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소생산자 참여 체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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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소생산자 참여 체제로
  • 신동한 에너지전환연구소장
  • 승인 2017.09.27 16: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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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산업 수익의 독과점 약화, 가계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

 

/신동한 에너지전환연구소장

 

< 에너지 체제의 전환 >

 

인류는 150만년 전 불을 사용하면서 엄청난 변화를 시작했다. 한 인간의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으나 자연의 에너지를 활용하게 된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게 점차 '넘사벽'의 존재가 되었고, 서기 1년 2억명의 인구는 오늘날 75억명이 넘는 대가족으로 불어났다.

 

▲ 신동한씨

오랫동안 인류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연료로 사용했다. 세월이 흘러 있는 집 사람이나 대장간에서는 연기는 적고 열량은 많은 숯을 쓰기도 했지만 이 역시 나무를 이용한 것이다. 목재와 숯을 사용하는 바이오연료 시대는 150만년을 이어왔다. 지금도 약 27억 명은 가정용 연료로 나무를 때고 있다.

 

석탄이 에너지원으로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900년 전의 일이다. 석유는 1859년에 비로소 상용화되었다. 천연가스는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수 십억 년 지구가 기르고 분해하고 압축하고 걸러서 만들어낸 화석연료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수송하기도 편해 인류의 문명을 극적으로 발전시켰다.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날 무렵 약 5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석유가 사용되기 시작한 19세기 말 약 12억 명으로 늘어난 뒤 20세기에만 5배 이상 늘었다. 오늘날 인류의 물질 문명은 온전히 화석연료에 힘입은 바 크다.

2차 세계대전의 막을 내린 원자폭탄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960년대 상용화한 핵에너지는 전 세계 에너지 공급의 약 5%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제어하기 어려운 안전 문제로 이미 세 차례의 원자로 용융 사고를 일으키고, 핵폐기물의 처리라는 난제를 안은 채 점차 경제성마저 다른 에너지원에 뒤떨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은 화석연료가 한정된 매장 자원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각국은 새로운 대체에너지의 개발에 나섰고 늘 우리 곁에서 힘을 보태주었던 풍력과 지열, 태양 에너지가 주목을 받았다. 그 동안 화석연료의 도움으로 놀랍게 발전한 과학기술은 이런 재생가능에너지원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주었다.

 

1992년 세계인은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협약을 맺고, 이후 교토의정서에 이어 파리협정이라는 행동계획을 수립하였다. 2015년 G7 정상들은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온실가스의 80%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21세기 안에 종식시키자고 촉구한 바 있다. 한편 원자력 발전 비중이 가장 높은(75%) 프랑스는 2026년까지 그 비중을 50%로 낮추는 대신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중을 두 배로 높이기로 했다.

이렇듯 에너지 체제는 당시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변화해왔다. 21세기 현재의 에너지 체제는 화석연료와 핵에너지 중심에서 재생가능에너지 중심 체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 /출처: 신동한저 『왜 에너지가 문제일까』 284쪽

 

< 에너지 생태계의 변화 >

 

바이오 연료 시대는 자급자족의 시대였다. 짚이나 옥수수대 등 농업부산물, 그리고 주변 야산에서 나무나 솔갈비를 해다가 밥을 짓고 군불을 땠다. 부잣집에 나무를 대는 나무꾼이야 개별 노동자에 가깝고, 굳이 연료 산업이라고 한다면 대장간 등에서 숯의 수요가 늘어나 대량으로 목탄을 생산한 숯가마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석탄을 필두로 한 화석연료의 채굴과 수송, 공급에는 막대한 자금과 장비, 인력이 필요하다. 해당 자원이 어느 곳에 어느 정도 묻혀 있는지, 경제성은 있는지 탐사해야 하고, 해당 지역에 채굴 설비와 수송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게다가 화석연료는 특정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엘리트 에너지라서 채굴한 자원을 대부분의 소비국으로 옮겨야 하므로, 대규모 파이프 라인을 설치하든지 갑판에 3~4개의 축구장을 그릴 수 있는 20층 아파트 덩치의 유조선과 LNG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소비지에서는 이를 정제하거나 상태를 변화시켜 공급하는 유통망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화석연료 산업은 지금도 가장 규모가 큰 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 세계 10위 기업 중 4개 기업이 석유가스회사이다. 포츈의 세계 500대 기업에 따르면 중국 국영 석유회사 시노펙 그룹과 중국석유공사(CNPC)가 나란히 3·4위를 하고, 로열더치쉘이 7위, 엑손모빌이 10위를 차지했다. 12위를 한 영국석유(BP)까지 이 5개 석유회사의 연 매출은 각각 200조원을 넘는데 시노펙 그룹의 경우 지난 한 해에 약 346조원어치의 석유와 가스를 팔았다.

19세기말부터 사용한 전력은 중앙집중형 대규모 산업의 대표가 되었다. 전기는 생산하는 순간 사용하여야 한다. 쓰지 않으면 그냥 사라진다. 양수발전을 통해 물의 위치에너지로 저장하기도 하고, 요즘에는 축전지의 성능이 높아져 필요에 따라 저장시설을 갖추기도 하지만 손실을 생각하면 만든 만큼 쓰는 게 효율적이다. 따라서 발전소에서 소비지까지 그리고 각 가정과 건물, 산업 시설까지 하나의 전력망으로 연결하여야 한다.

 

수력발전소야 본래 댐을 건설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니 도시와 떨어져 세워졌고, 초기엔 소비지 근처에 지었던 화력발전소도 규모의 경제를 위해 대형화하면서 오염물질을 포함한 배기 때문에, 그리고 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도시에서 멀리 밀려났다. 원전은 더더욱 안전 문제로 주민들이 적고 물이 풍부한 오지 해안을 찾아 나섰다. 내륙의 강가에 세우려면 거대한 냉각탑이 필요했다.

주민이 적은 지역에 세워지는 대형 발전소와 그 전기를 소비지로 끌어오는 송전망, 소비지에서 각 수용가로 전기를 보내는 촘촘한 배전망을 갖춘 전력 산업은 단일 종목으로는 가장 큰 산업이다. 중국의 전력회사 중국전망공사는 월마트에 이어 세계 2위의 매출액을 자랑하는 기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력이 자산과 매출에서 모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

 

이렇게 중앙집중화한 관리체계의 지배를 받는 대규모 에너지 수급 체계에 기반을 둔 현대 산업사회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구조적 특성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에너지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대형 기업에 의해 중앙집중화한 전력 수급체계에 다수의 소생산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 초 미국 캘리포니아와 유럽 중북부 국가들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불과 수 십kW에서 1MW 용량의 풍력발전기가 한곳도 아니고 여러 곳에 흩어져 설치되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태양광 발전은 더욱 작아 지붕형의 경우 불과 수 kW짜리들이다.

 

이미 석탄화력발전소도 수 백 MW급으로 대형화하였고 원전은 1400MW급이 건설되고 있는데 이건 작아도 너무 작다. 최근에 지어진 영흥도 석탄화력발전기 용량이 800MW급이니 5MW의 대형 풍력발전기로 하면 160기를 설치해야 하고, 태양광 발전기를 한 집에 5kW(패널 20장)짜리를 단다면 16만 집의 지붕에 올려야 한다. 이러니 한곳에서 대규모로 생산하여 중앙집중화한 망을 통해 공급을 하던 전력기업들이 이를 달가워할 리가 없다.

소생산자들의 시장 진입에 저항하는 것은 우리나라 한전뿐이 아니다. 독일의 송·배전은 E.ON과 RWE, EnBW, Vattenfall 등 4개 대형 전력 회사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도 재생가능에너지법이 시행된 2000 이전부터 원전의 단계적 축소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제동을 걸어왔다. 광고와 언론을 통해 꾸준히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지원이 전기요금을 올리고 있으며 전력 공급에 불안정을 초래한다고 선전하였다. 2011년 후쿠시만 원전 사고 직후 메르켈 정부가 신형 원전 수명 연장 약속을 뒤엎자 RWE의 대표 그로스만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 소비자들은 그 정도의 추가 비용은 기꺼이 수용하였고, 전력 설비의 기술 수준은 전력망의 안정성을 지켜냈다. 수요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 단속적인 발전은 이웃 나라들과 전력 수출입, 또는 저장장치의 보급으로 극복해 나아갔다. 1990년 독일의 전력 공급량에서 불과 4.1%였던 재생가능에너지는 2000년 7.2%를 거쳐 2005년 10.7%, 2010년 17.7%로 급격히 늘어나 2014년에는 27.5%로 전체의 4분의 1을 넘어섰다.

이 중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의 3분의 2 이상이 시민참여형 소규모 발전이다. 소수의 대형 전력회사에 의해 독과점되었던 전력 산업에 대규모 소생산자들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률이 10%를 넘으면서 전력회사들은 이상을 감지하고 대응하려 했지만 기존 방식이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라는 믿음과 커진 덩치는 빠른 대응에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률이 20%를 지나던 2011년 만년 흑자기업 E.ON과 EnBW가 적자를 보았다. RWE와 Vattenfall은 2013년에 손실을 보았다. 매출 감소의 원인은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량이 늘어 화석연료와 원전의 매출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력거래시장에서 높은 가격의 물량이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형발전사들로서는 판매량의 감소와 고수익 물량의 감소라는 연타를 맞은 셈이다.

이들은 에너지 생태계가 변했음을 실감하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E.ON은 2014년 11월 원전과 화석에너지 사업부문을 별도 회사로 분리하고, 향후 송배전 및 서비스와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RWE는 2000년대 10여년간 대형 석탄화력발전소와 가스발전소에 120억 유로를 투자하고 재생가능에너지 분야 투자가 늦었음을 반성하며 자회사 매각 등에 나섰다

 

현재 독일의 전력 4사는 변화된 에너지 생태계에서 생존하기 위한 사업 모델에 힘을 쏟고 있다. 소규모 분산형 전력생산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스마트 그리드와 에너지 저장 설비, 건물과 공장의 에너지 관리 시스템의 개발과 운용 등 서비스에 집중하고, 발전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한편 해외 사업도 재생가능에너지 부문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독일의 전력생산량은 소폭이지만 꾸준히 증가하였는데, 그러면 대형 전력 기업의 손실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다. 전력 생산에 따른 수익을 독점하던 대형 전력 기업에서 상당 부분의 수익이 소생산자들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주택의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를 올린 가구수가 1백만호를 넘었으며, 2006년 불과 8개였던 독일의 에너지협동조합이 2016년에 831개로 늘어났다. 이제 독일에서는 대기업에 의해 독과점되었던 에너지 수급 체계의 수익이 가계와 지역경제로 순환하는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새 정부 에너지 정책의 실체가 이번 정기국회와 제8차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정책 담당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에너지 생태계가 바뀌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다수의 소생산자가 에너지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는 가계 소득의 증가와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하여 정책 수립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로 소생산자들의 참여를 어떻게 촉진하고 지원할 것인가이다.

 

신동한
서울대학교 기상학과와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도시행정학과에서 공부했다. 기후변화에 관해 연구하면서 기저에 깔린 에너지 문제에 천착하게 되었고, 그런 관심의 일환으로 에너지전환연구소라는 개인 연구소를 열었다.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에도 관심이 있어 부천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참여해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왜 에너지가 문제일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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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7-09-27 18:23:30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