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③] 부시, 북한도 ‘악의축’ 규정
상태바
[테러와의 전쟁③] 부시, 북한도 ‘악의축’ 규정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10.07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11 이후 미국은 강한 정부로 전환…이라크, 이란, 북한 겨냥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취임 8개월째를 맞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국내 정치력과 국제사회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 다음날 미국을 겨냥한 테러 공격을 ‘전쟁 행위’로 규정하고, 전세계 테러집단에 대해 선전포고를 선언했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비상대책회의를 갖고 보복조치를 논의하고, 항공모함을 미국 동부 연안과 걸프 해안에 대기시켜 테러국에 대해 즉각적인 공격을 감행할 것임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미국 의회는 만장일치로 반테러 선언을 결의하고, 미국 언론들은 테러를 ‘전쟁’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미국민들의 분노를 대변했다.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와의 선거전에서 법원의 결정에 의해 당선된 부시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됐다.

부시는 러시아와 중국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의 국가 원수들로부터 반테러에 대한 호응을 얻어 냈고,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회원 18개국으로부터 군사 행동에 대한 지지를 받았다. 이로써 검증되지 않았던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이 확인됐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국제 지도력은 오래 가지 않아 예상보다 혹독한 시련에 봉착했다. 그가 외교, 군사적인 경험이 없고, 취임 초기에 교토 기후협약 불참 결정, 미국 정찰기의 중국 하이난도 불시착 사건등 국제 현안을 매끄럽게 대처하지 못했던 점에서 테러 참사 초기의 국제적 지지는 동정심에 의한 것이 강했다고 볼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의 밀어붙이기 식으로 대외관계는 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위기의 국면을 맞게 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때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전면전을 벌여 승리하고, 2차 대전을 종식시킴으로써 미국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당시엔 미국에게 분명한 적이 있었으나, 지금의 적은 그림자에 숨어 있고, 소수의 집단에 의해 대량 살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막강한 화력과 군인 수만으로 단기간에 승리를 보장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11년전 걸프전때 당시 아버지 부시 전대통령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전쟁의 결과로 미국 경제가 불황에 돌입, 재선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의 아들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의 실패가 경제 침체 때문이었다고 믿었다.

미국 경제가 악화되면서 부시 대통령이 경제를 모르고, 그의 행정부가 경제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뉴욕 월가 사람들은 테러 이전부터 미국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고, 테러로 인해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을 경고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테러를 계기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기침체의 책임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는 전쟁 수행, 치안 강화, 경기 진작을 위해 ‘강한 정부’로 이행했다. 미국인들도 보복 전쟁을 강력하게 지지하는데다 추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치안 강화를 요구했다. 게다가 그동안 경기 둔화로 적자를 내온 기업들이 테러 참사 이후 연방정부의 경기부양과 동시에 구제금융을 요구하며, 정부의 직접 개입을 요구했다.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 부시 행정부는 정부 조직을 확대하고,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등 정부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단행한 직후 부시 대통령은 조국안보국을 신설,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로 있던 톰 리지를 워싱턴으로 불러 국장 취임 선서를 받았다. (이 조직은 1년후 조국안보부로 확대개편됐고, 톰 리지는 장관으로 승진했다.) 신설 조직은 연방수사국(FBI)와 중앙정보국(CIA), 항공안전국등을 총괄하는 공룡 조직으로, 테러와 싸우기 위한 통합 전략을 수립하는데,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과 여러 기관에서 요원을 차출했다.

예산 정책에서 부시 행정부는 집권 초기에 연방 예산을 줄여 납세자에게 돌려준다는 원칙을 세웠으나, 테러 참사와 경기 침체를 맞아 400억 달러의 피해복구 및 전쟁비용, 150억 달러의 항공산업 구제금융자금을 지원했다. 게다가 750억 달러의 추가 경기부양 계획과 600억 달러의 감세계획을 추진했다.

2000년에 연방정부 재정은 사회보장비를 제외할 경우 겨우 10억 달러 밖에 흑자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이 처럼 막대한 정부자금을 지출하려면 재정 적자를 내거나 사회보장기금을 털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전쟁 ▲경기침체 ▲비상시국의 경우 재정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과거 공화당의 레이건, 부시(아버지) 행정부는 정부 규제를 과감히 완화했고,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는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축소, 균형 예산을 이룩했다. 이처럼 지난 20년 동안 정당에 상관없이 미국 행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 장기 호황의 틀을 구축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테러 참사와 전쟁, 불황이라는 세가지 악재가 동시에 터져나오는 비상시국을 맞아 부시 행정부는 강한 정부로 선택한 것이다.

 

▲ 9·11 테러직후인 2001년 9월 2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부시 대통령은 이듬해인 2002년 1월 29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9·11 이후 미국의 정책 방향을 명백히 밝히고, 북한을 악의 국가에 포함시켰다. 테러후 처음으로 가진 부시 대통령의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가진 국정연설은 테러와의 전쟁을 북한 등 대량파괴무기 보유국으로 확전하고,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경기부양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는 전국에 생중계된 연설에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들로 미국을 위협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들 정권이 대량 파괴무기 개발을 시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Axis of evil)’을 이루고 있다"고 규정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아프가니스탄 공격으로 와해된 알카에다 또는 탈레반 세력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 대량 파괴무기 보유국으로 북한을 비롯해 이라크와 이란과 함께 3개국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그는 악의 축 국가 가운데 북한을 가장 먼저 언급하면서 “인민을 굶주리게 하면서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나라”라면서 “이들 정권이 대량 파괴무기 개발을 시도, 세계평화를 위협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일뿐”이라고 전제, “위험이 가중되고, 가까워질 때 미국은 사건이 발생하기를 기다리지 만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악의축’에 대한 선제 공격론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로써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다음 공격 목표가 북한, 이라크, 이란 중 하나의 나라가 될 것임을 예고했고, 그 중 첫 순서가 이라크였다. 한 전쟁을 끝내면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그 전쟁이 종식되면 또다른 전쟁 목표를 찾는 것이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의 모습이다. 부시 대통령의 미국은 항시 전시체제를 유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노리고, 그 다음 타깃이 한반도를 겨냥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강한 톤으로 경고한 것은 그동안 남북 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던 행정부내 기류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으로, 앞으로 북-미 관계나 남북한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예고했다. 게다가 ‘햇볕정책’의 이름으로 대북한 포용정책을 추진하던 한국의 김대중 정부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취임 직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밝힘으로써 햇볕정책에 대한 한-미 공조에 틈이 생긴 이후 북한을 ‘악의축’으로 규정한 국정 연설은 그후 한반도 안정에 먹구름을 몰고 왔다.

뉴욕에 소재하는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의 도널드 그레그 회장(전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은 정권이 변해도 대미 정책에 큰 변화가 없는데,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클린턴에서 부시로 넘어가면서 크게 변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9·11 테러직후인 2001년 9월 2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