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先人)들의 독도 인식과 항해①…고래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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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先人)들의 독도 인식과 항해①…고래의 기록
  • 이효웅 해양전문가
  • 승인 2018.02.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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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지리지 “우산과 무릉이 해중에 있어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해양탐험가 이효웅씨가 독도를 직접 체험하고 연구한 '선인(先人)들의 독도 인식과 항해' 논문을 세편에 나눠 게제합니다. /편집자주

 

1. 들어가며

 

필자는 2002년 7월 29일, 1인용 해양탐사선 코스모스호를 자작하여 독도에 단독 입도하였다. 합판 두 장(480x120cm,0.5톤)에 FRP로 제작하여 50마력 선외기를 장착하고 동해 어달항에서 출항해 울릉도·독도탐사에 성공하고 8일 만에 귀항하였다. 이후 동호인들과 함께 보트, 요트, 범선, 함정 등을 이용하여 13회에 걸쳐 독도·울릉도 탐사를 하였고, 범선을 이용하여 카약으로 독도·울릉도 해식동굴 탐사를 4회를 하였다.

울릉도·독도 해역에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조경수역이 있는데, 예로부터 이 지역에는 수종(水宗)이 있어 항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필자도 저기압이 지날 때 안개와 파도가 일어 항해하기 어려웠고 일행들이 흩어져서 찾느라 헤매던 때도 있었다.

항해과정에서 기상이 나빠서 혼난 경우, 선박의 침수, 항해장비 고장, 엔진고장 등 여러 가지 항해 경험과 해류병을 이용한 동해 해류연구와 울릉도·독도 사진촬영을 통해 ‘선인들의 독도 인식과 항해’를 추론해보자고 한다.

 

▲ 카약을 타고 독도를 탐험하는 이효웅씨 /이효웅 제공

 

2. 선인들의 독도 인식

 

512년 6월, 이사부(異斯夫)는 목우사자를 앞세워 우산국을 복속하여 동해의 제해권을 확보하였다. 이후 왜는 200여 년간 신라를 침범하지 못하였으므로 신라와 왜는 독도를 알지 못하였다고 본다.

930년(고려 태조13) 우릉도(芋陵島)에서 백길(白吉)과 토두(土豆)를 보내 토산물을 바치었고, 1032년(덕종1)에 우릉성주(羽陵城主)가 아들 부어잉다랑(夫於仍多郞)을 보내 래조(來朝)하고 토산물을 헌상하게 했다. 이때부터 우릉(于陵)이 우릉(羽陵)으로 글자가 바뀌는데, 필자는 우릉(羽陵)은 잘못 써진 것 보다 우산국(독도)와 무릉도(울릉도)를 합친 글자라 생각한다. 독도는 쌍 섬으로 멀리서 보면 양 날개를 펼친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릉(羽陵)을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고려 초부터 독도를 알고 사용했다고 본다.

1412년(태종12)에 유산국도(流山國島) 사람 백가물(白加勿) 등 12명이 고성(高城) 어라진(於羅津)에 와서 정박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무릉도(武陵島)에서 생장하였는데, 그 섬 안의 인호(人戶)가 11호이고, 남녀가 모두 60여 명인데, 지금은 본도(本島)로 옮겨 와 살고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무릉도 주민들은 동쪽바다의 무인도(독도)를 알았을 것이고, 무릉도 주민들이 육지에 살면서 신비의 섬 울릉도·독도 이야기는 이웃에 삽시간에 전해졌으리라 짐작한다.

1416년(태종16)에 호조 참판(戶曹參判) 박습(朴習)이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강원도 도관찰사(江原道都觀察使)로 있을 때에 들었는데, 무릉도(武陵島)의 주회(周回)가 7식(息)이고, 곁에 소도(小島)가 있고, 전지가 50여 결(結)이 되는데, 들어가는 길이 겨우 한 사람이 통행하고 나란히 가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옛날에 방지용(方之用)이란 자가 있어 15가(家)를 거느리고 입거(入居)하여 때로는 가왜(假倭)로서 도둑질을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무릉도(武陵島)는 울릉도를 가르치고 소도(小島)는 오늘날 죽도를 가르치며 특별한 이름이 없었다. 조선 초부터 울릉도 사람들의 왕래로 울릉도 주변 정세를 알기 시작하였고, 나라에서는 본격적으로 김인우를 안무사로 임명하고 울릉도 정세를 살피게 하고 울릉도에 도항한 백성들을 데리고 왔으며, 김인우는 울릉도를 세 번(1416년,1417년,1425년)이나 다녀왔다. 김인우(金麟雨)를 우산(于山)·무릉(茂陵)등지 안무사(按撫使)하였는데, 이때부터 나라에서도 우산과 무릉 두 섬을 알고 있었고 두 개의 섬을 살피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무릉(茂陵)은 전부터 울릉도를 나타내었고, 우산(于山)은 무릉 보다 앞에 쓰므로 무릉 보다 더 중요하거나 울릉도 부속섬 전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죽도(竹島)를 나타내는 말은 아니다.

독도에 관한 또 다른 기록은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강원도>삼척도호부>울진현 편에 (于山、武陵二島在縣正東海中。【二島 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2섬이 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 ‘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고 하였다. 죽도는 울릉도 동쪽에 있으며 남북으로 700m, 동서로 400m 정도 되는 평평한 섬으로 저동항에서 4km, 내수전에서 3km, 관음도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어 항상 볼 수 있는 섬이고 비상시에는 연기로 연락을 취하기도 한 가까운 섬이다.

 

필자는 육지(삼척 소공대)에서도 140km 떨어진 울릉도를 맑은 가을철이나 태풍이 지날 때 여러 차례 보았으며 사진도 촬영했다.(2010.9.2, 9.4, 9.27, 11.3, 11.13, 2011.9.6.) 울릉도에서 독도를 항해하다 중간 정도인 40km이상 가면 울릉도를 볼 수 있다. 울릉도 내수전전망대나 독도전망대가 아니더라도 울릉도 동쪽 또는 동남방향으로 200m이상 올라가면 약90km 떨어진 독도는 날씨가 맑으면 보인다. 필자는 2002.7.29 자작보트인 코스모스호로 울릉도와 독도 중간해역에서 독도를 처음 보았고, 2009.7.23.18:00 독도전망대에 올라 울릉도에서 독도를 처음 보았다.

 

▲ 강원도 삼척시 소공대에서 촬영한 울릉도 /이효웅 촬영

 

<표-1> 울릉도 관측고도에 따른 독도 시인 높이

울릉지역

관측자고도

m

독도거리

km(해리)

최소고도/실제고도

m

실제고도%

성인봉

984

93(50.2)

54/114

67.8

행남등대

80

88(47.5)

190/-22

0

독도전망대

280

89(48)

38.9/129.1

76.9

내수전전망대

440

90(48.6)

5.2/162.8

96.9

안용복기념관

320

91(49.1)

31.4/136.6

80.9

아래통구미

220

93(50.2)

84.4/83.6

49.8

 

지구곡률을 이용한 가시 수평선 산출 공식 D=2.09(√H+√h), h=(D/2.09-√H)₂사용하여, D=관측 거리(해리), 1해리=1.852km, √H=관측자고도m, √h=최소고도m이며 최소고도를 독도 대한봉(168m) 고도에서 빼서 실제고도를 산출함.(고도산출은 다음지도 사용)

 

▲ 독도 전경 /이효웅 촬영

 

선인들의 독도 인식 기록은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 나타난 것보다 먼저인 1416년(태종16) 이전에 독도를 알고 있었다. 김인우를 ‘우산(于山)·무릉(茂陵)등지안무사’라 하였으므로 무릉은 울릉도를 나타내며 우산은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에서 보이는 부속 섬 전체를 나타냈다고 본다.

예전에는 항해장비 없이 사공들의 경험과 감각으로 항해를 하였다. 그러므로 멀리 떨어진 울릉도를 가려면 바람의 방향과 바람의 세기, 계절풍 등을 가늠해 항해했다. 사공의 판단력이 절대적이어서 사공의 능력에 따라 조업 및 상업을 하므로 결과도 많이 달랐다. 다행히 동해 가운데 우뚝 솟은 984m의 성인봉은 멀리서도 잘 보이므로 동해의 이정표였고, 섬에 다다르면 섬이 높고 커서 어느 방향으로 바람이 불던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 잔잔하여 항구처럼 안전하게 정박하지는 못하여도 피항지 역할을 하였다.

울릉도는 비교적 쉽게 갈 수 있으나 독도는 더 멀고 작으므로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독도를 발견하는 경우는 대부분 강한 바람으로 인해 황천(荒天)에서 사방을 헤매다 겨우 만날 수 있는 섬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독도를 보았거나 독도에 상륙하였어도 믿지 않기 때문에 소문만 있고 실제로는 볼 수 없는 울릉도 동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 알려져서 사람마다 우산도, 요도, 삼봉도 등으로 불러졌다.

 

1476년(성종7)에 동해 양양 앞 바다에 이상향의 섬인 요도(蓼島)가 있다고 소문이 나서 섬에 도망간 사람들을 불러들이려고 섬을 찾으러 나섰다.

함경도 관찰사는 김자주와 송영로(宋永老), 그리고 전일(前日)에 갔다 온 김흥(金興)ㆍ김한경(金漢京)ㆍ이오을망(李吾乙亡) 등 12인에게 마상선(麻尙船) 5척(隻)을 주어 삼봉도를 찾게 하였다. ‘지난 9월 16일에 경성(鏡城) 땅 옹구미(甕仇未)에서 배를 출발하여, 섬으로 향해 같은 날 부령(富寧) 땅 청암(靑巖)에 도착하여 자고, 17일에 회령(會寧) 땅 가린곶이[加隣串]에 도착하여 잤으며, 18일에는 경원(慶源) 땅 말응대(末應大)에 도착하여 잤고, 25일에 섬 서쪽 7, 8리(里) 남짓한 거리에 정박하고 바라보니,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벌여 섰고, 그 다음은 작은 섬, 다음은 암석(巖石)이 벌여 섰으며, 다음은 복판 섬이고, 복판 섬 서쪽에 또 작은 섬이 있는데, 다 바닷물이 통합니다. 또 바다 섬 사이에는 인형(人形) 같은 것이 별도로 선 것이 30개나 되므로 의심이 나고 두려워서 곧바로 갈 수가 없어 섬 모양을 그려 왔습니다.’고 하였다.

함경도에서도 울릉도를 자주 다녔는데 김한경은 울릉도를 세 차례나 다녀왔다. 김자주와 김한경의 항해경로를 살펴보면, 함경도 경성에서 출발하여 청암과 회령에 가서 전에 갔다 온 사람들을 싣고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경원의 말응대(말응목:대동여지도)이다. 이곳은 오늘날 원산 앞 호도반도로 여기에서부터 북서풍을 타고 남동쪽으로 350km 정도 항해하여 울릉도 북동쪽 삼선암(섬 북쪽의 세 바위) 앞 약3km에 도착하였다. 관음도(작은 섬)를 지나 죽도(복판 섬) 사이에서 내수전 절벽(암석이 벌려 섰음)과 북저바위(복판 섬 서쪽 작은 섬)을 살피던 중 내수전 절벽 아래 갯바위에 있는 인형(가재) 30개를 발견하였다.

함경도 경성에서 9일 만에 울릉도에 도착하였는데, 지친 항해로 섬 가까이 오니 이상한 사람들이 보이므로 겁이 나서 상륙도 못하고 섬 모양을 그려가지고 왔다. 김자주 일행 중에 울릉도를 여러 차례 다녀 온 사람이 있었는데도 가재(강치)를 구별하지 못하였던 것은 그 만큼 항해가 힘들었고, 북쪽에서 남쪽을 보는 역광 상태로 가재들의 서 있는 모습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사람처럼 보여 잘 구분 할 수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일반적인 항해(순항)에서는 성인봉을 보고 항해하므로 현포 쪽으로 항해를 하는 것이 정상이나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해류를 타고 동쪽으로 흘러 삼선암 까지 가게 되었다고 본다. 바다 섬 사이에는 인형(人形)(가재:강치) 같은 것이 별도로 선 것이 30개나 되므로 의심이 나고 두렵고 무섭다고 하였는데, 울릉도의 동쪽 관음도와 내수전 사이에는 해식동굴이 10여개 있고 갯바위가 많아 강치들의 보금자리였다. 필자는 울릉도 해식동굴탐사(2015.7.30.) 시 어떤 동굴은 너른 몽돌광장으로 되어있는데 이런 곳은 가재(강치)들의 서식지와 보금자리였다.

이와 같이 나라에서는 요도(삼봉도)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실제 다녀 온 것은 요도(삼봉도)가 아니라 무릉도(울릉도)에 다녀왔다. 독도(삼봉도:요도)는 멀리서 보면 하나, 둘, 셋(동도, 서도, 탕건봉)으로 보이므로 삼봉도라 부르게 되었다.

세종 때부터 찾기 시작한 요도(蓼島)는 성종 때 와서도 찾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였다. 요도는 황천에서만 보이고 다녀 온 사람도 다시 찾으려면 찾을 수 없는 미지의 섬으로 결국 우산국의 우산도(于山島)로 불리게 되었다고 본다.

 

울릉도 성인봉이나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사방을 살피게 되는데, 삼척영장 장한상은 1694년 ‘울릉도 사적(事蹟)’에서 “비가 멈추고 안개가 걷힌 날에, 우리는 성인봉을 오르고, 2개의 정상을 보니, 북쪽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고, 또 하나는 하늘에 우뚝 솟아 남쪽으로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삼봉인 것을 알았습니다. 서쪽을 보고, 우리는 수평선에서 대관령 산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동쪽 바다 속으로 진방(동남동)에 어딘지 섬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울릉도의 1/3정도이고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울릉도와는 불과 300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쪽과 북쪽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물빛과 하늘빛이 같았습니다. 섬의 산봉우리에 올라 저 나라 강역을 자세히 살펴보니, 아득할 뿐 눈에 들어오는 섬이 없어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는데 울릉도의 지리적 형세는 아마도 저 나라와 우리나라 사이에 있는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독도의 방향, 거리, 크기 등을 설명하였고, 대관령(태백산맥:두타산 165km)이 보인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장한상은 울릉도에 일본인들이 쳐들어 왔다하여 울릉도를 지키고 조사하기 위하여 울릉도를 샅샅이 조사하고 돌아왔다. 이후 나라에서는 울릉도에 숨어 사는 조선 해민들을 데려오고 일본 해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릉도를 2-3년마다 정기적으로 수토(搜討)하였다.

 

< 이효웅 프로필 >

 

●1953년생, 해양탐험가, 해양사진가

(사)이사부기념사업회 이사, 범선 코리아나호 크루,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위원

●사진첩

2010 사진으로 보는 動트는 동해(2010 강원도동해교육청)

정라진(汀羅津) 근·현대 사진전(2012 삼척시립박물관)

●논문

가야와 왜의 주형토기 및 고대선박 고찰(2015 해양수산부)

이사부, 삼척 출항의 재조명(2016 한국이사부학회)

동해 해류 연구(2017 해양학자대회)

●상훈

2008년 제2회 자연재난 사진 및 영상공모전 대상(대통령표창)

2015년 홍조근정훈장(초등교사 퇴임)

●사진전

2008년 독도 사진전(삼척)

2016년 ‘아름다운 독도’ 전국 순회전(삼척, 인천, 서울, 목포, 제주, 여수)

2017년 ‘아름다운 독도’(서울, 동해, 삼척, 목포)

2016-2018 ‘아름다운 독도’: 지하철 종합운동장역 9호선9번, 2호선4번 출구(상설전시)

2017년 ‘목우사자 이야기’(삼척)

2018년 ‘한국의 해식동굴’(목포), ‘삼척 해안선 104km’(삼척)

●해양탐사

2002년 자작보트 코스모스호(1인승 0.5톤), 레저보트 최초 독도 단독입도

2003년 한반도일주, 코스모스호 8,000km 항해

2011년~ 등대호, 코리아나호, 카약 등

2014년~해류병 투하 1,110개(동해해류 연구), 회수21개(국내17개, 해외4개)

●해양사진

한국의 섬, 독도, 해식동굴, 괭이갈매기, 동해안, 파도, 기암, 목우사자 등

●홈페이지: www.isabu.kr, www.cosmosland.com

●이메일: cosmos4645@naver.com

●연락처: 010-6390-7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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