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② 역삼동의 유래가 된 역말, 그리고 도곡동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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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② 역삼동의 유래가 된 역말, 그리고 도곡동 느티나무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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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서울 강북에서 태어나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강남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았던 동네들 모두 지금은 예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쉽기도 하고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그 동네들의 변화 과정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칭 도시탐험가가 되었습니다. 서울 곳곳을 탐험하듯 살펴보고, 언론 기사와 도서, 연구 문헌과 각종 사진 자료 등을 발굴하듯 파고들며 서울의 변화와 숨겨진 이야기를 찾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강대호 칼럼니스트] 지난해 11월 도곡동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마을 제사가 열렸습니다. 단지 한가운데에 자리한 커다란 느티나무 앞에 제단이 마련됐고, 한복을 차려입은 제관들과 노인들이 몰려들었지요. 이들은 오래전 느티나무 인근의 ‘역말’에 살던 주민들입니다. 이들이 제단을 차린 느티나무는 칠백 년이 훌쩍 넘은 수령에다 전설까지 간직한 서울시에서 보호하는 나무이고요. 

저는 중학생 시절 말죽거리에 있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1학년이었던 1979년에는 연결되는 시내버스가 없어 걸어 다녀야 했지요. 역삼동의 아파트 단지에서 (아직 병원이 들어서기 전이고 매봉터널도 뚫리기 전이어서 삼거리였지만) 지금의 강남세브란스병원 사거리로 가서 뱅뱅사거리 방향으로 난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나중에 ‘도곡로’가 되는 그 도로는 당시 비포장도로였습니다.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다 보면 매봉산 자락의 한 마을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강남의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와는 분위기가 크게 다른 전통 마을의 모습이었지요. 동네 주변으로 논과 밭이 보이기도 했는데 그곳이 바로 ‘역말’이었습니다.

그 마을에 같은 반 친구가 살았습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본 역말은 서울이라기보다는 시골처럼 느껴졌지요. 마을 입구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난해 11월 5일 도곡동 경남아파트에서 진행된 ‘역말 도당제’. 역말은 과거 도곡동에 있었던 마을이다. 사진=강대호

역말 주민이 원조 강남 사람?

그런데 친구는, ‘역말’에 사는 사람들이 원조 강남 사람이라고 주장하곤 했지요. 강남이 개발되기 전 오래전부터 터 닦고 살아왔다면서요. 하지만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역말이나 당시 도곡동 일대에 흩어져 있던 (‘독구리’나 ‘독골’로 불렸던) 전통 마을 사람들을 이방인처럼 바라보곤 했던 게 기억납니다.

역말은 역(驛) 인근에 자리한 마을을 의미합니다. 철도역이 아닌 말을 갈아탈 수 있는 그런 역을 의미하지요. 과거에 말은 교통수단이면서 통신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방이나 한양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마다 역참(驛站)을 설치해 말을 관리했는데 그 주변에 있는 마을을 역말 혹은 역촌(驛村)이라 불렀습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역촌동도 거기서 유래했지요.

도곡동의 역말은 과거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인 양재역(良才驛) 인근에 자리했던 마을이었습니다. 양재역은 속역(屬驛) 12곳과 역로(驛路)를 관리하는 양재도(良才道)의 중심 역이었고 종6품 양재도찰방이 책임자였다고 합니다. 도(道)는 지방 행정구역뿐 아니라 여러 역을 묶어 관리하는 체계에도 붙였다고 하네요. 

역말은 역삼동(驛三洞) 지명의 유래가 되기도 했습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양재역 인근에 자리했던 말죽거리, 방아다리, 역말 등 세 마을을 합쳐 역삼리라고 동리 이름을 지었다네요. 말죽거리는 지금의 양재역 일대를, 방아다리는 역삼초등학교 근처를, 그리고 역말은 도곡1동 일대를 일컫습니다. 그러고 보니 역말은 역삼동 지명의 유래였지만 도곡동이 되었네요.

1978년 도곡동과 역삼동 일대 항공사진. 빨간 원이 역말. 사진 오른쪽으로 도곡아파트와 영동아파트, 그리고 개나리아파트가 보인다. 파란 원은 지금의 매봉역 인근에 있었던 ‘독구리’ 혹은 ‘독골’로 불린 전통 마을이다. 사진제공=서울시 항공사진서비스. 국토지리정보원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 역말

역말의 과거 항공사진을 보면 도곡동의 변화상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972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면 역말은 북으로는 도곡로에, 남으로는 남부순환로에 접하는 규모가 큰 마을이었습니다. 넓은 논을 가운데에 두고 와이(Y)자 모양의 마을이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걸 볼 수 있지요. 1978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에도 역말은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다만 인근의 도곡동과 역삼동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말은 1980년대 들어서도 개발되지 않고 예전 마을 모습을 간직합니다. 주변의 도곡동과 역삼동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도 역말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거죠.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이 개발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식의 신문 기사들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역말이 주변 지역에 비해 개발이 늦은 것은 서울로 편입될 때 ‘중심 주거지역’이었던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지역에 비해 거주하는 주민이 많아 인구밀도가 높았다는 이유인데요, 개발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았다는 거죠. 

예를 들자면, 서울시가 토지구획정리사업이나 택지개발사업을 하려 해도 토지 소유자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무산된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세입자 문제로도 골치를 앓았다고 하네요. 이런 사례들은 당시 기사들에서 여러 번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이었던 역말은 언제부터 서울이었을까요? 역말은 1963년 1월부로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됩니다. 그전에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속했었지요. 그 언주면 사무소가 지금의 도곡1동 사무소 자리에 있었는데 과거 항공사진에서 그 건물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언주면 사무소는 한때 서울시 성동구청의 언주출장소 사무소로도 쓰이기도 했습니다. 언주출장소는 1973년에 지금의 서초구 영역인 (당시에는 영등포구 관내였던) 양동출장소와 합병해 영동출장소로 확대되었고, 1975년에 영동출장소는 강남구로 승격되었습니다. (한강 이남 서울의 행정구역 변화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도곡동 느티나무. 수령 700년이 넘는 서울시 보호수로 효자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강남구 도곡동 경남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사진=강대호

개발 논리에 사라질 뻔한 도곡동 느티나무

1990년대에 들어서자 역말은 개발에 들어가는데 느티나무가 한복판에 위치하게 됩니다. 도곡동 느티나무는 서울시에서 지정한 보호수였습니다. 보호수는 「산림보호법」에 근거해 광역 자치단체의 장이나 지방 산림청장이 지정하고 관리하는 나무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도곡동 느티나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해야 하는 나무가 된 거지요. 물론 죽기 전에는 말이죠.

700년 수령의 도곡동 느티나무는 높이가 약 27미터, 둘레가 약 8미터입니다. 가지들이 흐드러진 너비까지 포함하면 그 영역이 사방으로 수십 미터가 넘습니다. 게다가 옛날 어느 효자의 기도를 들어줬다는 전설이 깃든 영험한 고목이라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 앞에서 매년 마을제를 지내고 있었지요.

그런 느티나무 주변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니 나무가 개발에 방해되는 모습이었나 봅니다. 만약 나무가 없다면 그만큼 개발할 수 있는 땅이 늘어날 테니까요.

그래서일까요. 1990년대 중반 신문 기사들에서 농약 테러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만약에 보호수가 죽으면 보호수 지정에서 해제되니까 그 후에는 뽑아버릴 수 있고, 그러면 그 땅에다 뭔가를 지을 수 있으니까요. 각종 테러 의혹뿐 아니라 개발하자는 측과 보존하자는 측의 충돌을 다룬 기사도 여럿 있습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도곡동 느티나무는 살아남았습니다. 

조선일보 1990년 11월 19일 기사. 사진에 인근의 아파트와 비교되는 모습의 전통 마을이 역말이다. 자료제공=조선일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당시 역말 일대를 개발하던 건설회사가 도곡동 느티나무가 자리한 부지를 공원으로 만드는 한편 그 주변을 아파트 단지로 건설했습니다. 지금의 도곡동 경남아파트 단지입니다. 역삼역으로 향하는 (매봉산 자락을 허물고 부설한) 논현로 길가에 들어섰지요. 이 아파트에 가보면 단지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역말 도당제’가 열린 곳이 바로 도곡동 경남아파트 단지 안에 자리한 느티나무 공원입니다. 도당제를 주관한 역말 향우회 측에 따르면 역말 도당제는 예로부터 풍년을 기원하며 매년 지내오던 마을 제사라고 하네요. 하지만 코로나19로 중단되었다가 2년 만에 다시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당제에 참여한 향우회 임원들과 회원들의 면면을 보니 80대 이상이 많았고, 70대는 상대적으로 젊어 보였습니다. 오래전 제 친구가 말했듯이 그분들이 원조 강남 사람들일 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면 저를 포함해 1970년대에 강남으로 이주한 사람들, 강남 1세대로 불리는 사람들이 역말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방인이 아니었을까요.

역말에 살던 제 친구는 중학교 졸업 전에 다른 곳으로 이주한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래서 졸업 앨범에도 흔적이 없지요. 역말 인근 도곡동을 지날 때면 저는 그 친구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동안 동창들은 물론 역말 출신 지인에게 수소문한 적도 있었지만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어릴 적 살던 강남을 떠올리면 무엇이 먼저 생각날까요? <매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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