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버블 붕괴⑥…증시 대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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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버블 붕괴⑥…증시 대탈출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1.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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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시작되며 대공황 때의 전조가 나타나며 증시 폭락장세

 

10년간 장기호황, 신기술에 의한 경제개발, 증시 장기 상승후 폭락, 기업과 금융사기범 재판, 신경제의 몰락….

이런 테마는 21세기 첫 경기침체를 맞은 미국 경제의 문제를 서술한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 주제는 바로 대공황이 시작된 1929~30년에 미국 언론들을 장식했던 내용이다.

상황을 돌려 1920년대로 돌아가보자. 당시 철도와 전기라는 신기술이 개발돼 미국 경제는 10년간 벌겋게 달아올랐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경제가 새로운 경제의 영역에 들어섰으며, 불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29년 10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던 뉴욕 증시는 폭락하고, 대공황이 시작됐다. 미국 금융계를 쥐고 흔들었던 JP 모건 가문은 주가 조작혐의로 의회의 페코라 청문회에 불려 다니면서 대공황의 지목되었다. 10년 이상 지속되던 장기 불황은 2차 대전이 터지면서 전쟁 특수로 인해 종식됐다.

1990년대 미국 경제는 대공황 전후와 상당한 부분에서 오버랩되었다. 인터넷과 통신 기술등 이른바 하이테크 산업의 발달에 의해 미국 경제는 10년간 장기호황을 구가했고, 신경제론자들은 미국에 불황 사이클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잭 웰치 등 스타 기업인들은 엄청난 스톡옵션을 챙기며 주가 상승에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더 이상 상승 한계에 부딛치며 2001년 3월로 공식적인 침체에 들어갔고, 주식시장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기업 경영자들은 스톡옵션으로 받은 재산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려고, 내부자거래, 회계장부 조작, 탈세를 감행했다. 그결과는 신용의 위기였다. 투자자들은 기업을 불신하고, 기업의 유가증권(주식)을 던져버리면서 뉴욕 증시는 연일 폭락장세를 연출했다.

 

9·11 테러가 발생한지 1년후 2002년 9~10월 뉴욕 주가는 테러 직후의 폭락 지점 이하로 떨어졌다. 테러에 의한 심리적 패닉이 아니라 이번에는 정말로 뉴욕 증시의 거품이 빠진 것이다. 미국 성년의 절반을 차지하는 주식투자자들은 “이젠 주식이 싫다”며 증시를 떠나는 엑소더스 현상이 벌어졌다. 엔론, 월드컴, 머크, 존슨&존슨등 미국인들이 선호했던 기업들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사기 행각이 드러나면서 뉴욕 증시의 젖줄이었던 양떼들(소액투자자)이 좁은 계곡을 급히 빠져나갔다. 먼저 빠져나가면 덜 손해를 보고, 뒤쳐지면 이리에 잡아먹힌다는 투자군중의 심리적 패닉현상이 형성된 것이다.

일반투자자들이 기업 경영인들의 연쇄적인 사기범죄를 보고 이젠 주식을 사서 저런 사기꾼을 도와줄수 없다며 처벌에 나서 뮤추얼 펀드에서 급하게 빠져나갔다. 당시 투자자의 분위기는 트랜스아메리카의 매니저 제프 반 하테가 한 말을 통해 정확히 진단할수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일반투자자들이 지난 2년반 동안 손해를 보고서 이젠 증시에서 손을 떼려고 한다”며, “개미군단이 증시에 염증을 느꼈다”고 말했다. 뉴욕 월가에는 주요 뮤추얼 펀드들이 직장인들의 401(k)등 은퇴연금 상환 요구로 자금 위기에 처해 있다는 루머가 돌았고, 상당수 펀드들이 상환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 매각에 나서면서 주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AMG 데이터 서비스에 따르면 뉴욕증시가 가장 불안했던 2002년 9월 11~17일 사이 1주일동안 증권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114억 달러로, 2002년 6월 한달동안의 이탈 자금은 111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또 지난해 테러 직후 뉴욕 증시가 극도로 불안할 때 1주일에 50억~60억 달러가 빠져나가던 것보다 두배 이상의 물량으로, 이 기관이 1992년 이래 통계를 낸 이래 최고의 수위었다. 뉴욕 월가에서는 1987년 10월의 블랙먼데이, 또는 1929년 10월의 대폭락을 재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팽배했다.

1990년대 미국 신경제(New Economy)의 지수격인 나스닥 지수는 2002년 10월초 1,100 포인트대로 떨어져 6년만에 최저치로 꺾어졌다. 한때 5,000 포인트까지 치솟았던 나스닥 지수는 2년반만에 5분의1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지 않고, 1990년대에 형성된 통신ㆍPC와 반도체 분야의 엄청난 과잉 설비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인 미국 경제가 3년째 기력을 상실하면서 1990년대 장기호황이 형성한 뉴욕증시의 자산거품이 급속하게 붕괴했다. 같은 시기에 일본은 수차례 단행한 금융개혁의 결과를 얻지 못한채 10년째 가라앉은 도쿄증시가 맥없이 무너졌다. 미국과 일본 증시 폭락의 이중파고는 한국은 물론 유럽, 이머징 마켓의 잠재적 내부 문제를 뒤흔들면서 세계자본시장을 연일 강타했다.

뉴욕 증시의 주요지수는 연일 기록을 경신하면서 5~6년전 수준으로 돌아갔고, 일본 주가지수는 20년전 수위를 거슬러 내려갔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공격을 기정사실화하고 여론과 지지층 확보에 여념이 없었고, 전쟁 발발에 대한 우려는 유가 폭등을 유발, 세계경제와 증권시장에 악재가 되었다. 1997년의 아시아 위기, 1998년의 러시아 국가 파산이 국지적 금융위기로 지나갔지만, 지금의 위기는 세계 1,2위 경제 대국에서 발원한 것인만큼 세계경제에 주는 파장과 진폭이 엄청나게 컸다.

1980년대말엔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을 일본이 받쳐주고, 1990년대엔 일본의 금융시장의 동요를 미국이 지탱하면서 세계 경제가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글로벌 단일 시장이 완성된 21세기 첫 세계불황에선 뉴욕 증시 폭락이 일본과 유럽 증시를 흔들고, 도쿄 증시 폭락이 다시 뉴욕 증시를 동요케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각국의 증시 동시 폭락은 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을 유발시킬 가능성을 낳았다. 일본은 부동산과 증시 붕괴로 이미 몇 년째 디플레이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미국도 뉴욕 증시 폭락이 가속화할 경우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디플레이션이 우려됐다. 디플레이션은 기업 수익을 감소시키고, 소비 위축을 초래하므로 경기 하강의 원인이 된다.

세계 증시 동시폭락은 자본의 국제이동을 저해하고, 선진국의 해외직접투자(FDI)를 위축시켰다. 자국 증시가 하락하면서 미국 뮤추얼펀드들은 해외투자 자금을 회수하고, 일본도 미국에 투자한 자금을 본국으로 송금시키는 바람에 국경을 넘나드는 투자자금이 급감했다.

뉴욕 증시의 블루칩 지수인 S&P 500 지수는 2002년 10월 9일 현재 2000년초 정점대비 49% 하락, 1973~74년의 베어마켓(bear market) 때의 하락 폭(48%)을 넘어섰다. 나스닥 지수는 최고점의 5분의1 수준으로 떨어져 지난 2년 반 동안의 뉴욕 증시 약세장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월가 투자자들 사이에는 “앞장서서 사면 손해를 본다. 더 이상 떨어지기 전에 팔자”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일부 대형 투자기관들은 다우존스 지수가 6,000 포인트대에 진입할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 증시상승을 의미하는 황소와, 하락을 의미하는 곰 형상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위키피디아

 

1929년 미국의 대공황과 90년대 일본의 장기침체는 증시 붕괴에서 출발했다. 주가 폭락이 자산 거품을 붕괴시키고, 은행 부실과 투자 부진, 소비 위축의 악순환을 초래했다.

뉴욕 증시의 S&P 지수는 2년전 정점에서 50%, 나스닥 지수는 80% 폭락하고, 뉴욕 증시의 시가총액은 그사이에 16조 달러에서 9조 달러로 급감했다. 뉴욕 증시의 거품 붕괴는 미국 경제 곳곳에 상처를 냈다. 미국 2위 상업은행인 JP 모건의 부실채권 규모는 통신주 폭락으로 14억 달러로 불어났다.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주가하락으로 담보력이 약해지면서 은행의 마진콜을 메우려고 소비를 줄였다. 주가 하락이 장기화될 경우 미국의 금융부실은 일본처럼 위험수위에 이를 가능성도 있었다.

주가 하락은 기업의 신용을 저하시켜 자본조달을 어렵게 하고, 투자를 지연시키고 있다. 미국 2위 자동차회사인 포드의 회사채 10년만기물의 가산금리가 미국 국채(TB)에 대해 6%로 치솟아,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2년 뉴욕 증시 폭락은 역사적으로 1973~73년의 베어마켓(bear market)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있다. 뉴욕타임스지의 증권담당 평론가인 플로이드 노리스는 1974년의 정치ㆍ경제 상황이 2002년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당시의 약세장과 비교한 적이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S&P 500 지수가 2000년 3월의 정점에 비해 49% 하락한 것이 3년째 약세장이 형성됐던 1974년의 블루칩 지수의 하락 비율과 같으며, 따라서 뉴욕 증시가 베어마켓을 끝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1974년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정치 스캔들과 오늘날 기업의 회계 부정이 비슷하고, 베트남전과 이라크 공격, 더블딥의 불황, 유가 상승등도 3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비슷하게 전개됐다. 또 당시엔 주력 상승주 50개의 거품(니프티 피프티)이 꺼지면서 장기 베어마켓이 형성됐고, 2000년대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기술주의 거품이 꺼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저점 형성론이 성급한 견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에 이어 북한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나라를 전쟁 상황으로 이끌고 있어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 되고 있으며, 미국 경제가 언제 회복될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또 대공황때보다 고평가된 블루칩 지수가 3년만에 조정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줄리어스 베어의 애널리스트 브레트 골러퍼는 “경기 하강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FRB가 무기력해졌으며, 뉴욕 주가가 여전히 고평가돼 있다”며 저점 형성론에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뉴욕 증시 하락, 달러 약세, 회계부정 스캔들 등으로 외국 기업들이 뉴욕증시 상장을 기피했다. 1990년대말에는 뉴욕 증시에 상장해야 글로벌 기업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뉴욕증시 상장을 추진하던 외국 기업들이 계획을 포기하는가 하면, 이미 상장한 회사도 철수하는 등 분위기가 바뀌었다.

2000년 뉴욕증시의 주식예탁증서(ADR) 규모가 200억 달러로 피크를 이룬후 2001년에는 84억 달러로 한해전보다 70% 감소했고, 2002년에는 이보다 더 줄었다.

해외 기업들이 뉴욕 증시 기피 현상의 원인은 엔론ㆍ월드컴 등의 회계부정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뉴욕 증시의 신뢰도가 떨어진데다 규제가 강화된 미국의 회계법으로 외국 기업들이 굳이 뉴욕증시에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002년초에 독일 자동차 메이커인 포르셰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추진했으나, 번거롭게 최고경영진의 재무제표 서약을 할 필요성이 없다며 상장을 포기했다. 개정된 미국 회계법은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반드시 재무제표에 대한 서약의 의무화했으나, 독일 회계법에는 이사 두명의 서명이 필요할 뿐이다.

일본의 다이와 증권도 NYSE 상장 계획을 포기했는데, 미국의 개정회계법을 준수하며 굳이 미국에 상장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사치성 소비재 판매업체인 LVMH는 나스닥에서 등록 자체를 취소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가 회복하고, 뉴욕 증시가 살아나면 외국기업들의 상장이 늘어나겠지만, 90년대말처럼 해외기업이 뉴욕증시로 몰려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뉴욕 증시에 대한 믿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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