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연대기] 슬램덩크가 남긴 유산 (上)
상태바
[콘텐츠 연대기] 슬램덩크가 남긴 유산 (上)
  •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 승인 2023.03.19 1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우리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특별한 유산(遺産)을 헤리티지(Heritage)라 부른다.

보통 세계 유산처럼 전통적인 것에 한하여 쓰여왔지만 최근에는 비지니스 현장에서도 헤리티지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기업 브랜드의 중요성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주로 브랜드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긴 시간 키워 온 브랜드 가치야 말로 대대로 물려주어야 할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변을 돌아보면 현재 존재하는 거의 모든 산업들이 이러한 헤리티지들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버려 기억하는 이가 그렇게 많지 않더라도 헤리티지라 불리는 것은 은연 중에 천천히 스며들어 과거 그대로의 모습 또는 시대에 맞게 변화한 모습으로 어느 순간 우리 곁에 나타난다.

콘텐츠 산업도 마찬가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산업 분야가 콘텐츠 산업 분야다. 모든 콘텐츠들은 과거의 것을 복제하고 새로운 것을 융합하며 성장한다.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라 주장하고 정말 그렇게 느낄지라도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이 보인다. 그것이 바로 콘텐츠의 헤리티지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20세기의 원작을 훌륭하게 계승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21세기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유튜브 캡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20세기의 원작을 훌륭하게 계승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21세기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유튜브 캡처

슬램덩크가 남긴 헤리티지

올 1월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대한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3월 12일 현재 개봉 68일째 누적 관객 400만을 돌파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장기 상영이다. 아동 대상이 아닌 성인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인 수치라 할 수 있다.

지금의 4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있어 ‘농구’는 단순한 스포츠이기 이전에 20대를 추억할 수 있는 과거로의 열쇠다. 지금이야 농구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마이클 조던을 중심으로 한 ‘불스 왕조’가 NBA에서 신화를 써 내려가던 그 시대에 농구는 지금의 축구와 야구 못지 않은 인기 스포츠였다.

원작인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만화 '슬램 덩크'는 필자를 포함한 이른바 X세대에 있어서는 추억이자 한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 아이콘이었다. 인터넷의 영화평을 보더라도 20대는 ‘잘 만든 농구 애니메이션’로 평가하지만 40대 이상의 관객들은 그 시절 그 때로 돌아가게 만드는 ‘타임머신’이라는 평이다. 

90년대 농구를 상징하는 시카고 불스팀, 슬램덩크의 ‘북산고’와 비슷한 디자인과 색을 가진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사진=유튜브 캡처
90년대 농구를 상징하는 시카고 불스팀, 슬램덩크의 ‘북산고’와 비슷한 디자인과 색을 가진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사진=유튜브 캡처

만화 '슬램덩크'는 1990년 처음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다. 팬의 입장에서 슬램덩크라는 작품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작품은 지난 20세기가 그대로 담긴 콘텐츠의 타임캡슐이다. 최근 레트로나 뉴트로의 붐을 타며 등장하기 시작한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콘텐츠가 많이 쏟아져 나왔다.

'건축학 개론'이나 '응답하라 1994'를 비롯한 영화나 드라마에서부터 탑골 GD 양준일의 역주행, '거침없이 하이킥'같은 옛 시트콤에 대한 열광, 최근에는 포켓몬 빵 열풍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복고의 현상들이 나타났지만 그것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추억이나 과거를 추억하는 X세대가 만드는 왜건 효과에 MZ 세대들이 ‘아재 놀이’를 하며 재미있어 하는 수준이었다.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도 처음에는 추억팔이 콘텐츠가 또 하나 나오는구나 하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슬램덩크라는 타임캡슐이 30년이 지난 지금 '더 퍼스트 슬램덩크'라는 영화로 21세기에 다시 태어났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메인 타깃인 3040의 지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지만 지금의 400만 관객 달성은 단순히 3040의 힘이 아닌 전 세대를 아우르는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 20세기의 이야기를 21세기의 새로운 문화로 연결한 중요한 ‘연결 고리’ 적인 작품이 돼버렸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이번 작품 참여를 원작자의 욕심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신의 한수가 되었다. 사진=유튜브 캡처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이번 작품 참여를 원작자의 욕심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신의 한수가 되었다. 사진=유튜브 캡처

이렇게 예상을 뛰어넘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은 단순히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라는 평가 이상의 것이 숨어있다. 바로 슬램덩크라는 작품이 남긴 헤리티지를 훌륭하게 승계해 그것을 슬램덩크에 대한 추억이 없는 세대까지도 작품에 매료되게 만드는 흥행의 원동력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원작 만화가 남긴 흥행의 유산을 잘 이해하고 또 그것을 잘 계승해 새로운 세대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명작’을 만든 것이다. 슬램덩크가 시대를 뛰어 넘는 명작이 된 데에는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과 각본을 맡은 것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본다.

작품의 유산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원작자 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의 성공 요인과 사람들을 사로잡은 흥행의 DNA를 유산으로 삼아 그것에 그치지 않고 21세기의 새로운 흐름을 집어넣어 21세기의 슬램덩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만일 다른 영화들처럼 원작자 따로 감독 따로였다면 지금 같은 작품이 나오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영광을 바탕으로 야심차게 리메이크했던 작품들이 줄지어 흥행에 실패했던 것을 볼 때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가장 큰 흥행 요인은 바로 과거의 유산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새로운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 아닐까 한다. (계속)

●문동열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