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급등' 회사채, 대규모 만기도래 임박…이러다간 기업 '돈맥경화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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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급등' 회사채, 대규모 만기도래 임박…이러다간 기업 '돈맥경화 불가피'
  • 권상희 기자
  • 승인 2022.11.28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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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AA-등급 3년물 회사채 금리 5.436%
CP금리도 5%대 중반…금융위기 이후 최대
내년 만기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 71조원
한은, 채안펀드로 유동성 지원…"긴축 통화정책과 엇박자"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국내 신용경색 리스크로 채권 시장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면서 회사채 금리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정부가 한 달 전 '50조원+α'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들의 자금줄이 막히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한국은행이 유동성 공급을 위해 추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마저도 역부족이다. 향후 시장이 안정된다고 해도, 회사채 금리가 높아졌기 때문에 과도한 이자 부담으로 내년에는 기업들의 수익성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한계 기업도 다수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8일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신용 AA-등급 3년물 무보증 회사채 금리는 지난해 10월 연 2.302%에서 올해 10월 연 5.436%로 뛰었다. 일 년만에 약 2.36배 오른 것이다. 불과 3개월 전(연 4.126%)과 비교해도 1.31%포인트 급등했다.

특히 이날 기준 3년물 국고채와 AA-등급 3년물 무보증 회사채 간 금리 차이(신용 스프레드)는 1.74%포인트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 금융 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28일(1.593%포인트)보다 높다. 

신용 BBB-등급 3년물 무보증 회사채 금리의 경우에는 지난해 10월 연 8.376%에서 올해 10월 연 11.288%로 2.912%포인트 올랐다. 

단기 시장금리를 대표하는 기업어음(CP) 91일물 금리 역시 전 거래일까지 45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지난 25일 기준 CP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0.02%포인트 오른 5.5%를 기록했다. 올해 초 1.5% 선이었지만 일 년도 되지 않아 4%포인트 가까이 오른 것이다. 이는 지난 2009년 1월 12일(연 5.66%) 이후 약 1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기도 하다.

내년 만기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 71억원…역대 최대

통상 기업들은 만기가 도래하면 회사채를 새로 발행해 만기된 회사채를 상환하는 '차환'을 실시한다. 다만 채권시장에서 최근 발행금리가 급등하고 수요마저 부진해져 차환 발행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문제는 내년에 돌아오는 회사채 만기가 70조원 이상의 대규모라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내년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인 71조511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62조7375억원)에 비하면 13.25%(8조3136억원) 늘어난 셈이다.

이러한 상황은 2·3년물 회사채가 많은 것과 관련이 있다. 앞서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각국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한은도 2020년 5월 기준금리를 0.5%수준으로 인하한 바 있다. 

당시 기준금리가 인하되면서 회사채 발행에 따른 이자가 줄어들자 기업들은 회사채를 대규모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기준금리가 차츰 인상되면서 올해는 3.25%까지 치솟아 이제는 이자가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금리 인상에 따른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고, 최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관련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며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도 시장 경색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과 같은 경색이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차환 발행에 실패한 기업들은 대규모 회사채를 상환해야 한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급격히 오른 이자를 부담하거나 70조원이 넘는 회사채를 갚아야 하는 셈이다. 이에 회사채를 상환하고 다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 이를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도산할 경우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은, 지난달 이어 이달도 RP 매입으로 유동성 공급

한은은 자금경색 해소를 위해 유동성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하고 있는 기존의 통화정책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한은이 글로벌 긴축 기조에 맞춰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한은은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2차 캐피탈콜 출자 금융기관에 대해 RP 매입을 통해 최대 2조5000억원까지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채안펀드를 통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건설업 관련 비우량 회사채, A2등급외 CP에 대해서도 추가 매입할 전망이다. 사실상 한은이 은행을 통해 PF-ABCP, 저신용 회사채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한 달 전에도 6조원 RP 매입을 발표했지만 또 다시 유동성 대책을 내놓은 셈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실시하고, 지난 24일부터는 약 1조8000억원 규모의 중소형 증권사 부동산 PF-ABCP 매입프로그램을 가동한 바 있다. 이어 지난달에는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기도 했다. 

한은은 이번 조치가 연말을 앞둔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자금조달 우려 확산, 단기금융시장 경색 심화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은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이러한 유동성 공급 조치는 통화정책과 엇박자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대책 발표 이후 다른 시장은 안정됐는데 단기시장, CP시장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말 자금 사정을 고려해 사전적으로 대비하는 차원"이라며 "단기시장 안정이 한은 금리정책 파급이 시작하는 곳으로 통화정책 경로상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긴축적 통화정책과 상충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지만 지난번 6조원 RP 매입 지원과 마찬가지로 이번 지원은 RP 매각 후 곧바로 흡수할 것이기 때문에 유동성 문제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이번에 채안펀드가 확대되고 더 낮은 등급의 CP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유동성 경색과 불안심리를 안정시켜 통화정책 정상화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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