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카카오먹통' 총수 부르면 해결되나... 힘자랑 국감 '이젠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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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카카오먹통' 총수 부르면 해결되나... 힘자랑 국감 '이젠그만'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10.17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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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 감시 국감 본연의 기능 되찾아야
기업인 망신주기식 소모적 구태 멈춰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비상이다. 총수나 최고경영자(CEO)가 국정감사 증인으로 소환된 기업의 모습이다.

최소 2주전부터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로펌까지 동원해 컨설팅을 받는 곳도 있다. 또 모의 국감을 치르며 표정과 손짓까지 예행연습한다. 실무자들 사이에선 예상 질의가 오가고 기업 정보 공개 범위를 두고 법률 자문을 받기도 한다. 수면 아래에선 이른바 '증인 장사'도 횡횡한다.

국감 증인에서 빼주는 대신 민원을 해결해주는 식이다. 누구나 알고있지만 누구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시간과 인력, 돈을 들여 준비한 국감이지만 정작 국회에선 생산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총수나 CEO 등 기업인의 말을 들을 새도 없이 의원들의 꾸중과 윽박이 이어진다. 망신 주기 질책이 질의시간 대부분을 잡아 먹는다.

10시간이 넘는 국감장에서 기업인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돼기 일쑤다. 시간 낭비다. 재계 관계자는 국감에 대해 이렇게 반문한다. "기업이 잘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면전에 앉혀 놓고 호통치고 면박주는 건 국감을 하는 진짜 이유가 아니지 않느냐"고.

국감을 하는 이유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국감은 국정 운영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입법 활동과 예산 심의에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는 장이다.

국정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한다. 삼권분리의 원칙이 국감 속에 있다.

다시 말해 민간 기업은 주요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연례 행사처럼 각 상임위 소속 의원들은 증인·참고인 제도를 이용해 기업인들을 대거 국감장으로 소환하고 있다.

망신 주기가 고질병처럼 굳어가고 있다. 재계 순위가 높은 재벌 총수를 불러다 호통 칠수록 인지도나 권위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각 상임위별로 '총수 호출'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해 10월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한국소비자원·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범석 전 카카오 의장이 머리를 감싸고 안자 있다. 사진=연합뉴스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카카오 먹통 사태'와 관련해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전 이사회 의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과방위는 앞서 남궁훈·홍은택 카카오 각자대표와 최수연 네이버 대표, 박성하 SK C&C 대표 등 실무 대표들을 증인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의원들의 각오는 남다르다. 초연결 사회를 대표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10시간 넘는 먹통 사태를 규명하겠다며 각오를 다진다.

전 국민적 피해가 큰 사안인 만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겠다는 증인 채택 명분은 응당 일리가 있다. 문제는 항상 빛좋은 개살구로 그쳤다는 점이다.

시곗바늘을 1년 전 국감으로 돌려보자. 당시 국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김범수 국감'이다.

김 전 의장은 재계 역사상 처음으로 한 국감에 세 차례나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전 의장은 정무위를 시작으로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 그리고 과방위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의원들은 카카오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김 전 의장은 "사과드린다" "죄송하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 이외 다른 말을 할 시간도, 여유도 없이 고개를 떨궜다. 상생을 위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던 의원들은 이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규제 완화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다른 목소리를 낸다. 국감이라는 한 편의 정치쇼를 보는 듯 하다. 

지금 세계 경제는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불확실성에 빠져 있다. 어느 때보다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이 시점에 1분 1초가 아까운 기업인을 단 몇 초, 몇 분의 답변을 듣기 위해 불러다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구태를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행정부를 감시해야 할 국회의 의무가 이번 국감에서 카카오 먹통 사태 규명이라는 명목 아래 기업인 망신주기로 퇴색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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