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사건의 지평선', 가수 윤하의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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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사건의 지평선', 가수 윤하의 역주행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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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개기월식이 펼쳐진 지난 8일은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이 많이 흘러나오는 날이었다. 사건의 지평선은 ‘우주의 블랙홀에서 관측되는 한 경계면’을 의미한다. 보름달이 지구 그림자에 숨더니 다시 붉은 달로 나타나 천왕성을 집어삼키는 신비한 현상과 사랑의 변화를 우주의 법칙으로 은유한 노래 ‘사건의 지평선’은 묘하게 어울린다. 

그런데 윤하가 부른 ‘사건의 지평선’은 우주쇼로 인한 반짝인기가 아닌 가을 초부터 역주행이 진행 중인 노래다.

우주를 노래하는 윤하

윤하는 ‘우주여신’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천문학에 관심 많은 뮤지션이다. 그녀가 ‘혜성’, ‘살별’, ‘블랙홀’ 등과 같은 우주에 관한 노래를 자주 불렀기 때문이다. ‘사건의 지평선’ 또한 우주 현상을 소재로 만든 노래다.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은 물리학 용어로 블랙홀의 특성을 설명할 때 쓰이기도 한다. ‘외부에서는 물질이나 빛이 내부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으나, 내부에서는 원래의 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경계’, 즉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경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윤하는 유튜브를 통해 사건의 지평선 개념을 접했고 거기서 얻은 생각을 노래로 표현했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었다. 

그녀는 소멸로 향하는 이 구간을 이별 뒤에 맞이하는 세계로 비유했다. 블랙홀 안쪽과 이별 이후의 공통점은 모두 앞날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라고.

가사는 윤하가 직접 썼다. 그런데 곡 길이가 5분이다. 3분짜리 노래가 많은 가요계 현실을 고려하면 무척 길다. 방송에서 틀어주기 부담될 정도다. 하지만 대중은 열광했고 그 분위기는 지금도 커지고 있다.

역주행이 시작되고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은 지난 3월에 발표되었지만, 한동안 잠잠하다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게 된 노래다. 9월경부터 역주행 조짐이 있었다. 특히 유튜브에는 각종 공연에서 ‘사건의 지평선’을 열창하는 윤하의 모습이 알고리즘으로 올라오는 날이 많았다. 

필자는 원곡을 들어보려고 10월 어느 날 음원 어플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곡을 검색하기도 전에 인기 노래 리스트에서 눈에 띄었다. 호기심이 들어 다른 날 차트를 열어보았더니 순위가 올라 있었다. 역주행이 시작된 것으로 보였다.

결국 1위를 차지했다. '사건의 지평선'은 11월 7일에 멜론·벅스·지니·바이브 등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일간 1위에 올랐다. 그리고 1위는 진행형이다. 11월 10일 기준으로 ‘사건의 지평선’은 나흘째 멜론 차트 1위를 지키고 있다.

필자는 지난 2021년 3월에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을 다뤘다.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에는 열심히 공연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올라온 게 크게 작용했다. 윤하의 역주행은 열성껏 공연하는 그녀의 모습은 물론 음악 그 자체가 큰 작용을 했다. 

3분짜리 노래도 길다며 2분대 노래가 나오는 상황에서 5분여의 노래는 아마도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음악’을 기다렸다는 대중이 평이 많았다. 외래어를 전혀 쓰지 않은 이름다운 가사도 신선하게 다가갔다.

그런데다 윤하의 공연 장면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었다. 윤하는 지난 여름부터 가을을 거치며 많은 페스티벌과 대학교 축제에 초대받아 '사건의 지평선'을 열창했다. 현장에 있던 이들은 윤하의 혼신 다하는 공연 영상을 다른 이들과 공유했다. 

그리고 필자가 그런 영상 중 몇 개를 유튜브에서 보게 됐고 음원 사이트까지 방문해서 듣게 되었다. 많은 대중도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음원 차트 역주행의 큰 동력이 됐을 것이다.

윤하 6집 앨범 리패키지

중견가수? 혹은 2030의 자화상

윤하는 16세인 2004년에 일본에서 데뷔해 18년째 활동 중이다. 활동 햇수로만 보면 그녀는 중견가수다. 

윤하는 데뷔 초 뛰어난 가창력과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주목받으며 ‘비밀번호 486’ ‘기다리다’ 등을 히트시켰다. 하지만 실력에 비해 인기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도 있었다. 게다가 소속사 문제와 건강 이상을 겪으며 오랫동안 위축된 활동을 했었다. 그런 그녀가 역주행을 경험하며 대중의 사랑을 다시 얻게 되었다. 

윤하는 2030세대의 자화상 같은 가수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윤하의 음악을 듣고 자란 2030세대가 ‘사건의 지평선’ 역주행에 특히 열광한다. SNS를 보면 “1990년대생 마음속 어딘가에는 반드시 윤하가 있다”, “추억 속에 묻을 뻔한 가수가 엄청난 명곡을 내줘 고맙다”는 취지의 글들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대중의 감정이입이 역주행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저성장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맨몸으로 맞닥뜨리는 2030세대에게 윤하의 활동과 역주행은 큰 위로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을 지켜보며 많은 현역과 예비역이 함께 감동하고 기뻐했다. 그들에게 브레이브걸스는 전우였으니까. 마찬가지로 윤하의 지난 18년 활동과 함께 성장한 2030세대가 윤하의 성취를 자신의 성취로도 받아들여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

대중문화, 특히 음악은 감정에 호소하는 예술이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노래는 재능 가진 이라면 만들 수 있겠지만 감정이입을 이끄는 노래는 아무나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2022년 가을 ‘사건의 지평선’이 그런 노래가 되었고, 윤하는 그 노래를 만들고 부른 가수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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