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오직 우리를 위한 칩4 동맹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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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오직 우리를 위한 칩4 동맹의 조건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2.08.0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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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아시아 순방 후폭풍이 거세다. 말이 아시아 순방이지 대만과 우리나라, 일본만 거쳐갔기에 사실상 미국의 칩(fab)4 동맹 가입 압박 투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펠로시 의장의 방문과 자국의 정책은 관련이 없음을 강조했지만 미국 내 서열 3위 의장 방문이 즉흥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 결과,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중국의 반발에 기름을 끼얹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되는 건 논외로 하더라도 대만은 당장 중국의 혹독한 압박과 위협에 정면으로 직면했다. 중국은 대만을 봉쇄하는 군사 훈련을 전방위에 걸쳐 시도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 대만도 대규모 포사격 훈련을 예고한 상황이다. 이른바 칩4 동맹 투어 후폭풍이다. 

충돌한 미-중의 기술주권 확보 전략

미국이 최근 중국을 적극 견제하는 이유는 미국의 기술주권 확보에 중국이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미국은 ▲첨단기술 투자 ▲반도체 생산 및 차세대 5G 구축을 위한 공급망 안정화 ▲대중국 견제라는 세 가지 방향의 기술주권 확보 전략을 수립했다. 자국의 기술주권을 위해 중국 견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아시아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 TSMC를 보유한 대만,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 삼성전자를 보유한 한국, 반도체 장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과 칩4 동맹을 통해 단단한 네트워크를 구축, 결속하겠다는 것이다. 펠로시 의장이 TSMC의 마크 리우 회장을 반갑게 만난 건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중국과 첨예한 대립이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술패권을 위해 중국의 확장세를 이렇듯 주도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국가의 중장기 전략을 위해 지정한 핵심기술 및 산업이 대부분 중복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14차 5개년 계획에 의하면 인공지능, 양자 정보기술, 첨단소재 등은 미국과 중국이 지향하는 핵심기술 영역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2020년 발간한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은 자국이 극복해야 할 핵심기술 중 하나로 반도체 칩을 꼽고 있다.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중국은 대외 외존도가 높고 미국의 제재가 집중되는 기술 영역에서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 강화와 기술 자립 지원을 자국의 기술주권 핵심전략으로 재정의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을 지켜본 EU는 각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대처가 조금씩 달랐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영국은 중국 제재를 주도하는 반면 중국을 핵심 수출파트너로 고려해온 독일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함께 한다는 것이 EU의 방향이기에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5월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부터)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부터)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미국과 중국 

EU가 이렇게 복잡미묘한 상황을 보일 정도니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훨씬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미 동맹의 역사를 감안할 때 미국의 칩4 동맹 요청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중국의 강력한 경고와 제재를 감안할 때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어느 한쪽과 친구로 지내는 순간 어느 한쪽은 적으로 돌변한다. 

미국은 2020년 하원전략기술연구 분과위원회에서 수년 내 중국이 인공지능, 바이오, 퀀텀 컴퓨팅 등의 첨단기술 영역에서 미국을 빠르게 추격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격에 나선 미국은 반도체, 드론, 통신장비, 클라우드 컴퓨팅, 해양기술에 걸쳐 4년 전부터 중국의 주요기업들을 제재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두 국가의 전면전은 이미 기술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칩4 동맹을 거부하긴 어렵다고 봐야 한다. 다만, 미국과의 동맹을 감안해서 적극적으로 칩4 동맹에 나서기보다 우리에게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협력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현명한 협상을 펼쳐야 한다. 외교안보기술 영역에서 공동을 위한 이익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나라도 자국의 기술주권을 위한 체계적인 협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현명한 칩4 동맹의 조건 

대만과 일본은 이미 칩4 동맹에 사실상 합류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장비 등에서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중국과의 마찰, 갈등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고 대만은 자국 경제의 붕괴를 중국이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미국의 칩4 동맹 참여에 적극적이다. 첨단기술 영역에 대한 중국의 전방위 보복은 콘텐츠 제재처럼 쉽진 않다. 

미국의 최우선 관심은 파운드리에 있다. 그러므로 중국에 설립한 한국의 메모리 공장과 메모리 공급은 미국의 관심사가 아니다. 즉, 두 국가를 모두 현명하게 설득할 수 있는 조건은 우리가 갖고 있다. 미국과의 칩4 동맹에 단계적으로 나서되 우리가 부족한 시스템반도체, 펩리스 영역의 협력 또는 핵잠수함 기술 이전 등의 안보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중국에게 저자세로 나설 필요도 없다. 콘텐츠, 화장품, 유통 분야의 제재와 달리 한국의 반도체산업에 대해 제재를 가할 경우 중국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우리가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지 않으면 중국의 IT기기 생산은 사실상 멈출 수밖에 없다. 한국이 D램과 낸드플래시 수출을 금지할 경우 중국은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겪는다. 

언제든 미국과 중국은 자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우리에게 손을 내밀며 동반자와 위협자 양면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미국은 한미 동맹을 강조하고 있고 중국은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며 각각 우리에게 믿는 도끼는 자신들이라며 손짓하고 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 있다. 외교안보기술 영역에서 영원한 친구는 어디에도 없다. 

믿는 도끼는 오직 우리의 고유한 기술혁신 역량과 현명한 협상력일 뿐이다.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으며 올 2월 '2022년 한국경영학회 학술상' 시상식에서 'K-Management 혁신논문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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