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엇박자 금융정책에 불안한 자본시장...땜질식 처방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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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엇박자 금융정책에 불안한 자본시장...땜질식 처방은 이제 그만!
  • 권상희 기자
  • 승인 2022.11.30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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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선 통화량 긴축하고 반대편에선 유동성 공급
은행에 돈 풀라고 요청하며 은행채 발행·수신금리 인상은 자제시켜
조달능력 떨어진 은행들은 대출 문턱 높일 수밖에 없어
결국 피해는 금융소비자의 몫으로
권상희 금융부 기자.
권상희 금융부 기자

[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기준금리 인상과 은행 수신금리 인상 자제. 최근 금융당국의 이러한 행보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엇박자'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서로 상충되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와 소비자들 입장에서 혼란스럽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긴축적인 통화정책 펼치며 반대편에서는 유동성 풀어

앞서 지난 2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통상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긴축을 의미한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그간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사실상 금리를 제로에 가까운 수준으로 내리면서 대출을 실행해왔다. 

그리고 이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을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코로나 청구서'를 받아들 준비를 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면서 시중 유동성을 빨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역시 미국과 금리 차이가 너무 벌어지면 자본이 빠져나갈 위험이 있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추세다. 

문제는 이러한 글로벌 정세를 따라갈 수 없게 된 국내 환경이다. 지난 9월 말 김진태 강원지사가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면서 국내 채권시장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이에 정부는 뒤늦게 채권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50조원+α 지원 대책 ▲2조 8천억원 지원 대책 ▲한은의 환매조건부채권(RP) 6조원 매입 ▲5대 금융지주의 95조원 지원 ▲RP 2조 5천억원 추가 매입 등을 내놓았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회사채 금리가 부분적으로 안정됐을 뿐, CP 금리는 여전히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유동성 공급 실행 시기가 다소 늦은 데다가 규모 자체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한 손으로는 금리를 올려 통화량을 조절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유동성을 푸는 형국이 되어 버린 셈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지난 28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시장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5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 추가 캐피탈콜을 실시하고 금융권 규제도 완화하기로 했다. 

특히 한은은 이러한 유동성 지원이 기존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엇박자를 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단기자금시장은 한은 금리정책의 파급이 시작되는 곳으로 통화정책 전달 경로상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지원을 통해 공급되는 유동성은 RP 매각 등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곧바로 흡수할 계획이기 때문에 통화정책 기조와 상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은행은 혼란…대출은 확대해야 되는데 은행채 발행·수신금리 인상 막혀

다만 시장 참여자들, 특히 은행 입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5대 금융지주에는 95조원의 시장안정 지원 자금 지원을 요구하고 은행에도 기업대출 확대를 권장하면서, 정작 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은행채 발행과 수신금리 인상은 막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은행채 발행 자제를 요청하는 이유는 한정된 채권시장 수요가 은행채가 아닌 회사채로 가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의 은행채 순발행은 지난달 21일 국민은행의 1400억원 발행이 마지막이다. 정부는 은행권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8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 대출을 허용하고 내달쯤 은행채 발행재개를 검토중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기에 수신금리 인상 자제령까지 내려 은행들은 한층 곤란한 상황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24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직후 "금융사의 유동성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수신금리 과당 경쟁에 따른 자금 쏠림이 최소화되도록 관리 및 감독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다음날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확보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업권 내 과당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은행채 발행과 수신금리 인상을 할 수 없게 되면 은행의 자금조달 능력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정부가 앞서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비율) 정상화 유예조치나 예대율 규제 완화 조치를 시행하며 은행 지원 여력을 높였지만, 채권시장 불안으로 기업대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금융소비자도 혼란…대출문턱 높아지고 이자 부담 증가해

금융소비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추가 예·적금 금리인상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국이 이제 와서 예금 금리 인상을 제한한다고 해도 이미 높이 올라간 시장 금리를 다시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특정한 관점에서 금융당국의 조치가 일부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는 있다. 은행이 경쟁적으로 수신금리를 인상할 경우 조달비용이 올라가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이는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신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이미 손발이 묶인 은행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대출을 깐깐히 심사하는 방법뿐이다. 대출금리를 더 올릴 수도 있다. 이미 지난달 평균 가계대출 금리는 5.34%로 10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결국 이제는 신용점수가 높은 고객도 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거나, 대출 한도가 낮아질 수 있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필요한 자금을 2금융에서 빌릴 수밖에 없어질 수도 있다. 이미 기존에 신용점수가 낮았던 차주들은 여기서 더 밀리게 되는 셈이다.

이에 잠재적인 부실이 터져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3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70조6000억원을 기록해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면서 상환 능력이 떨어진 차주들이 늘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가계부채 부도 혹은 연쇄 부도를 촉발해 경제 전반으로 위험이 전이될 수 있다.

비록 현재 은행 자산건전성 지표는 역대 최저 수준이라고는 하나,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금융지원이 다섯 차례 연장된 결과에 불과할 뿐이다. 숨어 있는 부실이 어디서 터져나올 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 금융당국에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땜질'하듯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일관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이다. 현재의 '엇박자'식 정책으로는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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