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국산 제외' 전기차에 세액공제…K-배터리 기회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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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국산 제외' 전기차에 세액공제…K-배터리 기회 오나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8.09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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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쯤 美하원 통과…바이든 서명 전망
'바이 아메리칸' 천명…美 생산량 늘려야
현대차그룹 내년부터 보조금 못 받아
법안 피해 줄이기 위한 정부 협상력 높여야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9일 미 상원을 통과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미국이 자국에서 판매하는 전기차에 중국산 배터리 사용을 사실상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가결했다. 

중국에 장막 친 미국

9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상원을 통과했다. 법안을 보면 미국 중심의 전기차 공급망 구축 목적에 따라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98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조건이 달렸다. 2024년부터 북미 현지에서 생산된 전기차여야 하고, 중국에서 생산된 배터리가 탑재돼선 안된다. 또한 배터리에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제련한 원자재를 2024년부터 40% 이상, 2027년부터 80% 이상 써야 한다. 아울러 세액 공제를 받기 위해선 양·음극재, 분리막 등 배터리 주요 부품의 50%가 북미에서 제조돼야 한다. 이 비율은 2027년 80%, 2028년 100%로 높아진다.

2028년 이후 미국에서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사실상 미국에서 채굴된 광물과 부품으로 제조된 배터리를 장착해야 하는 셈이다. 

업계에선 미국의 이번 조치가 중국을 정조준한 것으로 해석한다. 중국은 배터리 원자재 공급이 원활한 내수 시장을 보유하고 있고, 저렴한 인건비와 생산비로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생산국으로 자리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배터리 원자재인 리튬의 경우 전 세계 화학 공정의 60%가 중국에서 처리된다. 수산화리튬의 경우 80%에 이르며 코발트는 글로벌 가공의 70%를 중국이 담당한다. 

이선 엘킨드 UC버클리 법·에너지·환경 센터의 기후프로그램 책임자는 "현재 배터리 생산시설이 대부분 미국 밖에서 생산되는 데 IRA로 인해 업계가 생산 시설을 빠르게 미국으로 옮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제조 중인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 모습. 사진=연합뉴스

우리 기업엔 위기이자 기회

상원을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오는 12일쯤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미국 하원마저 통과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시행된다. '바이 아메리칸'을 표방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시행되면 국내 기업의 희비도 엇갈릴 전망이다.

당장 현대차와 기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대차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공장을 짓고 있어 당장 2024년부터 혜택을 보긴 어렵다. 앨라배마 공장 일부 라인에서 오는 11월부터 GV70 전동화 모델을 생산할 예정이지만 대부분의 아이오닉5와 EV6 등 전기차 물량은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확정되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생산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국내 전기차 생산량을 2030년까지 143만대로 늘리고 이 중 60%를 수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안 발효로 북미 생산량을 늘리고 국내 수출물량을 줄여야 할 수도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 생산을 앞당기지 않으면 시장을 놓칠 수 있어 결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는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은 내수 시장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는 CATL과 BYD 등 중국 배터리 제조사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기업은 중국이라는 경쟁자를 배제한 채 북미시장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북미 시장은 세계에서도 가장 큰 전기차 시장으로 미국 정부가 중국 배터리 기업의 진출을 사실상 차단하면서 국내 기업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다. 현대차그룹 등 자동차 업계와 배터리 3사 등 배터리 업계는 당장 배터리 원자재 수급 다변화를 이뤄야 한다. 리튬·니켈 등 배터리 원자재의 70%가량이 중국에서 제련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은 칠레와 아르헨티나, 캐나다, 인도네시아 등에서 배터리 원자재 수급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 원자재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이번 법안이 원자재 다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당장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단기간에 공급망을 재편하기는 어렵지만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상원 본회의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통과됐다고 말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br>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워싱턴에서 열린 상원 본회의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통과됐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플레이션 감축법, 한미FTA 위반?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안 발표에 한국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은 '미국이 수입하는 품목과 미국에서 제조한 국산품을 차별 대우해서는 안된다'는 한·미FTA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 북미에서만 생산한 전기차에만 세액공제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건 한국에서 제조해 수출하는 완성차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다. 

지난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수출 통제를 위해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추진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와 협의를 통해 휴대전화와 자동차, 세탁기 등 소비재의 경우 예외를 두는데 합의했다. 당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그룹 등이 최악의 상황은 피했던 만큼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에 발맞춰 한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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