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최장수 CEO' 차석용 부회장의 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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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최장수 CEO' 차석용 부회장의 아름다운 퇴장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2.11.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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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국내 4대그룹 중 LG그룹이 제일 먼저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눈에 띄는 점은 LG그룹 역사상 최초로 여성 CEO가 탄생했다는 점이다. 조직에서 화장품사업부, 음료사업부를 이끈 이정애 부사장은 사장이 되어 LG생활건강의 차기 CEO로 내정되었다. 이보다 더 화제는 바로 전임 CEO인 LG생활건강의 차석용 부회장이 18년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이다.

LG생활건강을 그룹의 핵심으로 만든 차석용 매직

LG그룹의 핵심은 LG전자와 LG화학이다. 두 기업이 LG그룹을 상징했던 쌍두마차였으나 사실 취업준비생에게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던 계열사는 LG생활건강이었다. 전자,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이 즐비한 그룹에서 치약, 비누, 기타 세제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난제를 차석용 부회장은 18년간 매직이라는 말처럼 슬기롭게 해왔다. 

차석용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글로벌 감각이 뛰어난 경영인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술, 담배, 골프, 회식, 의전이 없는 문화를 조성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으며 회식과 경조사를 통해 국내에서 불필요한 인맥이 형성되는 점을 극도로 경계한 인물이다. 대신 맡은 시간 내에 최대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업무에서는 프로의식을 철저히 발휘했다. 

2001년 LG화학에서 생활용품과 화장품 부문이 분사되어 LG생활건강이 출발했을 때 지금과 같은 위상을 LG생활건강이 차지하리라고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치약, 비누, 세제라는 올드한 개념에서 벗어나 생활용품, 뷰티, 음료 3대 포트폴리오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차 부회장은 2005년 CEO로 취임한 이후 18년간 30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그는 선제적인 M&A를 통해 소비자에게 익숙한 코카콜라음료, 더페이스샵, 한국음료, 해태음료까지 확보, 화장품과 음료 부문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거두었으며 북미 시장에서도 뷰티사업을 견고히 형성하는 등 CEO로서 기업가정신과 리더십을 슬기롭게 발휘했다. 2012년 부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10년간 권위보다 임원으로서의 권한을 강조한 실전형 CEO다. 

그 결과, 차석용 부회장은 2005년 1월부터 2022년까지 18년간 LG생활건강을 이끈 역대급 기록을 재계에 남겼다. LG그룹에서 생활건강사업부문을 이끌어 온 CEO 중 5년 이상 재직한 임원이 없다는 점, 그리고 재계로 넓혀봐도 전문경영인이 10년 이상 CEO를 수행한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그는 국내 전문경영인의 역사를 스스로 쓰며 신화를 만들어나갔다. 

LG생활건강 차석용 부회장(사진왼쪽)과 이정애 신임 사장. 사진제공=LG생활건강

차석용 부회장이 용퇴를 결심한 이유

차석용 부회장이 LG생활건강을 맡은 이후 12년 연속 매출, 영업이익 기록을 갱신한 건 업계에서도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 그도 코로나 역풍을 피해가진 못했다. 올해 LG생활건강의 3분기 누적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각각 11%, 44% 감소한 5조 3779억원과 5822억원을 기록했다. 차석용 부회장이 CEO를 맡은 18년만에 처음으로 역성장이 나타났다. 

주가 역시 지난해 10월 140만원대에서 현재 61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주가의 대폭락과 매출액, 영업이익의 하락이 LG생활건강만의 이슈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코로나의 장기화에 따른 중국의 봉쇄정책,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차석용 부회장의 매직도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쉽게 통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물론, 실적 하락이 차석용 부회장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핵심요인은 아니다. 18년간 회사의 영업이익을 20배 이상 키운 공로가 있기에 LG그룹 역시 그에게 2025년 3월까지 CEO로서의 역할을 맡기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LG생활건강에 참신한 기업가적 역량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새 인물이 필요하다고 판단, 차석용 부회장은 CEO 자리에서 과감히 내려왔다. 

이정애 차기 CEO가 해결해야 할 과제 

차석용 부회장의 후임 CEO는 그룹 내부 그리고 외부 업계의 기대를 견뎌야 하는 점에서 어려운 자리임엔 틀림없다. 이정애 신임 사장은 신사업 기획 및 창출이라는 기업가정신의 영역과 구성원의 동기부여를 극대화시켜야 할 리더십이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LG생활건강을 이끌어야 한다. 중국 시장 침체라는 난제를 차기 CEO는 당장 해결해야 한다.

중국 당국은 지금도 강력한 방역 대책을 추진하고 있고 내년 개최 예정이었던 AFC 아시안컵 축구대회도 반납할 정도로 봉쇄라는 일관된 방향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이미 중국 시장 중심에서 미국과 일본 중심의 시장 다변화 전략을 선언했다. 공고한 장벽 그리고 까다로운 미국과 일본 소비자의 요구와 기호를 이정애 사장은 풀어야 한다. 

아울러, 3년 전 LG생활건강은 최연소 상무로 알려졌던 모 여성 임원의 갑질 사태 등이 블라인드게시판을 통해 알려지는 등 한차례 후폭풍을 겪었다. 당시 임직원들이 해당 임원의 부적절한 언행을 계속 제보했음에도 내부에서 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해 차석용 부회장까지 비판에 직면했던 경험이 있다. 이정애 사장은 조직단합이라는 내부 과제도 직면했다. 

차석용 부회장은 수많은 매직을 다양한 성과로 남기고 후배를 위해 용퇴를 결심했다. 그의 아름다운 퇴장 이후 LG생활건강이 이를 어떻게 보완할지 지켜볼 일이다.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으며 올 2월 '2022년 한국경영학회 학술상' 시상식에서 'K-Management 혁신논문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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