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영국의 '금융시장 대혼란'이 남긴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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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영국의 '금융시장 대혼란'이 남긴 시사점
  •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
  • 승인 2022.10.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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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 9월말 트러스 내각이 감세안을 비롯한 경기 부양 대책을 내 놓은 이후 영국 금융시장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금리 폭등과 파운드화 급락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은 영국 중앙은행의 채권 매입 조치 등으로 인해 어느 정도 진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영국의 10년만기 국채 금리는 9월 22일부터 27일까지 4거래일 동안 3.347%에서 4.59%로, 30년만기 국채 금리는 같은 기간 3.59%에서 4.998%까지 각각 125bp, 140bp 상승했고, 1.133파운드였던 달러파운드 환율은 1.077파운드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후 10월 중순까지도 금리는 하루에 20~30bp씩 움직이며 요동치고 있다. 

사실 새로운 내각이 감세 정책이 내 놓을 것이라는 소식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소득세, 부동산 취득세 인하 ▲인상 예정이었던 법인세 유지 ▲배당금 과세 계획 철폐라는 감세 정책과 함께 가계의 에너지 부담 상한을 정해 놓은 이번 예산안은 1970년대 이후 가장 큰 감세 예산으로 평가 받으면서 재원 마련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英 금융시장을 뒤흔든 섣부른 감세정책

또한 정부로서는 고물가와 긴축으로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재정정책을 써서 침체를 막아보려는 시도였겠지만,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정책을 영국의 전반적인 거시 안정성을 해치는 행위로 평가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게다가 영란은행의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가세했다. 영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현재 9.9%에 달하고 있는 반면 기준금리는 2.25%에 불과해 실질 기준금리 수준은 -7%를 상회하는 상황이다.

이렇듯 높은 물가는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훼손과 탈세계화 및 경제 블록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비용 요인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코로나19 이후 진행된 대규모의 통화, 재정정책이 자리잡고 있는데, 여기에 다시 한번 재정 확대를 계획한 셈이 된 것이다. 당연히 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될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기준금리 인상 폭과 속도가 크고 빨라질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기대와 전망 만으로 장기 시장금리가 그렇게 큰 폭으로 오를 일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설령 기준금리를 100bp 인상하는 기대가 형성된다고 해도 장기금리는 그보다 훨씬 덜 오르는 게 일반적인 데다, 파운드화 환율의 변동폭에서 보듯 글로벌 투자자들의 불신은 영국 화폐 가격의 5% 정도 하락에 그쳤기 때문이다. 주가도 5% 이내로 떨어졌다.

그러나 30년만기 국채금리가 나흘간 140bp나 오른 것은 해당 채권가격이 단기에 35% 정도 급락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에야 문제가 없겠지만, 국채를 시가평가해야 하는 금융기관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충격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곧 영국의 연금 펀드의 국채 투매에 따른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연금 펀드가 저금리 환경에서 사용해 왔던 전략이 금리 급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영국의 연금 펀드가 운용하는 방식, 즉 부채연계투자(Liability Driven Investment: LDI)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LDI란 무엇일까?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저금리 상황에서 급격하게 늘어난 연금 부채의 현재가치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만들어진 전략으로, 장기국채 매입이나 장기국채 매입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파생상품을 활용한 자산관리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선진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보험사들 역시 영국만큼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채택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저금리 하에서의 자산부채 연계 관리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었다면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방법인 것이다. 적절한 금리 하에서는 부채의 현재가치 상승 폭이 크지 않았을 것이고, 파생상품을 활용해 듀레이션 확대에 대응할 필요성도 상대적으로 작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전략을 세우면서 당연히 연금 펀드 자체적으로 금리 상승에 대한 충격에 대응하고 유동성 부족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는 등 나름의 기준과 원칙들을 만들어 운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금리 상승은 그 자체가 부채의 현재가치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작년에 비해 연금 지급 관련 위험은 오히려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사진=EPA/연합뉴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가져온 혼란

하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서 자신들이 설정했던 기준과 원칙에 비해 금리가 너무 빨리 급등했고, 때문에 기존 파생상품 거래 중 일부에서 손실 폭이 커져 마진콜 대응을 위한 유동성이 필요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금리가 더 오르면 보유하고 있는 장기 현물 채권의 가격이 급락할 것이므로, 유동성 마련과 가격 급락에 대한 대응으로서 급격하게 채권 매도 물량이 나타났을 수 있다. 영란은행이 기본적인 긴축 기조의 취지를 훼손하면서도 긴급하게 대규모 국채 매수에 나선 것은 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방치하면 금리 상승과 유동성 부족이 악순환 고리로 연결되어 일부 연금 펀드의 부실화가 불가피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영국 금융시장의 혼란은 한편으로는 정책의 신뢰 상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저금리 환경에 대한 적응이 맞부딪힌 결과로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이 진행하고 있는 강력한 긴축은 글로벌 동반 긴축에 대한 강력한 요구를 내포하고 있는데, 선진국조차도 이를 거스르는 정책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고, 이 과정에서 저금리 환경에 맞춰 구축해 놓은 금융기관들의 자산 배분 전략이 언제라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환경은 금융기관들의 자산 배분 전략 이외에도 가계의 자산 부채 배분 전략과 기업들의 조달 및 투자 전략에도 영향을 미쳐 왔는데, 신뢰의 하락과 더불어 금리가 급격하게 오를 경우 모두 같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국제통화기금(IMF)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는 연일 내적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코멘트를 내 보내고 있기도 하다. 통화 긴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재정 확장이라는 정책 믹스를 사용할 때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기본적으로는 재정 역시 긴축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정 확장이 물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갖는 자연스러운 우려라고 볼 수 있지만, 각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의도대로 허리띠를 졸라맬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의미한다.

게다가 최근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시장의 예상을 넘어 끈덕진 물가 상승 압력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 준 바 있다. 이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현재 형성된 컨센서스를 넘어 더 높은 수준까지 이어질 수 있고, 결국 다른 국가들도 이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 폭을 높여야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글로벌 긴축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이렇게 되면 현재까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미 대출 금리는 올해 초에 비해 크게 높아지고, 변동금리 대출자의 경우 이자 부담이 급격하게 커진 상황인데, 그 부담이 더욱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이미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단기 자금시장 역시 더욱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프로젝트 금융의 안정성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관련 투자가 줄면 금융기관들은 유동성 압박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동성 압박에 대한 대응은 유동성 마련이고, 유동성 마련은 결국 자산 확대의 중단과 보유 자산의 매각으로 이어질 텐데, 그렇다면 다시 시장금리가 오를 것이다. 구조는 전혀 다르지만, 영국의 연금 펀드가 봉착했던 유동성 문제가 우리 금융기관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 정책당국에서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한 각종 대책을 이미 마련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증시안정펀드에 이어 채권안정펀드를 재가동할 것이라는 소식이 있는데, 이는 정책당국이 회사채와 기업어음 시장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적절한 대책을 통해 자금시장이 안정될 경우 불필요한 자산시장 혼란과 비용을 치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정책 결정이 다시 유동성의 공급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발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장이 이러한 우려를 갖는 순간 국내외 투자자들이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가 이번 연준이 추진하는 글로벌 긴축 과정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어 보인다. 가급적 그러한 상황을 피해야겠지만, 기준금리 인상 폭이 현재 예상이나 우리나라 경제가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그리고 저금리에 길들여진 구도 때문에 나타날 금융시장 불안을 막아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책의 신뢰도 함께 유지해야 한다면 때때로 자산시장 전반에 걸쳐 덜컹거림이 나타날 수 있다. 아직도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최석원 부문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2016년부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근무하다가 최근부터 지식서비스 부문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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