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물 건너 갔다…국제신용도에 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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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물 건너 갔다…국제신용도에 찬물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9.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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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경직성→기업 활력 상실→경기 부진 악순환…또다른 시행착오 불러올 것

 

고용노동부는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산하기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저성과자 해고를 허용하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 양대 지침을 공식 폐기했다.

두 지침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였다. 전 정부가 하던 모든 것을 적폐라는 이유를 폐기하는 세월이다. 이 마당에 촛불시위 주도세력인 노동단체들이 요구하는 노동개혁 두 지침의 폐기는 이미 예견되었던 사안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월 전격적으로 발표한 노동개혁 양대지침은 개혁이라는 용어를 붙이기에 민망할 정도로 낮은 수준의 조치였다.

첫째 지침인 일반해고에 해당하는 저성과자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저성과자를 추려내고 이들에게 재교육·배치전환 등의 마지막 기회를 준 뒤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거나 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근로자'라고 규정했다. 노동단체는 이를 ‘쉬운 해고’라고 주장하며 전면 폐기를 주장했다.

둘째,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은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노조나 노동자 과반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도록 했다. 당시 만들어진 취업규칙 지침은 판례에 근거해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 변경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변경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노동단체는 이 지침으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을 마음대로 도입할수 있다고 반대했다.

이 두 지침만으로 사용주가 저성과자를 해고하거나 취업지침을 뜯어고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유명무실한 노동지침마저 폐기됐다. 굳이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기업하는 사람에게는 좌절감이 커지게 된 것은 분명하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악법을 폐기했으니, 적폐청산을 앞장서서 실천했다고 할수 있다. 진영의 논리로 보면 성공작이다.

하지만 경제는 진영의 논리로 움직이지 않는다. 노동조건을 경직되게 만들어놓으면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진다. 기업 운영이 아려워지고 호·불황을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은 지난 12일 광주버스종합터미널에 설치된 ‘광주현장노동청’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 사진

 

외국의 예를 보면 쉽게 알수 있다.

가깝게 프랑스를 보자. 프랑수와 올랑드의 사회당 정부가 노동자 친화적인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실업률을 끌어내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말기에 엠마뉘엘 마크롱을 경제장관으로 불러들어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좌파적 시장개혁론자인 그는 압도적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당선된후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럽 좌파들은 기업에 막대한 세금과 복지부담을 안기고,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근로조건을 만들어 표로 연결시키려 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악화하고, 근로조건이 보다 유리한 나라로 공장을 이전시키려 한다. 그 결과 일자리는 줄어들고 실업률은 올라간다. 프랑스 좌파 정권이 뉘늦게 이를 깨닫고 노동세력의 극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노동개혁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올랑드의 실패는 마크롱 정권을 탄생시켰고, 마크롱은 프랑스를 2류국가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 혁명 이래 노동과 자본은 대립과 투쟁의 역사를 반복해왔다. 이른바 계급투쟁 이론이고, 그 논리가 상당부분 역사를 지배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말 거대한 국제금융자본이 세계를 단일시장화하면서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재정립시키고, 노동시장의 변화를 요구했다.

 

노동시장의 탄력성이 보장된 나라는 실물경제 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국제시장에서 주도권을 쥔데 비해 그렇지 못한 나라는 낙후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80년대 일본과 독일에 밀려났던 미국경제가 90년대 들어 장기호황을 구가하고, 세계 경제를 리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들의 대대적인 다운사이징(인력 감축)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초 IBM은 전체 직원의 35%인 2만2,000명, GM은 9만9,000명(29%), 보잉은 6만명(35%), AT&T는 12만명(30%)을 잘라냈다. 구석구석에서 군살을 뺀 미국 기업들은 일본과 본격적인 경쟁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일을 우리나라에서 할수 있을까.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 기업들에선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있었기 때문에 근로자들은 언제라도 해고되면 일자리를 찾아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정리해고에 대한 불감증이 생겼다. 미국에선 실업자에 대한 복지혜택이 적으므로, 실직자들이 임시직이라도 빨리 취직하려고 한다. 하지만 직장이 없어도 여유있는 삶을 보장하는 유럽에선 굳이 일자리를 찾으려고 애 쓸 필요가 없다. 수준 높은 복지제도를 만들어 미국인들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던 유럽인들도 서서히 미국의 탄력적인 노동구조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노동유연성이니 노동개혁이니 말을 하면 적폐세력으로 몰리게 될 형편이다. 노동자의 힘이 강해진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시장은 반드시 보복한다. 그것은 자본가의 사보타지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시장의 경쟁력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시장 경직화가 가속화될수록 국제신용도가 낮아진다. 무디스와 S&P, 피치등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면서 늘 그 이유로 노동개혁을 들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신용평가사들이 경계해온 대목이 노동개혁 후퇴다.

 

우리경제는 당장에 반도체 효과라는 일시적인 경기 호조의 여건을 맞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호조가 만년 지속되리란 보장이 없다. 극단적인 예로 1997년 IMF 외환위기 직전에 반도체 호황이 있었고, 그 착시 현상이 위기를 불러 일으켰다는 지적도 있다.

반도체, 자동차 이외에 우리 산업 대부분이 구조조정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구조조정은 한마디로 인력을 감축해야 하는 힘든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새 살을 돋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해고를 어렵게 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과 해태하는 직원을 동등하게 대우하라고 하면 기업운영에 큰 애로가 생긴다. 기업하기 싫다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다.

노동개혁 양대지침 철폐는 정치적 판단의 결과다. 하지만 이것을 승리라고 결론지을수 없다. 오히려 실패를 각오하는 시행착오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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