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본만 전해지고 사라진 고려시대 비석 발굴
상태바
탁본만 전해지고 사라진 고려시대 비석 발굴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27 1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세기 영국사 혜국사비 조각 나와…법안종의 왕사(王師)

 

탁본만 전해지고 비석이 사라졌던 영국사 혜거국사비가 발견됐다.

서울 도봉구청과 (재)불교문화재연구소가 서울 도봉서원(道峯書院) 하층 발굴현장에서 그동안 탁본의 일부(88자)만 전해지던 영국사 혜거국사비(慧炬國師碑)의 비편 실물을 발견했다고 문화재청이 27일 밝혔다.

비석의 길이는 62㎝, 폭 52㎝, 두께 20㎝다. 혜거국사비는 지금까지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1668년)』에 88자의 비문만 탁본으로 전해왔지만, 실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 발견된 비편에는 총 281자가 새겨져있는데, 이중 256자의 해독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이제까지 학계에서 혼동해왔던 영국사의 정확한 위치와 건립 시기와, 동명이인이 있어 헷갈리던 혜거국사의 정확한 법명도 알아냈다.

도봉서원은 선조 6년(1573년)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1482~1519년)를 추존하기 위해 옛 영국사(寧國寺)의 터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1608년 중건된 후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헐어내기까지 약 260여 년간 유지되었던 서원이다. 지금은 서울특별시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 서울 도봉서원터에서 발굴된 혜거국사비./문화재청 제공
▲ 대동금석서에 전해져온 영국사 혜거국사비 탁본 /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발견된 혜거국사비 비편을 판독한 결과, 비석에 쓰인(碑銘) ‘견주(옛 양주)도봉산영국사(見州道峯山寧國寺)…’라는 글자는 지금까지 영동지륵산영국사로 잘못 알려졌던 혜거국사비의 출처를 정확하게 알게 했다. 또 고려 시대 하층유구에서 확인되는 통일신라의 기와(중판선문 기와)와 건물지 기단으로 보아 영국사가 통일신라 시대에는 창건되었음을 알게 됐다. 아울러 영국사 혜거국사(慧炬)가 갈양사 혜거국사(惠居, 고려 최초의 국사)와 동일인물로 혼용되어 왔으나 두 스님은 동시대를 함께한 동명이인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혜거국사는 고려 전기 법안종(法眼宗) 풍을 일으킨 10세기 유학승으로 고려 광종( 재위 949~975)이 불교를 개혁하고 선교 양종을 통합하고자 도입했던 법안종을 고려에 처음으로 전파한 승려로 추정된다. 그리고 법안종을 만든 초조(初祖)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의 제자이며 적연국사 영준(寂然國師 英俊, 932~1014)의 스승이다. 또한, 송나라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는 국왕이 유학 중인 스님에게 사신을 보내어 예로서 맞이하였던 왕사(王師)였으며, 위봉루(威鳳樓)에서 설법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영국사의 중건은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이 전하는데 지난 발굴조사에서 효령대군이 영국사가 중창될 당시 대시주한 사실이 기록된 기와가 확인된 바 있다. 세종 때에는 진관사(서울 은평구)의 수륙재를 영국사에서 거행하는 것이 논의되었으며, 세조의 축수재를 봉행할 정도로 사세가 높은 사찰이었다.

 

▲ 서울 도봉서원터 발굴조사 현장 /문화재청 제공

 

한편 2011년부터 3년간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도봉서원이 영국사의 일부 건물과 기단을 재활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중심 건물지에서 고려 시대 금속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동제 금강저(金剛杵,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용구)와 금강령(金剛鈴, 금강저에 붙은 방울)을 비롯하여 국보급 청동 불교용구가 77점을 출토한 바 있다. 발굴 조사는 한동안 중단됐다가 지난 6월부터 재개됐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 현종 9년(1668년) 선조의 아들이며 서화가인 이우(李俁)가 우리나라 금석문의 탁본을 연대순으로 엮은 첩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