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연대기II] 쉽지 않았던 개발 이야기 - 포켓몬스터의 탄생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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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연대기II] 쉽지 않았던 개발 이야기 - 포켓몬스터의 탄생 (최종회)
  •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 승인 2023.01.28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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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포켓몬 “뮤”의 탄생비화, 신의 한수가 된 한 개발자의 장난
포켓몬 개발 소스 담긴 컴퓨터 고장에 회복 불능의 위기를 맞다
이런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세계 최대의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되다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모든 마스터피스의 탄생에는 영광의 결말과 함께 고난의 이야기가 있다.개발 시작 이후 몇 번이고 좌초할 뻔한 ‘캡슐몬스터 (이후 포켓몬스터)’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개발사 게임 프리크는 개발 경험이 있다고는 하나 베테랑으로 불리기에는 많은 면에서 부족했다.

안정적이지 못한 재정도 늘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개발 4년차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20대 청년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프로젝트였다는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어려운 시기가 계속 이어지자 개발진들의 열정도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려는 경영진들의 노력도 무색하게 문제들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만 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의 미래에 지쳐갈 무렵 포켓몬스터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뻔한 일이 생긴다. 마지막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며 프로젝트를 끌어가던 게임 프리크에게는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재앙이었다.

지난해 25주년을 맞은 포켓몬. 이제 30주년을 향해 달려가는 세계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챔피언의 기세는 아직까지 꺾이지 않고 있다. 사진=포켓몬 닷컴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25주년을 맞은 포켓몬. 이제 30주년을 향해 달려가는 세계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챔피언의 기세는 아직까지 꺾이지 않고 있다. 사진=포켓몬 닷컴 홈페이지 캡처

포켓몬스터 탄생...최대 위기를 맞다

2018년 포켓몬 3인방의 하나인 마스다 준이치는 한 언론과 포켓몬스터 개발에 대한 뒷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발 4년째 되던 해. 어느 날 포켓몬스터 개발 소스가 담긴 컴퓨터에 심각한 에러가 발생한다. 개발 중인 게임의 모든 데이터와 리소스를 담은 컴퓨터가 구동되지 않은 채 침묵하자 개발진들은 급히 복구를 시도했지만 복구도 여의치가 않았다.

백업의 개념이 희박했던 당시 그 동안의 모든 것이 다 날아갈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 마스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회사나 많은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마스다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시 일본에서 서비스 중인 니프티 서브라는 PC통신망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은 마스다에게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영어 원서로 된 하드웨어 관련 책까지 탐독해가며 결국 문제를 해결, 복구에 성공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4년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며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며 포켓몬스터라는 역사적인 게임이 출시조차 못하고 사라질 뻔한 사건이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야심찬 기획에 따른 저장 용량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당초 기획 단계에서 준비한 포켓몬의 수는 200개였다. 그 정도는 되어야 수집이나 트레이드에 대한 사용자들의 만족도가 생길 것이라는 의도였다.

개발하면서 당초 의도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된다. 포켓몬스터가 구동될 게임기 게임보이의 롬 카트리지 용량으로는 200마리는커녕 100마리의 구현도 힘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민하던 게임 프리크 개발진에게 또 한번 ‘만능 해결사’ 미야모토 시게루가 등장한다.

“늘이면 되지”라는 미야모토 식의 해법을 낸 그는 다시 닌텐도 내부를 설득해 512kb였던 롬 카트리지를 1 MB로 올리기 위해 추가적인 자금 집행을 끌어낸다. 용량이 늘어났다고는 해도 200마리를 다 넣기에는 여전히 무리였지만 그래도 게임 프리크는 최대한 데이터를 우겨넣어 총 150마리의 포켓몬을 메모리 내에 넣는데 성공한다.

환상의 포켓몬 '뮤'를 만나는 순간. 당시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뮤를 얻기 위한 경쟁이 벌어졌고, 이는 게임의 흥행으로 이어졌다. 300 바이트에 숨겨둔 이스터 에그가 신의 한수가 된 셈이다. 사진=위키 하우
환상의 포켓몬 '뮤'를 만나는 순간. 당시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뮤를 얻기 위한 경쟁이 벌어졌고, 이는 게임의 흥행으로 이어졌다. 300 바이트에 숨겨둔 이스터 에그가 신의 한수가 된 셈이다. 사진=위키 하우

환상의 포켓몬 ‘뮤’ 탄생 비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포켓몬을 지금의 세계 최대 미디어 프랜차이즈로 만든 데 일조를 한 ‘버그’가 생겨났다. 바로 공식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151마리째의 포켓몬이 등장한 것이다.

버그가 생긴 원인은 이랬다. 당초 200마리로 예정되었던 포켓몬의 수가 150마리로 줄면서 그 데이터는 사라졌지만 인덱스는 여전히 프로그램에 남아있었다.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 중 이레귤러한 조작을 하게되면 버그가 발생하고 이 때 사라진 데이터의 인덱스가 호출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포켓몬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일명 ‘MISSINGNO’ 버그였다. 게임 개발이 완료되고 최종 게임 버전이 완성되었을 때 카트리지에는 300 바이트의 아주 작은 공간만이 남아있었고, 게임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모리모토 시게키는 이 공간에 이스터에그 (개발자가 프로그램 등에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소하게 장난을 치는 행위)같은 느낌으로 설정상으로만 존재하던 포켓몬 ‘뮤’의 데이터를 넣었다.

게임을 출시한 닌텐도도 몰랐던 이 버그 포켓몬은 이후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서 ‘환상의 포켓몬’으로 불리며 순식간에 ‘뮤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아이들을 경쟁심을 훌륭히 자극했고, 이어 포켓몬스터 흥행에 어마어마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개발자의 장난이 신의 한수가 되어 돌아온 셈이다.

1995년 10월 상표권 문제로 인해 ‘캡슐 몬스터’에서 지금의 ‘포켓몬스터’로 이름을 변경한 포켓몬은 개발을 종료하고 마침내 1996년 2월 5년에 걸친 개발 기간을 종료하고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된다. 긴 개발 기간 이후 정작 출시를 앞둔 닌텐도 내부에서 포켓몬스터에 대한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포켓몬은 원작인 게임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완구, 각종 패션 아이템까지 망라하며 이제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한 세대를 대표하는 문화로 정착 중이다. 사진은 도쿄 시부야에 있는 포켓몬 센터의 모습. 사진=포켓몬 센터 홈페이지 캡처
포켓몬은 원작인 게임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완구, 각종 패션 아이템까지 망라하며 이제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한 세대를 대표하는 문화로 정착 중이다. 사진은 도쿄 시부야에 있는 포켓몬 센터의 모습. 사진=포켓몬 센터 홈페이지 캡처

너무 늦지 않았느냐 라는 우려였다. 5년이 넘는 개발 기간으로 인해 하드웨어인 게임 보이는 출시 7년째 접어들고 있었다. 교체 주기가 빠른 게임 하드웨어로서는 이미 수명이 다했다고 보여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늦은 출시가 포켓 몬스터에게는 약이 되었다. 하드웨어 보급이 한계에 이른 상황이라는 것은 포켓몬스터를 즐길 수 있는 수 많은 게임보이들이 이미 시장에 퍼져있다는 말이었다.

덕분에 포켓몬스터는 1996년 출시 한해만에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운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있었던 CoroCoro 잡지와의 협업도 도움이 되었지만 가장 큰 인기 요소는 역시 수집과 트레이드 그리고 친구 간의 대결 플레이였다. 거기에 ‘환상의 포켓몬 (실제로는 버그에 가까운)’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포켓몬스터를 최고의 흥행 게임으로 만들어냈다. 그 이후의 결과는… 모두 알고 있는 대로다. 

산에서 곤충을 잡던 ‘곤충박사’ 타지리 사토시에서 시작된 이 꿈은 게임 오타쿠들의 열정으로 많은 좌절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을 딛고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30살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의 포켓몬스터는 여전히 강력한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챔피언으로 세계 문화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문동열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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