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참 가치 보여준 영화 「더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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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참 가치 보여준 영화 「더 포스트」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3.0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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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펜타곤 문서 폭로한 워싱턴포스트 실화…여성 언론인의 결의 돋보여

 

▲ 대니얼 엘스버그 /위키피디아

1964년 8월 2일 북베트남 통킹(Tonkin)만 해상에서 美 해군은 북베트남 해군에 선제공격을 가했다. 이에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이 미 해군 구축함 USS 매독스함에 반격했고, 미 해군은 항공모함과 함재기를 동원해 북베트남의 어뢰정 3척에 손상을 입히고 4명의 사망자와 6명의 부상자를 냈다.

미국은 자기들의 도발로 시작된 이 전투를 역이용했다. 당시 미국은 남베트남에 미군을 파견해 베트콩 진압에 나섰지만, 북베트남엔 개입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독립국인 베트남을 공격하고, 전쟁을 확대했다.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는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기록물로 남겨 국방부1급 기밀문서로 보관하고 있었다. 펜타곤 문서(Penagon Papers)로 알려진 이 보고서는 2차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1968년 5월까지 미국이 인도차이나에 개입한 기록을 담았다. 책임자는 맥나마라 장관이었고, 대니얼 엘스버그(Daniel Ellsberg)라는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연구원이 문서작성 과정에 참여했다.

▲ 로버트 맥나마라 /위키피디아

엘스버그는 전직 해군 장교로, 처음에는 인도차이나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적극 지지했으나 펜타곤 문서 작성이 끝나갈 무렵에는 미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인도차이나에서의 미국의 저의를 폭로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을 강하게 느꼈고, 몰래 극비문서를 빼돌려 평소에 잘 알던 뉴욕타임스의 닐 시한(Neil Sheehan) 기자에게 넘겼다. 뉴욕타임스는 1971년 6월 13일 6개 면에 걸쳐 이 문서를 폭로, 보도했다.

이 펜타곤 문서 안에는 통킹만 사건을 비롯해 ▲프랑스 점령시의 미군의 지원 ▲베트남전 확대정책 ▲북베트남 침공등의 극비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미-베트남 관계: 1945-1967’(United States–Vietnam Relations, 1945–1967)이라는 공식명칭의 이 보고서는 총 47권에 약 3,000쪽의 설명과 4,000쪽의 부속 서류로 구성되어 있다. 보고서에는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법률적,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내용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 영화 포스터 /네이버영화

영화 「더 포스트」(The Post)는 1971년 뉴욕타임스와 함께 ‘펜타곤 보고서’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지휘를 맡았고, 메릴 스트립이 워싱턴포스트의 오너인 캐서린 그레이엄 역할을, 톰 행크스가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 역할을 맡았다.

1971년의 상황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건물이 드러나고 활자 신문을 짜는 조판공, 윤전기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신문의 잉크 냄새 물씬 나는 영화였다.

「더 포스트」는 미국이 30년간 은폐해 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담긴 정부기밀문서를 세상에 폭로하기 위해 언론사의 운명을 건 워싱턴포스트 오너와 편집국장, 기자들 소명의식을 고스란히 그려냈다.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의 지시로 작성된 ‘펜타곤 문서’에는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베트남전 개입을 숨겨왔는지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미국의 참전 계기로 알려진 북 베트남군 선제공격(통킹만 사건)이 모두 조작이었고, 승산 없는 전투에 계속된 파병, 선거 조작, 거짓 선언으로 전 세계를 우롱하며 전쟁을 확대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펜타곤 문서’ 작성에 참여한 댄 엘스버그는 진실을 깨닫고 7,000장에 달하는 이 문서를 뉴욕타임스에 제보했고, 1971년 6월 13일 문서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후 1971년 6월 15일 닉슨 정부는 이를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며 후속 보도를 금지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도 그 중 4,000여 페이지를 입수했다. 여성 발행인이었던 캐서린 그레이엄은 보도를 망설였다. 이 문서를 보도할 경우 상장 무산으로 자금수혈이 어려워지고, 회사의 존폐를 고려해야 했다. 게다가 캐서린은 자신의 친구인 맥나마라에게 위험을 줄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언론인의 사명감으로 문서 보도를 주장한 편집장 벤 브래들리의 설득에 그녀는 백악관의 탄압에 맞서 보도를 결심했다.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문서’ 보도 실화는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폭로로 남았고, 이후 미국 최대의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이어졌다.

 

▲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이끌렸다”며 “오늘날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라웠고,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영화 제작의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스필버그는 “언론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자유로운 보도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라며 연출 의도를 소개했다.

영화의 초점은 브래들리 편집국장 역할을 한 톰 행크스보다 워싱턴포스트 오너 회장 역할을 한 메릴 스트립이었다. 메릴 스트립은 1970년대 남성 위주의 미국 사회에서 당당히 자신의 역량을 드러낸 여성 지도자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메릴 스트립은 “여성으로서 더 많은 난관에 부딪히고 반대 세력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캐서린은 성의 굴레를 벗어나 동료들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에 달려들었고, 이것이야말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언론의 자유, 언론의 참 가치를 드러낸 영화였다.

 

▲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 스필버그 감독과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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