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슈룹’이 이 시대에 전하는 가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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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슈룹’이 이 시대에 전하는 가치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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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화제성은 드라마의 인기를 엿보는 척도 중 하나다. 드라마 종영 기념 인터뷰는 주로 주연들에게 허용된 특권인데 소위 대박 드라마의 경우는 조연들까지 종영 인터뷰가 확대된다. 그리고 다양한 시각으로 드라마를 분석한 기사들이 종영을 아쉬워하는 대중들을 달랜다. 

지난 4일에 종영한 tvN 드라마 <슈룹>이 그렇다. 주연은 물론 조연들까지 인터뷰에 나선 것은 물론 다양한 기사들이 이어지며 <슈룹>의 화제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만큼 <슈룹>은 이야깃거리가 많은 드라마였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슈룹>은 선과 악의 대결을 다룬 드라마였다. 권력을 찬탈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는 악의 축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옳은 방법만으로 맞서는 선의 축, 상극을 이루는 두 축 간의 충돌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주요 서사였다. 

<슈룹>에서 임금인 ‘이호(최원형 분)’는 원래 후궁 소생이라 왕위 계승 서열에서 밀리는 왕자였다. 그러나 중궁 소생인 세자가 돌연 사망하자 이호는 세자가 되었고 끝내는 왕이 되었다. 왕위 계승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던 이호는 왕좌에 앉았지만, 정통성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는 왕이었다. 

사실 세자는 이호의 어머니가 독살한 거였고, 이는 복수를 낳아 이호의 아들마저 독살되었다. 이 모든 게 어머니의 악행에서 시작된 비극이었다.

어머니의 과거를 알게 된 이호는 고민에 빠진다. 대비가 된 어머니의 음모를 밝힌다면 자신의 왕위 계승이 정당성이 없다고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전 화령은 고민하는 이호에게 진실을 밝히는 게 옳다며 힘을 실어주고 대비를 압박한다.

진실을 밝힌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냐는 대비에게 중전 화령은 “달라지진 않겠지만 분명 이전과 같지는 않을 거”라고 답한다. 과거를 들추면 혼란만 생길 거라는 신하들에게 임금 이호는 “이제라도 잘못 지은 매듭을 풀어 바로 잡”는 게 옳고 이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서” 내릴 것이라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드라마 <슈룹>은 잘못을 인정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숨기려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라고 알려준다. 당장은 백성을 속일 수 있겠지만 역사의 눈은 속일 수 없을 거라고도.

사과는 사과받을 사람에게 하는 것

<슈룹>은 체제와 관습 때문에 고통받는 민초들의 모습과 이들을 향한 주인공들의 연민과 연대의 모습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드라마이기도 하다. 

극 중 아이를 낳지 못해 이혼당한 여인이 나온다. 그녀가 생계를 위해 패물을 팔려 했지만 장사치는 아이를 낳지 못해 이혼까지 당한 재수 없는 여인의 물건을 누가 원하겠냐고 값을 후려친다. 

드라마 속 장면이지만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게 낙인찍는 우리네 모습이 보이는 장면이기도 했다. 결국 주인공 중 한 명이 나서 장사치의 행동이 차별이라는 것을 밝힌다. 

극 중에는 상전에게 겁탈당해 임신한 여인도 등장한다. 양반인 아이 아버지는 여인의 행실을 핑계 대며 벌주려 한다. 궁을 나섰다가 이 모습을 목격한 중전 화령은 양반 남성의 잘못을 지적하며 개입한다. 남자는 감히 여자가 나선다며 오히려 화를 내고. 

결국 화령이 왕비임을 알게 된 남자는 화령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한다. 화령은 ‘사과는 잘못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며 그가 겁탈해 임신한 여인에게 사과하라고 바로 잡아준다. 

어쩌면 <슈룹>은 화령의 대사를 통해 오늘날의 ‘영혼 없는 사과’를 지적한 걸지도 모른다. 그즈음 있었던 참사를 두고 책임 있는 자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 장면이었다.

tvN 드라마 '슈룹'. 사진제공=tvN
tvN 드라마 '슈룹'. 사진제공=tvN

‘답게’ 살아가도 된다고

<슈룹>은 시대와 맞지 않는 관습의 부조리를, 그리고 살아가는 방법의 다양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화령과 이호의 아들 계성대군(유선호 분)의 서사가 대표적이다. 

계성대군은 비밀을 간직한 캐릭터다. 드라마 내용만으로는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건지 그저 다른 성의 복장 착용을 좋아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계성대군이 남들 눈을 피해 여인 복장을 하고 화장하는 것을 즐기는 모습이다. 

물론 이 모습은 어머니인 화령에게 약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화령은 아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 계성대군 또한 자기의 정체성이 부모에게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만약 계성대군이 그렇게 계속 자기를 억누르고 사는 모습으로 나왔다면 어쩌면 더 현실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회에서 그는 어머니에게 “진짜 저답게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어머니 가슴에 큰 못을 박는 결심이었지만 화령은 그런 모습의 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아들에게 ‘네 모습답게’ 살라고 격려한다.

궁궐을 떠난 계성대군은 세상을 여행하며 여인 모습이 담긴 그림을 어머니 화령에게 편지처럼 보낸다. 그림 속 여인을 보며 화령은 그리움의 웃음을 짓는다. 물론 드라마였기 때문에 아련하게 표현된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 부모 중 정체성 고민을 겪는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사극이지만 지금의 이야기

<슈룹>은 분명 사극이다. 그런데 과거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지금의 이야기로 와 닿을 때가 많았다. 배경을 과거에서 따왔고 등장 인물들에게 한복을 입혔을지라도. 물론 드라마 해석은 감상자의 자유에 속한다. 다만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건 그만큼 좋은 드라마라는 이유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슈룹>은 할 이야기가 많아서 좋은 드라마라 할 수 있겠다. 누군가에게는 김혜수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꽃미남 왕자들이 눈에 들어왔을 테다. 하지만 그들의 연기가 그렇게 돋보일 수 있었던 데는 대중들을 몰입하게 한 서사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드라마 <슈룹>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준, 그들이 옳다고 믿은 신념과 삶의 가치가 오늘날에도 필요한 신념이고 가치라고 외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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