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문…음양오행설 바탕으로 이름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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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문…음양오행설 바탕으로 이름지어
  • 김현민
  • 승인 2018.02.1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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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반정 후 담을 넘어 도망하다 붙잡히기도

 

임금이 사는 궁궐에는 문이 여럿 있다. 하지만 문이 아닌 궁장을 넘어 다닌 경우도 있었다.

궁장(宮墻)이라 함은 궁궐의 담벼락을 말한다. 비상사태 때 임금도 궁장의 문을 넘기도 했다.

조선 제15대 임금 광해군은 인조반정이 터지자 급한 나머지 내시으 등에 업혀 후원의 북쪽 담을 넘어 상(喪)중인 의관 안국신의 집으로 도망쳤다가 붙잡히는 치욕을 당했다. 광해군은 궁궐의 문을 정정당당하게 나서지 못한 비운의 왕이었다.

폭군 연산군은 아이러니하게도 음력 9월 새벽 궁궐이 불타는 혼란의 과정에서 민간인 옷으로 갈아입고 말을 타고 의젓함을 가장하여 창덕궁 문을 빠져나가 근처의 한 민가에 숨어있다 잡혔다. 2013년 멧돼지 수컷 한 마리는 신 선원전 쪽 궁장을 넘어 후원으로 들어와 요금문 근처 도랑에서 최후를 마쳐야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 창덕궁 /정환선 제공

 

궁궐은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의 높고 넓은 돌담이나 흙담으로 둘러 싸며 내·외부 경계를 나누는 담장 즉, 궁장(宮牆)을 두고 있다. 궁장 중간 중간 4방향에 외부와 궁을 공간적 개념으로 구분하는 경계선이기도 한 문을 설치했다.

각각의 궁장의 문들은 특성과 기능에 맞게 쓰임새가 다양하게 운영되었다. 각 문들은 동양의 철학사상인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이론적 바탕을 두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이름을 지어 현판을 달았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경복궁의 동문(東門)은 봄에 해당하는 건춘(建春) 서쪽은 가을에 해당하는 영추(迎秋), 남쪽은 정문이자 여름인 광화(光化), 북쪽은 겨울을 상징하는 신무(神武)”로 문 이름을 지었다.

창덕궁은 응봉자락을 따라 흐르는 산세의 지형과 매우 잘 어울리면서도 자연친화적인 궁궐의 전각과 후원을 배치한 건축미가 뛰어난 매우 아름다운 궁궐이다.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비단과 같은 맑은 금천을 따라 궁의 서쪽 담벼락을 중심으로 문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점에서 다른 궁궐에 비해 특이하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성종은 그동안 현판 이름이 없었던 문들에 대해 대제학 서거정(徐居正)에게 이름을 지어 올리게 했다. 성종은 문마다 2개씩 이름을 지어 올린 것 중 하나를 낙점했다고 하는데, 그중에 선인문(宣仁門), 단봉문(丹鳳門), 금호문(金虎門), 요금문(曜金門)은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 창덕궁의 궁장문 현판 : 좌부터 단봉문, 정문인 돈화문, 금호문, 경추문, 요금문, 건무문. 그 밖의 문 : 춘당대 앞 창경궁으로 통하는 영춘문, 매표소 앞 함양문, 신선원전 외삼문 /정환선 제공

 

궁을 입·퇴궐 하려면 궁장(宮牆)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일반백성들은 궁 출입을 허가하는 표지인 남자가 차는 신부(信符)와 여자가 차는 한부(漢符)를 사용해야 했다. 지금은 세월이 좋아졌다. 입장권을 끊거나 한복을 입으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 어수문주합루 설경 /정환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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