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희의 노동법 다르게 보기] 노동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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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희의 노동법 다르게 보기] 노동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 배동희 노무사
  • 승인 2022.10.1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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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희 노무사] "진리(眞理)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한 구절이다. 필자의 모교 교훈이기도 하다. ‘진리’가 무엇인가?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던지는 질문이다. '참된 이치'인 진리에 대한 정의는 철학, 논리학, 수학 등에서 다양한 개념으로 쓰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이라고 풀이한다. '모든 사람에게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는 명제도 시간에 관한 진리로 우리는 인식한다.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와 같이 교훈이나 종교적인 내용으로 이어지거나,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와 같은 철학적인 사변으로 이어지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 '시간이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는 명제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시간의 체감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세월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1년이든 한달이든, 시간의 속도가 빨라진다. 하루는 아내에게 "1년이 점점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면서 "수학적으로 '1/나이(n)'의 속도로 체감된다"고 했더니,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냐며 1년의 체감속도는 "두루마리 화장지 한바퀴가 도는 길이"라고 타박한다. 졌다. 애초에 분석은 직관의 상대가 안된다.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

물리학에서는 시간의 속도가 장소나 움직임에 따라서 실제로 다르게 간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움직이는 물체(빨리 움직일수록)나 아래쪽(평지, 물체 덩어리에 가까울수록)이 멈춰 있는 물체나 위쪽(산)보다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른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미 1세기 전에 깨달았고, 이를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의 방정식으로 나타냈다. 이는 양자역학의 발전과 과학적 실험으로 증명됐다. 나아가 스티븐 호킹은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에서 "오늘날 시간과 공간은 동역학적인 양(量)으로 간주된다. 각각의 개별입자나 행성들은 그것이 움직이는 위치나 방법에 따라서 각기 고유한 시간척도를 가진다"고 했다.

이제 시간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으로 인식되는 개념으로 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시간이 일정한 속도가 아닌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체감한다. 필자가 대기업이나 대형로펌에서 근로자로 10여 년을 근무할 때나 노무법인의 대표로 있는 지금이나 공교롭게도 월급날이 똑같다. 그때는 천천히 흘러 한달이 무지 길었고, 지금은 빛과 같은 속도로 스쳐 돌아서면 한달이 지난다. 

근로시간 PG. 사진=연합뉴스
근로시간 PG. 사진=연합뉴스

'시간'과 밀접한 노동법규와 제도

노동법에서 '시간'과 연결되거나 시간을 기초로 한 제도는 너무나 많다. 임금의 지급주기 외에도 1주 40시간과 1일 8시간의 근로시간제한 원칙 ▲소정근로시간 ▲연장근로와 연장근로의 제한 ▲특별연장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 ▲간주근로시간제 ▲감시단속적 근로자 등에 대한 근로시간 적용제외 ▲야간 및 휴일근로 ▲휴게시간 ▲연차 유급휴가 ▲최저임금제 ▲통상임금 ▲평균임금 ▲분기별 1회 이상의 노사협의회 개최 주기 ▲단체협약의 최장 유효기간 3년 ▲기간제근로자 사용기간과 파견근로자 파견기간 최장 2년 등등이다. 얼핏 생각나는 것만 나열해도 이정도다.

노동법 중 개별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와 사용자간 근로계약을 '시간'을 단위로 '일'하고, '놀'고, '돈'받는 법률관계로 파악한다. 근로자가 일하는 시간을 단위로 휴게시간을 부여하거나 임금을 계산한다.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인 '임금'을 예를 든다면, 임금지급은 ▲통화불 ▲직접불 ▲전액불 ▲정기불의 4가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일한 대가인 임금은 우리나라에서 통용하는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전액을, 매월 한번 이상 일정한 날짜를 정해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매월 한 번 이상 일정한 날짜를 정해 지급하는 '정기불' 원칙은 임금의 지급주기를 말한다.

유럽의 급여 지급주기는 아직도 '주급' 형태가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월급' 방식이 대부분이다. 무엇이 근로자에게 더 유리할까? 연봉제나 유급 주휴일을 고려해 시급제나 일급제를 논외로 한다면, 사실 1년 365일을 주 단위로는 52.142주, 월 단위로는 12월이니까 월급보다는 주급이 미미하지만(움직이는 위치에 따른 시간의 속도 차이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지만) 더 유리하다. 

시대 변화에 맞는 근로기준법 필요

6.25전쟁 막바지인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획일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현행 근로시간제도를 규정하였다. 어언 70년이 지난 기존 근로시간의 규율 방식으로 지식정보화시대를 지나 AI 시대를 맞은 현재의 개별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근로를 규제하는 것은 무리다. 무리(無理)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도에서 지나치제 벗어남'이라고 설명한다. 진리(眞理)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무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지 못한다. 본격적인 지식산업의 디지털 전환으로 혁기적으로 시대가 변하여 일하는 방식도 다양하고 자율적·개별적으로 분화하고 있다.

여기에 코비드(COVID) 19 이후에는 현실에서도 시간적·공간적 유연성이 대폭 확대돼 기존 근무시간과 업무공간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맞는 근로시간제도가 필요하다. 이미 많은 업무 영역에서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등 과학기술 도구와 수단으로 기존 시간적·공간적 제약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있다. 시·공간의 제한을 벗어나는 업무와 근로형태는 더욱 가속화되고 확대될 것이 분명한데, 이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근로자가 최첨단 전자기기의 도움으로 시간과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일하도록 지원하는 근로시간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예컨대 현행 1개월인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확대하는 등의 유연근로시간제를 재설계하거나, 1주 12시간인 연장근로시간도 월 또는 분기 단위 총량제로 변경하거나 연간 근로시간계좌제도 도입 등을 검토할 수 있다. 근로자가 스스로 근무시간과 근로형태를 결정할 수 있고, 기업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업무영역에서 근로자의 '워라밸(Work Life Balance)'과 기업의 경쟁력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근로시간제가 재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원고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된 사실 하나를 추가한다. 시간의 방향성은 과거가 미래를 야기하지 미래가 과거로 가지 못한다는 것이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시간에는 일정한 방향이 존재하고 열역학적인 시간의 방향은 우주 내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 우주론적인 시간 방향은 시간이 우주 팽창과 함께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양자물리학에서는 이것도 온 우주에 공통되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진행되는 순서일 뿐이라는 이론이 나왔다(아직 실험으로 입증되진 않았다). 세상에 영원불변하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 유일한 진리일지도 모른다. 

●배동희 노무사는 연세대 법대를 졸업후 경북대를 거쳐 고려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법무법인 태평양과 법무법인 세종 등에서 노무사로 십 수년간 중대산업재해사고 대응, 집단적 노사관계 전략 수립 및 실행, HR컨설팅 분야를 경험했다. ㈜효성에서 다년간 인사관리팀 부장으로 재직하며 인사제도 및 노사관리의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쌓았다. 현재 대유노무법인 대표노무사로 재직중이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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