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⑪ 반포터미널 없던 시절에 고속버스 어디서 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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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⑪ 반포터미널 없던 시절에 고속버스 어디서 탔을까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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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반포에 자리한 고속버스터미널은 1976년 9월에 개장했습니다. 그렇다면 1976년 9월 이전에 고속버스들은 어디에서 승객을 태우고 내렸을까요? 정답은 ‘고속버스회사마다 다르다’ 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나라에서 고속버스는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1969년에 개통했으니 이제 50년이 좀 넘었네요.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버스 노선은 1969년 4월 12일 서울과 인천을 연결한 한진고속입니다. 경부고속도로는 1969년 8월 15일 서울 수원을 연결한 동양고속이, 호남고속도로는 1970년 12월 30일 서울 전주를 연결한 광주여객이 최초이지요.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우리나라는 철도가 운송 수단의 대명사였습니다. 시외버스가 일부를 맡았다고는 하지만 도로 상황과 차량 수준이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런 가운데 서울과 부산을 4시간 30분 만에 연결하고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든다는 고속도로는 말 그대로 혁명이 아니었을까요? 그 첨병으로 고속버스가 등장한 겁니다.

1984년 당시 서울역 모습. 건너편은 지금은 세브란스 빌딩이 위치한 곳으로 1970년대에는 ‘서울역전 고속종합터미널’이 있었다. 반포에 고속터미널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동안 터미널로 이용되었다. 오른쪽 대한항공 광고 간판이 있는 건물은 봉래동 한진빌딩으로 70년대에 한진고속터미널이 있었다. 사진제공= 서울역사아카이브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든 고속도로

그런데 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고속버스 운송 사업 경험을 가진 사업자는 없었습니다. 고속버스도 외국에서 들여와야 했지요. 그래서 정부는 경험을 가진 해외 사업자 참여를 모색했고, 국내 사업자에게는 고속버스 구매를 위한 해외 차관을 연결해 주는 방안도 마련했습니다. 

고속도로 건설이 한창이던 1968년 11월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버스 사업자로 6개 업체가 인가받게 됩니다. 한진관광, 동양고속, 광주여객, 한일여객, 천일여객, 코리아 그레이하운드(Korea Greyhound Limited, KGL). 한진은 해운과 항공을 겸비한 운송업계의 선두주자라 선정된 걸로 보이고, 업계 경험을 보유했거나 지역 안배 차원에서 선정된 회사들이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광주와 전남에 기반을 둔 지금의 금호고속인 광주여객, 대구 경북에 기반을 둔 한일여객, 부산 경남에 기반을 둔 천일여객은 시외버스를 운영해온 회사였습니다. KGL은 미국 측이 50%, 한국인 주주가 50%인 합자회사로 미국 측 주주는 여객 운송사업 경험을 보유한 사업자였지요. 

그런데 계성제지를 모기업으로 하는 동양고속은 사주가 전북 출신에 육사를 나온 퇴역 장교였습니다. 운송업 경험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네요. 동양고속뿐 아니라 이후에 선정되는 여러 고속버스회사의 사주가 군 출신이었습니다. 
 
1969년 말이 되자 고속버스 운행을 인가받은 사업자들이 경부고속도로 노선에 9개 업체, 경인고속도로 노선에 3개 업체로 늘어납니다. 이때 추가된 곳이 속리산관광, 유신고속, 한남고속, 삼화교통 등이지요. 

1971년 즈음엔 중앙고속과 동부고속도 후발 주자로 등장합니다. 재향군인회에서 설립해 버스 30대로 출발한 중앙고속은 1977년 그레이하운드를 인수해 대형회사로 성장하게 되지요. 한편, 금호고속, 동양고속, 동부고속 등은 여객운송업을 기반으로 사업을 다각화해가며 재벌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고속버스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한 서울에 통합된 버스터미널이 없었습니다. 1976년 반포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생기기 전까지 고속버스회사들은 터미널을 따로 운영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서울 강북 도심 곳곳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산재해 있었던 거죠.

1973년 당시 동대문 인근의 고속버스터미널. 지금은 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호텔이 들어섰다. 사진 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그중 한 곳이 동대문에 있었습니다. 현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호텔이 있는 자리인데 오래도록 노면전차 차고로 쓰인 곳이었지요. 이 자리를 광주여객, 한남고속, 한일여객, 천일여객이 터미널로 사용했습니다. 이들 네 회사는 모두 벤츠에서 버스를 도입했기 때문에 차량 관리의 편의를 위해서 한 장소에 모인 거였지요. 

차내에 화장실이 있는 이층버스 그레이하운드의 터미널은, 서울역에서 남대문경찰서 쪽 건너편 동자동의 게이트웨이타워(벽산빌딩) 자리에 있었습니다. 한진고속 터미널은, 서울역에서 서소문 쪽 건너편 봉래동에 있었는데 현재 그 자리에 한진빌딩이 있지요. 

동양고속 터미널은 서울역 건너편 세브란스병원 옛터, 지금의 세브란스 빌딩 자리에 있었고, 다른 고속버스회사들도 을지로나 종로 등지에 터미널이 있었다고 하네요. 고속버스 터미널이 이렇게 도심에 산재해 있으니 여러 가지로 불편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기사들을 보면 매표소와 대합실은 물론 화장실 같은 편의 시설이 부실해 승객들의 불만을 샀다고 합니다. 

게다가 도심의 터미널들은 승객들을 태우고 내리는 기능만 했기 때문에 박차장(泊車場), 차량이 대기하거나 정비하는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흑석동에 버스회사들이 공동으로 쓰는 박차장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승객을 태우고 내리는 것은 물론 수시로 박차장을 오가는 대형버스들이 교통혼잡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지요. 

1970년 6월 27일자 매일경제신문 기사. 고속버스터미널이 도심에 산재해 있고 시설이 열악해 불편하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사진제공=매일경제.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서소문역사공원이 살아남은 사연

그래서 정부는 도심에 산재한 고속버스터미널의 통합을 결정합니다. 어떤 곳에 터미널을 만들지 계획도 세우고요. 그곳 중 하나가 지난 글에서 언급한 중림동의 중앙도매시장 자리입니다. 헐린 서소문 인근이고 복개된 만초천이 지나는 곳이지요. 

서소문 밖 만초천은 아름다운 풍경이 옛 문헌에 기록으로 남았지만, 조선시대에는 처형장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많은 천주교인이 순교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의미 있는 역사적 공간에 일제는 도매시장을 열었던 거지요. 해방 후에도 계속 도매시장이 있었는데 수산물시장은 노량진으로 청과시장은 용산으로 이전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자리 활용 방안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1960년대와 70년대 서울시 고위 공무원으로 도시계획을 관장하고 퇴임 후에는 서울시립대 교수를 역임한 손정목의 회고록에 자세히 나옵니다. 다섯 권으로 된 이 저술은 저자의 경험과 기억, 무엇보다 풍성한 당시 자료와 관계자 인터뷰로 서울 개발사를 사안별로 풀어낸 역작입니다. 도시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귀한 선행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지요.

이 회고록에 따르면 중림동 도매시장의 이전이 결정된 1971년, 손정목은 서울시장에게 도매시장 터를 고속버스터미널로 만들고, 이를 구체화하기 전까지 공원용지로 묶어두자고 건의합니다. 이 안건이 채택되어 1971년 5월 일간지들을 통해 구체적 계획까지 발표하게 됩니다. 하지만 터미널을 서울시 외곽으로 분산하자는 의견에 묻히고 말았지요.

이런 결정에도 당시 서울시 기획관리관이었던 손정목은 중림동 도매시장 터를 공원용지로 묶어 두는 건 관철합니다. 그가 이곳을 공원 터로 만든 건 서울역 인근의 목 좋은 땅이라 “대기업이 정치 세력이나 최고 권력을 업고 잠식해 버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지요.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과 서소문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강대호

그 후 중림동 도매시장 터는 주차장과 재활용 쓰레기처리장으로 이용되다 근린공원이 되었고, 2019년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들어서며 서소문역사공원이 되었습니다. 

한편, 고속버스터미널의 새로운 입지는 강북 인구를 강남으로 분산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영동개발구역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976년 반포에 고속버스터미널이 들어서게 된 겁니다. 

저는 강북에 살던 어린 시절 동대문에서 한일여객 고속버스를 타고 경북 김천으로 내려가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부모님의 고향인 상주에 가곤 했지요. 그런데 강남으로 이사한 1977년경에도 78번 시내버스를 타고 동대문으로 가 고속버스를 탄 기억이 있습니다. 반포에 터미널이 있었던 시기였는데도 말이죠.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하겠습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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