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미국 패권주의⑤…반미주의 확산
상태바
21세기 미국 패권주의⑤…반미주의 확산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9.30 1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11 이후 미국이 제국주의 성향 강화하면서 미국 반대 목소리도 커져

 

9·11 테러 이후 미국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제국주의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자유주의 좌파에서 보수주의 우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됐다.

좌파적 행동주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절대적인 군사력으로 세계 자본시장 지배를 뒷바침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비해 우파들은 언제, 어디서 미국이 테러 공격을 받을수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마지못해(reluctantly)’ 제국주의가 될수 밖에 없고, 그 모습은 2차 대전 이전의 유럽 제국주의와 달리 ‘인간의 모습을 한 제국주의’라고 주장했다.

 

좌파적 시각의 제국주의론은 미국 듀크 대학의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 교수와 이탈리아 극좌파 ‘붉은 여단’의 이론가이자 파도바 대학 교수인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가 함께 쓴 ‘제국(Empire)’이라는 서적이 대변하고 있다. 9·11 테러 한달 전에 출간된 이 책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단일시장, 즉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제국주의 관점에서 보았으며, 테러 이후 반세계화 운동 세력에게는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자본론(Das Kapital)에 버금가는 지침서로 부상했다. 이 책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후 수단으로 규정한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의 제국주의론을 현재의 세계 경제에 부활시켜 이론화했다.

이들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는 여러 국가가 경쟁하고 갈등했지만, 제국주의 시대가 종식된 현재의 세계는 여러 나라를 하나로 지배하는 거대한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좌파적 시각의 두 교수는 식민주의를 동반한 2차 대전 이전 상태를 ‘제국주의(imperialism)’라고 규정하고, 세계 단일 시장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거대한 주권을 ‘제국(Empire)’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제시했다.

두 교수의 ‘제국’의 개념을 살펴보자.

 

‘제국(Empire)’이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식민지 체제가 붕괴되고,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대한 소비에트 장벽이 와해되면서, 우리는 저항할수 없는, 역전시킬수 없는 자본과 문화 교류의 국제화를 맞고 있다. 글로벌 시장과 글로벌 생산 회로와 함께 글로벌 질서, 새로운 논리와 지배구조, 즉 새로운 형태의 주권이 나타나고 있다. ‘제국’은 글로벌 교환을 효율적으로 규제하는 정치 주제이며, 세계를 지배하는 주권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의 과정에서 국가의 주권을 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단계적으로 생산과 교환의 기본 요소들이 국경 밖으로 이동하고, 국가의 주권은 점차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이동을 규제할 힘과 경제에 대한 권위를 잃는다. 변화의 과도기에는 정치적 통제, 국가 기구, 제재 장치 등이 경제적ㆍ사회적 생산 및 교환에 대한 규제를 지속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제시하는 가정은 주권이 단일 지배 논리에 의해 통일된 일련의 국가적 또는 초국가적 조직으로 구성된 새로운 형태로 변형된다는 점이다. 주권의 새로운 글로벌 형태를 우리는 ‘제국’이라고 부른다.

 

좌파 지식인들은 대영제국을 마지막으로 하는 유럽 제국주의가 영토를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제국주의는 중심부 국가가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며, 영토를 경계로 생산 및 교환의 이동을 제한한다. 이들은 제국주의가 무너지고, 국경을 넘어선 경제활동이 확산되고, 국가 주권이 쇠약해지고 있는 현단계는 ‘제국’ 출현의 과정으로 보았다. 따라서 ‘제국’은 근대적 개념의 주권이 사라진 후에 형성된다.

‘제국’은 영토의 중심을 두지 않으며, 국경의 장벽을 세우지 않는다. 제국주의는 구심적 경향을 갖지만, ‘제국’은 원심력의 힘을 가지며, 기업들이 전세계의 영역을 확장하며, 글로벌 생산체계를 수립한다. 제국주의는 세계를 영국령, 프랑스령, 스페인령으로 분할하지만, ‘제국’은 이들을 하나로 묶는다.

하트와 네그리 교수는 ‘제국’의 네가지 특성을 제시했다. 첫째 국경이 없고, 둘째 제국주의의 과도기 이행과정을 거친 완성 형태다. 셋째 인류 전체를 지배하는 주권을 형성하며, 넷째 엄청난 억압과 파괴력을 행사하지만, 새로운 해방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단계다.

좌파 지식인들이 주장한 글로벌 제국은 과연 미국을 의미하는가. 하트와 네그리는 이 대목에서 애매모호한 견해를 제시했다. 그들은 주권 국가의 형태를 초월한 추상적 의미의 ‘제국’이라는 개념을 사용,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을 타깃으로 하면서, 미국의 세계 경제 지배력을 ‘제국’의 과도적 단계로 설정했다. 반국제화 세력은 미국이 중심이 된 선진국가의 다국적 기구 및 회의, 즉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선진 7개국(G7) 회의, 아시아ㆍ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세계무역기구(WTO) 총회가 타깃으로 하고 있다. 이들 다국적 기구가 ‘제국’의 맹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좌파 지식인들의 제국주의적 타깃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인데 비해 미국 보수파들의 아메리카 제국주의론자들은 초강대국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 보수세력의 대변지로 알려진 월스트리트 저널지의 논설위원 막스 부트(Max Boot)는 9·11 테러 직후 컬럼에서 “우리(미국)는 모든 나라들이 함께 하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제국(attractive empire)”이라고 설파했다.

또 워싱턴 포스트지의 컬럼니스트 세바스치안 맬러비(Sebastian Mallaby)가 포린 어페어스지(2002년 3~4월호)에 쓴 글에서 미국을 ‘인도주의적(humanitarian empire)’라고 규정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제국주의는 반드시 계획된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 식민지도 원래 영국의 종교 싸움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로 시작됐다. 영국 정치계급은 인도를 지배하는데 확신이 서있지 있았으나, 상업적 이해관계가 인도를 식민화하도록 이끌었다. 오늘날 미국은 마지못해 제국주의(reluctant imperialism)가 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제국주의의 순간이 다가왔고, 미국은 자신의 힘에 의해 지도적 역할을 하지 않을수 없다. 문제는 미국이 유럽 제국주의가 종식한후 생겨난 공백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워싱턴이 이 임무를 인식한다면, 그 다음 대응은 명백해진다.

보수주의자들은 과거 유럽 제국주의가 비인도적이라고 매도하며, 미국의 제국주의적 무력 사용은 악의 국가를 처벌하고, 독재자의 폭압에 신음하는 백성을 구해주는 인도적이며, 세계 평화를 기여하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자화자찬한다.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해방했다고 자랑했으며,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는 명분으로 이라크 국민의 자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을 제국주의로 이끌고, 테러의 온상으로 지목하는 나라에 군사개입을 하고 싶어하지만 미국은 로마제국이나, 유럽 제국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영국은 해외 식민지를 개척, 그곳에 해군을 주둔시켰다. 케이프타운, 홍콩, 싱가포르, 포클랜드등의 조그마한 섬이나 곳을 점령한 것은 등대를 만들어 항해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해군의 주둔지 확보가 주요한 목적이었다.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 본토 이외에 주둔하는 미군은 태평양 군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에 영지를 빌려 사용한다. 한국의 용산 미군기지는 임차료는 한푼도 내지 않지만, 땅주인은 분명 한국 땅이다.

둘째 2차대전 이후 식민주의가 저항을 받아 전세계 식민지가 거의 독립한 상태이기 때문에 미국이 주권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는 제한이 있다.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 레이몽 아롱(Raymond Aron)은 일찍이 1973년에 쓴 저서 ‘제국주의 공화국(imperial republic)’에서 미국의 한계를 제시했다. 아롱은 “미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지배하는 제국주의적 파워를 가지고 있다”면서, “동시에 미국의 영향력 안에 있는 나라들이 주권을 갖고 있는 공화국이며, 미국도 역시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9·11 이후 미국은 제국주의 성향을 강화했지만, 반대급부로 얻은 것은 세계적인 반미주의 확산이다. 미국이 군대를 동원, 반테러 전쟁을 확대할수록 미국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기류가 강하게 일어났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수천명의 시민이 죽은 비극을 당했기 때문에 테러 세력을 소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지나치게 무력을 사용하고, 자신의 이해를 무시한다는 생각한다.

9·11 이후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왜 그들은 미국을 싫어하나’라는 것이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퓨 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02년 7~10월에 외국인 3만8,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조사가능한 27개국중 22개 국가에서 최근 2년 사이에 반미 정서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통적인 우방인 한국에서도 미국에 호의적인 응답이 53%로 2년전보다 5% 포인트 낮아졌다.

그러면 미국이 외국에서 미움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연간 국방비는 미국 이외의 전세계 연간 국방비를 합친 것보다 많고, 미국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유가증권의 시가총액이 미국 이외의 세계 유가증권 총량과 비슷하다. 과거에 파리가 문화와 유행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뉴욕이 그 자리를 빼앗았다. 미국은 확실하게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세계 최강대국이고, 세계를 압도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세계적인 반미 주의 확산이 초강대국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 자국의 이해를 달성하기 위해 압도적인 힘을 일방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 국가의 이해를 누르고, 그나라 사람들을 무시한 결과로 반미 기류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반미 운동의 전세계적 확산은 미국의 힘이 과거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보다 강하지만,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지 못한다는 한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군사력 사용을 우선할 경우 상대방 국가와 주변 국가로부터 엄청난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2002년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에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 반미 시위가 확산되었다. 미국은 법체계와 사고방식이 한국과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이 사건 초기부터 한국을 무시하면서 한국인들을 자극했다. 또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의 제한을 요구하며 북한을 압박하는 것도 민족 화해를 원하는 한국 사람들의 소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의 것을 좋아하고 미국과 우호관계를 원하지만, 오랜 역사과정에서 강한 민족적 자존심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미국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도 어쩔수 없이 한국민들에게 세차례나 사과했다. 반미 무풍지대로 알려졌던 한국에서마저 미국에 대한 비판이 국민적 차원에서 제기된 것은 슈퍼파워 미국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