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세계관이 구축된 프로그램의 진행자 교체,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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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세계관이 구축된 프로그램의 진행자 교체, 괜찮을까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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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의 그림자가 짙은 ‘전국노래자랑’. 사진=연합뉴스

[강대호 칼럼니스트] 인기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거취가 화제다. '전국노래자랑'은 고(故) 송해의 후임을 임시로 정했다는 소식으로, '동네 한 바퀴'는 김영철이 하차하고 이만기가 후임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으로,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진행자 유희열의 하차 소식과 함께 전해진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는 소식으로. 

이들 프로그램은 모두 진행자 자체가 그 프로그램을 상징했다. 관중들 앞에서 노래 실력을 자랑하든, 동네 숨겨진 곳곳을 찾아다니든, 혹은 어쿠스틱 반주를 곁들여 라이브로 노래하든 진행자들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프로그램들이었다. 그래서 후임 진행자 선정이, 혹은 기존 진행자 거취 문제가 화제가 되었다.

‘전국노래자랑’, 후임은 차기 국민 MC 예약? 

KBS의 '전국노래자랑'은 1980년 11월에 시작해 햇수로 약 42년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한동안 과거 방송 편집본을 내보내다 지난 7월 10일부터 새로운 녹화분을 방영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노래자랑' 하면 떠오르는 진행자 ‘고(故) 송해’는 이제 볼 수 없다. 

송해는 1988년부터 진행을 맡았다. 다른 아나운서로 잠시 교체된 적도 있었으나 쭉, 세상을 떠나던 순간까지 송해는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로 살았다.

그의 건강이 나빠진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송해의 후임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왔다. 자천 타천으로 많은 이가 '전국노래자랑' 후임 진행자로 오르내렸다. 결국, KBS의 선택은 작곡가 ‘이호섭’과 아나운서 ‘정수임’이었다. 다만 방송사는 ‘임시’라는 단서를 달았다. 반응을 지켜보며 신중하게 후임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전국노래자랑'은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펼치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만은 아니었다. ‘송해’라는 인물이 연출한 전 국민 소통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MC라면 누구나 큐시트를 보고 진행할 수는 있겠지만 송해와 같은 전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지켜볼 문제다. 

혹자는 '전국노래자랑' 진행자가 되면 국민 MC는 맡아놓은 당상이라고들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그만큼 '전국노래자랑'은 걸출한 전임자 송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프로그램이다. 

 

김영철의 '동네한바퀴'. 사진제공=KBS홈페이지

안티 드문 ‘동네 한 바퀴’, 계속 순항할까

KBS의 '동네 한 바퀴'는 느린 프로그램이다. 말 그대로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걸어 다니며 사람을 만난다. 2018년 7월에 방영을 시작해 지난 7월 9일에 시즌 1을 종료했는데 진행자 김영철도 이번에 하차했다.

지난 방송들을 보면 김영철의 매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방문한 곳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드러내게 만든다. 여느 여행 프로그램처럼 유명한 곳을 찾아가기보다는 이제는 잊히거나 사라진 곳의 흔적을 찾아가곤 했다. 방송에서 김영철이 방문한 곳들은 활기를 띠곤 했다고.

김영철이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은 거의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이름을 곧장 떠올리지 못해도 ‘궁예’라든가 ‘김두한’처럼 그가 맡았던 배역을 떠올렸다. 이조차 떠올리지 못한 노인들도 그와 몇 마디 말을 나누면 아, 하며 알아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바로 김영철이었기 때문이다. 

'동네 한 바퀴'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안티가 정말 드물다”면서 팬들이 '동네 사랑방'처럼 여기는 프로그램이라고 전했다. 그 중심에 김영철이 있었는데 시즌 2에서는 왕년의 씨름선수 이만기가 그의 자리를 잇는다고 한다. 배우 나문희도 나레이터로 함께 선정되었다고.

한편, 이만기는 '동네 한 바퀴' 관련 인터뷰에서 “정치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대중이 그의 과거 정치 행보를 들며 '동네 한 바퀴' 진행자가 된 것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방송사 시청자 게시판 반응도 이만기를 진행자로 선정한 것에 비판 일색인데 '동네 한 바퀴가 시즌 2에서도 계속 안티가 드물지 궁금하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진행자 하차와 함께 중단

KBS2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대중은 물론 뮤지션에게도 충성도 높은 음악방송이었다. 2009년에 시작했으니 13년을 넘게 진행된 장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는 프로그램 이름에도 내세운 진행자 유희열이 있다. 

그런 유희열이 표절 논란으로 하차를 선택하자 방송사는 프로그램 중단을 결정했다. 프로그램의 얼굴이기도 한 진행자였으니 후임을 선정한들 의미 없을 것으로, 혹은, 구설에 오른 전임자가 떠오를 위험을 감수하고 방송을 이어갈 명분을 찾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등장 후 몇 달 되지 않고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프로그램이 많은 방송가 현실에서 10년도 넘게 지속해온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심야 음악방송의 오랜 전통을 잇는 프로그램이었다. 

지난 30년 KBS에는 심야 음악방송이 있었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1992년 4월 ~ 1994년 10월)', '이문세 쇼(1995년 9월 ~ 1996년 10월)', '이소라의 프로포즈(1996년 10월 ~ 2002년 3월)', '윤도현의 러브레터(2002년 4월 ~ 2008년 11월)', '이하나의 페퍼민트(2008년 11월 ~ 2009년 4월)', 그리고 2009년 4월부터 방영된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들 프로그램은 모두 밤늦게 방영되었지만 충성도 높은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뮤지션들도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심야 음악방송에 출연한 것을 좋은 기회와 경력으로 여겼다. 그런 방송이 진행자의 거취 문제로 중단될 예정이다. 그만큼 진행자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프로그램이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사진제공=KBS홈페이지
'유희열의 스케치북'. 사진제공=KBS홈페이지

세계관이 구축된 프로그램들의 진행자를 교체한다는 것

위에서 언급한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충성도 높은 팬덤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팬 숫자가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닌 프로그램에 깊이 몰입하는 팬들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깊은 몰입이 쌓이면, 혹은 비슷한 경험을 가진 팬덤이 쌓이면 그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하게 된다. 

이러한 세계관은 대개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전국노래자랑'은 송해를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 '동네 한 바퀴'는 김영철을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유희열을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 같은 관점에서 보면 각 프로그램의 팬덤을 이룬 대중은 그 세계관 속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시민이기도 한 것.

그러니 방송사로서는 충성도 높은 프로그램의 후임 진행자 선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중은 예전 진행자가 만든 세계에 익숙해 있을 테니까. 그래서 ‘임시’라는 단서를 단 '전국노래자랑'과 아예 방송 중단을 선택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어쩌면 현명한 타협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후임자를 덜컥 선정한 '동네 한 바퀴'는 팬덤의 흐름을 지켜봐야 할 듯싶다. 아무리 나문희라는 안전장치를 달았다 하더라도. 켜켜이 쌓아온 세계관이 흔들리는 것을 쉬이 받아들이는 대중은 드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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