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영화 같았던 엘비스의 삶 보여주지 못한 영화 ‘엘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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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영화 같았던 엘비스의 삶 보여주지 못한 영화 ‘엘비스’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2.07.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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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던 시기, ‘프레디 머큐리’에게 매료돼 한동안 덕후로 살았다. 그룹 ‘퀸’의 음악을 밤낮없이 들으며 ‘퀸 폐인’이 됐던 그때가 불현듯 떠올라 그 행복한 재현을 위해 극장을 찾았다.

영화가 불러낸 20세기 문화의 아이콘 ‘엘비스 프레슬리’를 통해 기꺼이 ‘엘비스 앓이’를 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에 결과적으로 159분이나 되는 긴 러닝타임이 준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칸영화제 공개이후 쏟아진 호평, 북미에서 ‘탑건: 매버릭’을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다는 상당히 믿을만한 소문난 잔치는 그의 수많은 메가 히트곡에도 불구하고 귓가를 맴도는 음악도, 명성만큼이나 굴곡진 삶을 통해 어떠한 정서도 느낄 수 없었다.

심장어택에 대한 기대감이 과했던 걸까.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매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크린에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패착이 된 화자 ’톰 파커‘

트럭운전사에서 ’로큰롤의 제왕‘이 되기까지 ’엘비스(오스틴 버틀러 분)‘에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겨준 인물이 있다. 바로 전속매니저인 ’톰 파커(톰 행크스 분)‘다. 엘비스의 스타성을 알아보고 그를 쇼 비지니스의 세계로 이끌어 슈퍼스타가 되게 한, 엘비스에게는 은인인 동시에 지독하게 돈만 밝혀 결국 그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마는 빌런이기도 하다. 판을 벌여주고, 판을 키워주고, 족쇄를 달아 그 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악연으로 귀결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작품의 화자(話者)다. 영화의 시작과 끝 모두 톰 파커가 맡고 있다. 마치 엘비스 인생에 있어 스타로서의 시작과 끝이, 행복과 불행이 그에게서 비롯됐다는 듯이. 

인종분리정책에 대립하는 저항의 아이콘으로서의 위기와 고뇌, 사랑했던 엄마의 죽음, 스포트라이트 이면의 처절한 외로움 등 엘비스의 인생을 관통하는 불안함은 극적 긴장감 속에서 노출된다. 시대의 우상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지만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상황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슈퍼스타의 역설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문제는 좀처럼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는 거다. ’프레디 머큐리‘의 고독에 코끝이 찡하게 울컥거렸던 정서가 아쉽게도 엘비스에게는 없다.

’톰 파커‘의 시선에서 시작된 나레이션이 패착이다. 지극히 설명적이다 보니 관객에게 가슴을 내어줄 공간을 만들지 못한다. 엘비스의 고민과 불안함에 대해 머리로의 이해는 가능하나 공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는(알려주려는) 욕심 때문이다.

때로는 관객을 위해 여백을 둘 필요가 있는데 톰 파커의 나레이션이 이를 방해하며 순간순간 몰입을 깬다. 게다가 어떤 것도 버릴 것 없다고 여겨 엘비스의 일대기 모두를 욱여넣은 서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하다.

영화 '엘비스' 스틸 컷

오스틴 버틀러의 발견

’물랑루즈‘, ’위대한 개츠비‘ 등 스타일리쉬한 작품을 연출했던 ’버즈 루어만‘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시작부터 화려한 영상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마치 “이것이 할리우드야~” 라는 듯이 온갖 테그닉적 재능을 발휘한다. 작품은 엘비스가 살았던 1940년대부터 1970년대 미국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분할 화면에 만화 장면, 이따금씩 그의 생전의 무대와 열광했던 팬들의 모습까지 삽입해 사실감을 입힌다.

그러나 감독의 비주얼리스트로서의 특별함은 러닝타임 거의 내내 연출되다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임팩트는 줄어든다. 시각적 쾌감의 과유불급, 즉 특별함이 넘치다 보니 되레 특별하지 않은 아이러니라고 할까.

그럼에도 엘비스로 부활한 신예 ’오스틴 버틀러‘는 이 영화가 건진 가장 큰 수확이다. 1년 반 동안 준비해 완성된 캐릭터는 외모의 유사성이 그다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엘비스 그 자체다. 실제의 그와 흡사한 음색과 춤, 제스추어, 표정까지 얼마나 많은 연구와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것인지를 짐작케 한다. 외로움과 불안함을 표현한 깊이감 있는 눈빛연기는 배우로서 그의 매력지수를 상승시킨다.

하지만 주인공 한명의 강렬함으로 159분을 달래기란 쉽지 않다. 감동이 생략된 전기 영화는 분출할 준비가 돼 있던 카타르시스를 봉인해버리고 떼창을 기대했던 명곡들은 그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한다. 현실의 짧지만 뜨거웠던 엘비스의 삶이 정작 영화 속에서 화력을 다하지 못해 못내 아쉽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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