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절터, 신라시대 위세 높은 승단의 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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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절터, 신라시대 위세 높은 승단의 본거지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2.0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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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전리사지에서 '범웅관아지인' 명문 확인…음식 보관하는 창고 터도

 

태백산 자락의 삼척 흥전리 절터가 신라시대 위세높은 절터였음이 확인되었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흥전리(興田里)라는 마을이 있다. 원래는 화전민들이 밭을 일군 곳인데 일제시대에 탄광이 발견되면서 탄광촌이었다. 그 뒷산에 오래된 절터가 있는데 그 절이 돈각사라는 설과 한산사(寒山寺)라는 설이 있다. 그 절터에 전형적인 신라시대 3층석탑이 무너진채 남아 있어 꽤나 큰 절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이 절터를 2014년부터 삼척시청(시장 김양호)과 (재)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제정스님)가 발굴조사했더니 많은 유물과 유구가 나왔다.

이번 흥전리사지 발굴에서는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도장 두 점이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굴됐다. 도장은 승단 조직에서 사용한 승관인(僧官印)으로 확인되었다. 즉 신라시대에 이 절이 큰 승단을 이끌고 있었음을 확인해준 것이다.

 

▲ 이 도장에 뭐라고 쓰여있을까. 왼쪽은 ‘범웅관아지인(梵雄官衙之印)’의 전서체이고, 오른쪽은 ‘만(卍)’자의 기하문이다. 삼척 흥전리사지에서 발굴된 청동인장이다. /문화재청 제공

 

인장의 특징은 글씨체다.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볼수 없는 글씨체다.

인장 한 곳은 6개의 글자가 전서체(篆書體) 형태로 새겨져 있고, 또 다른 인장에는 하나의 글자가 기하문(幾何文)으로 새겨져 있다.

(전서체는 중국 진시황제가 제정했다고 하며, 도장을 팔 때 많이 사용하는 서체다. 기하문(幾何文)은 직선과 곡선의 도형을 가진 추상적 무늬다.)

전문가들이 해독한 결과, 한 점의 도장 문구(印文)는 ‘범웅관아지인(梵雄官衙之印)’으로 판독되었다. 범웅(梵雄)은 석가모니 또는 부처님을 뜻한다. 부처님의 관아, 즉 승단의 도장이라는 의미다. ‘범웅관아(梵雄官衙)’라는 명문은 통일신라 시대 승단 조직과 국가와의 관계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판단된다.

서체는 당나라 관인(官印, 관청에서 공적으로 사용한 인장)과 유사한 구첩전(九疊篆, 글자 획을 여러 번 구부려서 쓴 전서체)의 초기형태다. 이 인장은 통일신라 시대 승단에서 사용한 승관인으로 판단된다.

기하문자로 되어 있는 다른 인장의 글자는 ‘만(卍)’자 상으로 선을 연결한 문양으로 확인되었다.

 

▲ 삼척 흥전리사지에서 발굴된 청동인장 /문화재청 제공

 

출토된 청동인장 2점은 모두 완전한 형태이며, 이 중 하나는 청동 인주함에 인장이 담긴 채 출토되었다. 보존처리 중인 청동인장은 2과 모두 정사각형(5.1㎝)으로 윗면에 끈을 매달 수 있는 손잡이가 있는 주문방인(朱文方印)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주문방인(朱文方印): 글자를 양각으로 새겨 글자 부분에 인주가 묻어 도장을 찍었을 때 글자가 붉게 보이는 것을 말한다.)

범웅관아지인(梵雄官衙之印)’ 청동인장은 경주 황룡사지 출토품과 손잡이와 명문 서체 등에서 전체적인 형태와 크기가 매우 흡사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편에는 통일신라 시대 문무왕이 모든 관인을 국가가 주조(鑄造)하게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에도 정종 때에 ‘식목도감(式目都監)’에서 지방 주군(州郡)이 사용하는 승관인을 거둘 것을 주청하는 기사가 있어 국가에 의해 관인이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발굴현장에서 나온 청동인장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또 이번 조사에서 강원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장고(醬庫, 장류, 항아리 보관시설) 터가 확인되었다. 절에서 된장, 간장등을 오랬동안 보관했음을 보여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지 내부에 대호 12점을 정연하게 묻어 사찰음식 재료를 보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형태의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는 남원 실상사를 비롯해 경주 황룡사지와 성건동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으며 선종사찰 고원(庫院, 주방 및 식재료 창고)시설의 장고였음이 밝혀졌다.

장고에는 12점의 대호(大壺, 항아리)를 묻었던 흔적이 나타났다.

 

▲ 건물터 내부의 토기매설 시설 /문화재청 제공

 

삼척 흥전리사지는 통일신라 시대 영동지역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찰로 그간 금당지(金堂址), 탑지(塔址) 등 주요 가람시설이 확인되었다. 특히, 신라 시대에 왕이 임명하는 승단의 최고 통솔자인 ‘國統’(국통)이 새겨진 비조각(碑片)을 비롯하여 청동정병(靑銅淨甁), 금동번(金銅幡, 깃발) 등 중요 유물이 출토되어 위세 높은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흥전리 사지는 산맥과 물길이 나뉘는 매봉산 자락에 있으며, 고려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척시청은 삼척흥전리사지의 실체와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고 체계적인 보존‧관리‧활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18년 2월에 학술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 학술대회를 통해 내년에 흥전리 절터를 사적으로 지정할 것을 신청할 계획이다.

 

▲ 건물터의 구덩이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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