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빅스텝 "2010년대 초반 유럽 재정위기 악몽" 되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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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 빅스텝 "2010년대 초반 유럽 재정위기 악몽" 되살아나
  • 이상석 기자
  • 승인 2022.07.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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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가 2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것을 계기로 이탈리아 등 국가 부채 부담이 큰 국가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ECB가 2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것을 계기로 이탈리아 등 국가 부채 부담이 큰 국가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오피니언뉴스=이상석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행보가 이탈리아 정국 혼란과 맞물리면서 2010년대 초반 유럽 재정위기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ECB가 2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것을 계기로 이탈리아 등 국가 부채 부담이 큰 국가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이날 ECB의 결정은 시장의 통상적인 0.25%포인트 인상 예상보다 더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었다.

또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가 1년 전 과거 경험에서 배웠다고 밝힌 '교훈'에 위배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앞서 작년 7월 라가르드 총재는 과거 위기의 오류로부터 배운 바가 있다며 경기부양책을 너무 일찍 철회함으로써 경제 회복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가 말한 오류는 후에 시기상조로 평가된 2011년 ECB의 금리 인상 사이클을 가리킨다. ECB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그해 4월과 7월 기준금리를 연이어 올렸으나 경기가 부진해지자 그해 11월부터 다시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2년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을 중심으로 재정위기가 다시 악화했다.

물론 ECB는 현재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인플레이션 대응에 더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로 역대 최고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겪는 데다가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 유럽으로서는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이 달가울 수 없다.

블룸버그의 최근 설문조사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가 12개월 이내 경기후퇴에 빠질 확률이 45%로 집계돼 전달 30%에서 크게 올랐다.

이탈리아의 내각 붕괴에 따른 정국 혼란도 2012년 위기의 재연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다.

ECB가 통화정책회의를 열기 몇 시간 전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사임했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올가을 조기 총선에 들어가며 정국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공교롭게 드라기 총리는 2012년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ECB의 총재였다. 그는 당시 유로화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유로화 붕괴를 막아내 '슈퍼 마리오'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가을 총선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9∼10월 예정된 내년도 예산안 수립 관련 절차도 차질이 우려된다.

이탈리아의 부채 위기는 라가르드 총재가 지난달에 7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고 예고했을 때부터 이미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150%로 유로존에서 두 번째로 높기 때문이다.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이탈리아의 부채 부담이 커진다.

지난달 이탈리아 국채 10년물 금리가 4%선을 돌파해 이탈리아·독일 국채 간 금리 차이가 코로나19 대확산(팬데믹) 이후 최대로 벌어진 데에도 이런 시장의 우려가 작용했다. 

이탈리아·독일 국채 간 금리 차이는 통상 유럽 금융시장의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공포 지수'로 불린다.

이에 ECB는 그달 긴급회의를 열어 회원국 간 국채금리 차이가 비정상적으로 커지지 않도록 하는 대책을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결과가 이날 ECB가 내놓은 새로운 채권매입 프로그램인 TPI(Transmission Protection Instrument·전달보호기구)이다.

TPI는 독일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과도하게 오르는 회원국의 국채를 ECB가 무제한으로 매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통화정책의 기조가 유로존 전체 회원국으로 원활하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는 드라기가 총재로 재임한 ECB가 10년 전 유럽 재정위기에 맞서 도입한 무제한 국채매입프로그램(OMT)과 유사하다.

이번 TPI는 그러나 ECB가 언제, 어떻게 TPI를 발동해 회원국 국채를 매입할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덴마크 은행 단스케방크의 피에트 크리스티안센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번 대책이 번거롭고 시장이 바라는 만큼 쉽게 작동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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