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유의 시티라이프] 버스의 침몰, 교통사막화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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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유의 시티라이프] 버스의 침몰, 교통사막화 막아야
  •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 승인 2023.01.1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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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서민의 발로 수십 년 우리 곁을 지켜왔던 버스가 위기를 맞고 있다. 시외버스터미널이 문을 닫고 있으며, 마을버스도 줄 폐업을 이어가고 있다. 너나없이 고속철을 유치하고 공항을 지어 전국은 반나절 생활권이 됐지만 정작 가장 어려운 사람들의 마지막 수단이었던 버스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현상을 그대로 두고 보아야 하는 것인가.

대도시 인구 집중이 야기한 '버스의 위기'

버스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양극화의 결과다. 지방 중소도시의 인구감소와 고령화는 버스 수요를 감소시켰다.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중소도시 간의 시외버스 이용자 감소를 가속화시켰으며, 사업자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철도 중심의 교통정책 또한 버스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고속철과 전철의 연장을 통해 정시성과 신속성이 배가된 철도시스템은 버스 승객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결국 지방을 중심으로 버스터미널이 폐업을 이어오더니 수도권에 있는 성남종합버스터미널도 작년말 문을 닫았다.

작년 12월 2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성남종합버스터미널에 폐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작년 12월 2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성남종합버스터미널에 폐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버스의 위기는 마을버스 업계도 덮쳤다. 코로나로 전체 이동량이 줄어든 데다 시내버스보다 열악한 운행환경에 급여도 낮아서 기사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시내버스는 상당수의 지자체에서 준공영제로 운영하여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데 반해 마을버스는 지자체 지원이 없는 곳이 많아 충격에 취약하다. 결국 수요감소에 따른 수익성 악화는 폐업이나 노선 폐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버스의 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버스는 지방소멸, 고령화시대에 가장 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최후의 보루다.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다시 대도시에서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연쇄적 인구 이동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향은 지방 중소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려 버스터미널 같은 기존 인프라의 존립을 위협한다. 동시에 반대쪽에서는 과도한 대도시 인구집중이 주택부족이나 교통체증을 심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지방소멸을 막고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노력하는 이유다.

필수 복지수단으로서의 버스의 역할

버스는 지방소멸을 막고 고른 발전을 추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중소도시나 농촌지역에서는 고령화가 훨씬 더 심각한데, 이들이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버스다. 나이가 들면 직접 자가용을 운전하는 것이 위험하므로 노인들에게 버스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교통수단이다. 만약 이런 버스 시스템이 붕괴된다면 시장을 보러 나오거나 병원을 가려할 때 남의 차를 얻어 타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결국 제때에 일을 보지 못하거나 치료를 받지 못해 전반적인 복지수준의 하락이 불가피하다. 그러니 버스는 단순한 이동수단 중 하나가 아닌 필수적인 복지수단인 것이다.

도시 내에서도 버스는 교통약자들을 보살피는 간호사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마을버스는 걷기가 힘든 언덕길이나 대형버스가 들어가기 어려운 골목길을 누비며 서민들을 실어나르며 간병인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눈이 오거나 비가 왔을 때 짐을 든 노인들에게 마을버스는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올라가야할 때 여성들에게 마을버스는 얼마가 든든한 존재인가? 마을버스가 사라진다면 당연히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은 크게 침해될 것이며, 그들의 일상은 더욱 빈궁해질 것이다. 시내버스도 오지 않고 마을 버스도 들어가지 않는 동네는 결국 ‘교통사막(Transportation Desert)’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단기적으로는 지자체나 중앙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버스 서비스가 중단됐을 때, 마땅한 대체 교통수단이 없는 지역에 대해서는 준공영제에 준하는 정도의 재정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노인들이 걷지 못하는 순간부터 급격히 건강이 악화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상식이다. 도시와 농촌의 마을도 마찬가지다. 버스라는 최후의 수단이 끊겨 이동이 불편해지면 그 마을의 건강은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은 소멸로 갈 가능성이 높다.

수요응답형 교통시스템(DRT) 구축이 대안

강릉 DRT버스. 사진=연합뉴스
강릉 DRT버스. 사진=연합뉴스

최근 발전하고 있는 ICT(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하여 수요응답형 교통시스템(Demand Responsive Transportation, DRT)을 구축하는 것도 대안이다. DRT는 버스 등 대중교통의 노선을 미리 정하지 않고 여객의 수요에 따라 운행구간, 정류장 등을 탄력적으로 운행하는 여객운송서비스다. 과소화 및 공동화가 심한 지역의 이동권 보장과 고령층의 의료·문화·복지 접근성 개선 및 교통사각지역을 해소하는 데에 효과적이다. 즉, 미리 예약을 통해 버스 승객과 버스회사 간에 적절한 노선과 시간을 최적화해 탄력적으로 운행하는 것이다. 물론 스마트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에게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도시 및 국토의 공간구조를 보다 효율화하는 것이다. 크게 보면 소멸해가는 지방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인구가 모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선택과 집중' 정책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비단 버스 뿐 아니라 의료나 교육 측면에서도 수요가 공간적으로 넓게 퍼져 있으면 지속가능한 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져 결국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모든 지역을 살리려는 이상적인 노력보다는 그 지역에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중소도시로 주변 인구가 모이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버스수요와 공급을 맞출 수 있는 노선이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방법이야 어찌됐든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말 버스시스템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동의와 교통복지로서 재정적 지원이 타당한가에 대한 합의다. 이미 시행하고 있는 준공영제의 대상을 더욱 확대할 것인가? 아니면 도시공간구조를 효율화하여 인구를 재배치하면서 버스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일 것인가? 계속 철도 중심으로 교통인프라의 전환을 가속화할 것인가? 등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김진유 경기대 스마트시티공학부 도시.교통공학전공 교수는 한양대 도시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소, LH(옛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에서 연구했다. 현재 한국주택학회 회장이며, 한국부동산분석학회 부회장이다. 저서로는 '전세'(2017), '포스트 코로나, 도시가 바뀐다'(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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