서 천제단까지의 행정구역 명칭이 태백시 소도동이다. 한자로는 所道洞이지만,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 나오는 소도(蘇塗)와 발음이 같다. 삼한(三韓)시대에 소도가 있던 자리였을 것이다.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는 소도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귀신을 믿기 때문에 국읍(國邑)에 각각 한 사람을 골라서 천신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천군(天君)이라 한다. 또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으니, 이 곳을 소도(蘇塗)라고 한다. 소도에는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다른 지역에서 그 지역으로 도망온 사람은 누구든 돌려보내지 아니하므로, 도둑질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이 소도를 세운 것은 부도(浮屠)와 같으나 행하는 바의 옳고 그름은 다르다.”

 

▲ 산신전 /사진=김인영

 

출발지에서 문수봉(文秀峰) 쪽으로 방향을 틀어 20여분 올라가면 산신단이 나온다. 큰 나무에 제단을 쌓아 놓았다.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산신제를 지낼 때 특별한 떡을 만드는데 수리떡이라고 한다. ‘수리수리 마수리’, 주문을 외우며 소원을 비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마도 신라 일성왕이 태백산에 와 산신제를 지냈다는 곳이 여기가 아닐까.

「삼국사기」 신라본기 일성이사금조(逸聖尼師今, 재위 134~154년)에 이런 기록이 있다.

 

“5년(서기 138) 겨울 10월, 임금이 북쪽을 두루 살펴보고, 태백산(太白山)에서 몸소 제사 지냈다.” (冬十月 北巡 親祀太白山)

 

음력 10월이면 양력으로 11~12월인데, 그 추운 겨울철에 임금이 태백산 정상에까지 올라갔을까. 산기슭에 있는 이곳 산신전에서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 문수봉의 돌무지군 /사진=김인영

 

문수산 정상을 오르면 거대한 돌무지군이 나타난다. 해발 1,517m 되는 산봉우리에 이 많은 돌무지는 누가 만들었을까. 이 곳에서 징을 치며 염불을 외우는 사람들이 있다고들 한다. 무언가를 기도하는 사람들이 수천년 동안 이 봉우리에 와서 돌을 하나씩 쌓아 올린 것이 이 돌무지군을 만든 것이다.

흔히 등산을 하면 어느 산에서나 돌무지를 만나게 되는데, 우리나라 돌무지엔 공통점이 있다. 돌무지 꼭지점에는 평평한 돌을 올려 놓는데, 그 방향이 동쪽이라는 점이다. 동쪽은 태양이 떠오르는 곳, 밝음이 시작되는 곳이다. 태양 숭배의 일종이다.

 

▲ 천제단 하단 /사진=김인영

 

문수봉에서 태백산을 향해 능선을 가다보면 천제단(天祭壇)의 남쪽 끝 하단(下壇)이 나온다. 그 위가 천왕단, 맨 북쪽이 장군단이다.

천제단은 천왕단, 장군단, 하단의 3기로 구성되어 있다.

천왕단(天王壇)은 둘레 27.5m, 높이 2.4m, 좌우 폭 7.36m, 전후 폭 8.26m로, 자연석으로 샇았다. 돌로 만든 단이 아홉단이어서 구단탑이라고도 한다. 이 아홉계단은 구천(九天)을 의미한다고 한다.

매년 개천절에는 이 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언젠가 태백산을 올랐을 때, 이 곳에서 20대쯤 되는 젊은 무녀 둘이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춤을 추어 신이 들린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장군단(將軍壇)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으로 천왕단에서 북쪽으로 3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하단은 천왕단에서 남쪽으로 300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정확한 이름이 없어 하단이라고 하는데, 일부에서는 부소단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 천제단 천왕단 /사진=김인영

 

중앙의 천제단은 원모양으로 하늘(天)을 의미하고, 북쪽 장군단은 삼각형으로 사람(人)을 뜻한다. 장군이 가운데 하늘님을 지키는 형국이다. 남쪽 하단은 사각형으로 땅(地)을 의미한다. 천-지-인의 원리로 만들어 져 있다.

중요민속문화재 228호로 지정되어 있다.

 

▲ 천제단 장군단 /사진=김인영

 

이능화의 「조선무속고」에는 이렇게 정리했다.

 

“태백산신이란 무엇인가. 3도의 사람들이 산마루에 당을 지어 신상을 모셔 놓고 제사를 마치게 되면 소를 매어 놓고 갔다. 해마다 4월 초파일이면 그 태백신이 읍의 성황당에 내려온다고 하여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5월 5일이 되면 환산(還山)시킨다. 이 신에게 제사 드릴 때 조그마한 선미라도 먼제 세상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동국여지승람」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태백산사(太白山祠)는 산 정상에 있는데, 세간에는 천왕당이라고 한다. 강원도와 경상도의 이 산 주변 마을에서 봄, 가을에 제사하는데, 신좌 앞에 소를 매어두고는 갑자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난다. 만약에 돌아보면 소를 이낀다 하여 신이 죄를 준다고 한다. 3일이 지난 뒤에 관청에서 그 소를 거두어 이용하는데, 이를 퇴우(退牛라고 한다.”

 

▲ 단종비각 /사진=김인영

 

천제단에서 내려오면 단종 비각이 있다.

한성부윤을 지낸 추익한(秋益漢)이라는 신하는 단종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쳤는데, 가을이면 매일같이 머루를 따다가 영월에 귀양온 단종에게 바쳤다. 그러던 어느날, 머루를 다서 산에서 내려오는데, 단종이 곤룡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유유히 태백산을 가시는 것을 보았다. 놀란 신하는 “대왕마마, 어디로 가시나이까.”하니, 단종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오”라고 대답하고 사라졌다. 이 충신이 눈을 의심해 영월 읍내로 들어갔더니 단종이 사약을 마시고 변을 당한 뒤였다. 그는 단종을 본 그 자리에 가서 죽었다. 단종은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고 한다. 후에 지역 사람들이 이 곳에 비각을 세워 단종을 제사지냈다고 한다.

 

▲ 용정 /사진=김인영

 

조금 더 내려오면 만경사다. 만경사엔 유명한 우물이 있는데 바로 용정이다. 천제를 지낼 때 제수로 사용하던 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1,470m)에 위치해 있다. 이 샘은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제일 먼저 받아 우리나라 100대 명수 중 으뜸이라고 한다. 태백산을 등산하는 사람들은 이 우물의 물맛을 꼭 보아야 한다. 태백의 정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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