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희의 노동법 다르게 보기] 노동법에 만병통치약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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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희의 노동법 다르게 보기] 노동법에 만병통치약이 있을까?
  • 배동희 노무사
  • 승인 2023.03.2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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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희 노무사] 만병통치약이 있으면 좋겠다.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고 하나만 먹어도 모든 것이 해결되는 그런 약 말이다.

모든 질병에 효과가 있는 만병통치약은 의학에서 있을 수 없다. 사람마다 몸 상태나 체질 등이 다르고, 여러 가지 질병이 있고 또 증상이 서로 반대로 나타나는 질병(예: 비만-저체증, 고혈압-저혈압, 변비-설사)도 많기에 한 가지 약이 모든 질병에 맞는 효과를 내기는 불가능하다. 

돌팔이는 이런 만병통치약을 떠벌이는 사람이다. 반면 명의(名醫)는 돌팔이에 비해 재미없고 하나마나 뻔한 얘기를 한다. “음식 조절하고 운동 꾸준히 하면서 체중 관리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고 잠을 푹 자도록 하세요” 뭐 이런 얘기다.

동양권의 전설적인 명의로는 삼국지로 유명한 ‘화타’와 더불어 ‘편작’이 있다. 신의(神醫)라고 일컬어지는 편작은 이미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치는 자신의 재주보다도, 사람들의 병을 미리 예방하는 재주를 지녔던 자신의 형들의 재주를 높이 쳤다. 편작의 작은 형은 중병으로 악화되기 전에 작은 증상을 보고, 큰 형은 병이 생기기 전에 얼굴색이나 걸음걸이를 보고 이를 잡아내서 치료하거나 예방하게 하였지만, 사람들은 가벼운 병이나 고치는 하찮은 의원으로 여겼다고 한다.

치료보다는 예방을 중시하는 의사가 명의이다. 사건이 성숙하기 전에 사전에 이를 제거하고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만병을 치료하는 약은 없지만 만병을 다스리고 예방하는 기본 원리는 있다. 

손흥민을 세계적인 축구선로로 키운 아버지 손웅정은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책을 통해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술을 가르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닌 바른 선수로, 사람으로 길러야 한다고 믿은 아버지이자 인생 선배의 축구 철학, 교육 철학, 삶의 철학을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조직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본기가 탄탄해야 성장하고 발전한다.

기본기는 다들 알지만 귀찮아 하고 하기 싫어지는 것이다. 유명한 모 기타리스트는 하루 연습을 시작할 때 반드시 기본 코드 잡는 것부터 반복하여 연습한다고 하고, 일가를 이룬 화가나 서예가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기본기를 다지면서 자신만의 화풍이나 글씨체를 만들어낸다. 하나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소하고 귀찮은 원칙을 지키고 익히는 것이 기본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기업과 같은 조직에서 노동법을 해석하고 운용하는 데에도 가장 기본이 있다. 바로 실제 사례에서 적용되는 노동법의 법원이다.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의 법원(法院)이 아니라 노동법이 적용되는 근원이라는 의미의 ‘법원(法源)’이다.  노동법의 존재형식을 말하며, 노동법에 속하는 법규범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노동법의 법원은 법적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법관이 기준으로 삼아야 할 재판규범의 존재양식이다. 여기에는 헌법, 법률(국제법과 관습법 포함), 시행령, 시행규칙, 단체협약, 취업규칙, 규약, 근로계약 등에 대한 법원성을 인정할 수 있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다수의 재판규범이 존재하는 경우에 있어 적용순서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법원 사이의 충돌(衝突)을 해결하고 그 적용순서에 관하여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적용하려면 상하위의 우열 위계를 정해야 한다. 헌법,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의 순서는 다른 법체계에서도 공통된다. 

문제는 노동법 영역에서 근로관계의 구체적 내용을 결정하는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 및 사용자의 (정당한) 지시권을 총칭하는 '자치규범' 사이의 우열관계이다.

노동법 영역에서 자치규범의 법원성(法源性)과 우열관계(偶劣關係)를 인정하는 점은 노동법이 공법(公法)도 사법(私法)도 아닌 중간법(中間法) 영역으로 분류되는 특성이다. 이러한 자치규범의 법원(法源) 사이의 위계는 단체협약 → 취업규칙 → 근로계약 → 사용자의 (정당한) 지시 순서다. 

자치규범의 최상위는 단체협약임은 다툼의 여지가 없다. 자치규범의 당사자 측면에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취업규칙이나 근로자와의 개별적으로 체결하는 근로계약과 달리, 단체협약은 사용자(개인 사업자와 법인)와 노동조합(법인)이 상호 합의한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하여 체결한 집단적 계약이다.

노동조합과의 합의라는 단체성(團體性)과 서면이라는 요식성(要式性)으로 단체협약은 노동법의 자치규범 중 최상위의 법원성을 가지고 있다.  

기업의 기본은 제품이다. 유형의 물건이든 무형의 서비스이든 소비자에게 효용을 주는 제품이 있어야 한다. 기본인 제품을 좋게 만들고 잘 팔리게 하고 이익이 나게 하고 효율적으로 구성원 관리하는 것이 생산관리, 영업관리, 재무관리, 인사관리다.

이 과정에서 노동법을 비롯한 법령을 준수해야 함은 당연한 기본 전제이다. 노동법의 법원(法源) 중에서 국가가 규율하는 법규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지만,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노사가 자체적으로 합의하여 만드는 자치규범이고, 그 자치규범의 최상위에는 단체협약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과의 합의로 정한 근로조건인 단체협약은 그 내용이 강행법규에 어긋나지 않는 한 노동법의 적용에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된다.

노동법이 적용되는 실제 사례에서 최고의 법원(法源)은 사실상 단체협약이 가지게 된다. 노동법의 법원성(法源性)을 이해하는 것, 그 중 최상위 자치규범인 단체협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매카니즘인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이해하는 것이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에서 조직관리의 기본 중에 기본기를 다지는 일이다. 

기본기가 튼튼한 조직은 쉽게 병들지 않는다. 기본이 중요하다. 제품이 먼저냐 관리가 먼저냐, 나무가 먼저냐 숲이 먼저냐? 나무를 알더라도 숲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가 어둡고, 숲을 이해해도 나무를 알지 못하면 현재가 위태롭다. 둘 다 필요하다.

그렇지만 좀 더 멀리 보거나, 또 조직이 크면 클수록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은 숲을 보는 혜안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소명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조직의 발전적 지속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당장 눈 앞의 이득만을 꾀하다가 장래 닥칠 해악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결국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강하지만, 리더는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기업과 조직이 성장하고 발전하면서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오늘날은 한 사람의 명의가 아니라, 각각 분야의 전문의와 관리자의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그게 이 시대의 기본 원리다. 

●배동희 노무사는 연세대 법대 졸업후 경북대에서 석사, 고려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법무법인 태평양과 법무법인 세종 등에서 노무사로 십 수년간 중대산업재해사고 대응, 집단적 노사관계 전략 수립 및 실행, HR컨설팅 분야를 경험했다. ㈜효성에서 다년간 인사관리팀 부장으로 재직하며 인사제도 및 노사관리의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쌓았다. 현재 대유노무법인 대표노무사로 재직중이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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