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락가락 '가계대출 규제'...금융소비자만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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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오락가락 '가계대출 규제'...금융소비자만 '혼란' 가중
  • 권상희 기자
  • 승인 2022.06.22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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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부터 DSR 3단계 규제 시행
서민·실수요자 대출 기준은 완화
가계대출 억제도, 실수요자 배려도 이도저도 아닌 정책
권상희 금융부 기자
권상희 금융부 기자

[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다음달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한층 강화되는 반면, 서민과 실수요자를 위한 대출 우대기준은 대폭 완화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조치가 새 정부의 '금융 정상화'라고 설명하지만, 이를 과연 정상화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한쪽에선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실수요자를 위해 대출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엇박자'식 정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새 정부 집권 초기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일관성없는 정책 기조는 혼선을 불러오기 쉽다. 

다음달부터 DSR 3단계 실행…실수요자 대출 우대기준은 완화

금융당국은 '갚을 수 있을만큼 빌리고 나눠 갚는 관행'의 안착을 통해 과도한 가계부채 확대를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서 다음달부터는 차주단위 DSR 3단계가 예정대로 시행된다. 

올 초부터 시행된 DSR 2단계에 따르면 현재 총 대출액이 2억원이 넘는 차주는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은행권 기준)를 넘으면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다음달부터는 DSR 3단계가 적용돼 총대출액이 1억원만 넘어도 DSR 40% 규제를 받게 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전체 차주의 29.8%, 전체 대출의 77.2%가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대출자 3명 중 1명이 DSR 규제에 해당되는 셈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내달부터 서민과 실수요자의 대출 요건을 완화하고 우대를 확대한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우대받는 '서민·실수요자' 기준을 연 소득 9000만원 이하와 주택가격 9억원(투기·투기과열지구) 또는 8억원(조정대상지역) 이하로 완화하고 LTV 우대 폭도 최대 20%포인트 확대한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이는 지난 16일 윤석열 정부가 '새 정부 가계대출 관리방향 및 단계적 규제 정상화 방안'을 통해 발표한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해당 정책은 ▲생애 첫 주택구입자에 한해 지역·주택가격 상관없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80% 적용 ▲대출한도 4억원에서 6억원으로 확대 ▲DSR 계산 시 청년은 장래소득 반영 확대 ▲신용대출 연소득 범위 내 제한 폐지 ▲긴급생계용 주택담보대출 한도 1억5000만원으로 증대 등이다. 

요약하면 윤 정부는 정책을 통해 20~40대 무주택자에 혜택을 줌으로써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셈이다. 또DSR 3단계를 통해 가계대출을 억제하긴 했지만, 청년층의 경우 대출이 제약되지 않도록 미래소득을 반영한다.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원하는 것은 가계부채를 억제하는 것인가, 아니면 증대시키는 것인가?

만일 가계부채를 진정으로 통제하고 싶은 것이라면 신용대출 한도는 왜 푸는 것인가? 게다가 확실하지 않은 미래소득은 어떻게 반영하겠다는 것인가? 

실제로 은행권은 이러한 정부 기조에 맞춰 다시 가계대출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대출 금리는 내리고 마이너스 통장 한도는 복원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서다. 이로 인해 은행 가계대출은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연속 감소하다가 5월부터 다시 늘어나고 있다. 

은행들의 이러한 행보는 가계부채를 키워 국내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작용하게 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가계부채 잔액은 1862조원으로, 1900조원에 육박한 상황이다. 

게다가 국가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세계 36개 주요국 중 한국의 가계부채가 가장 많다. 국제금융협회(IIF)의 '글로벌 부채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3%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는 홍콩(95.3%), 타이(89.7%), 영국(83.9%) 순으로 나타났다. 

금리인상 기조 대응할 강력한 전략 부재…따로 노는 정책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력한 긴축으로 세계 각국의 실세금리가 급격히 오르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할 강력한 정부 전략이 부재하다는 점도 큰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전세계적 경기침체가 우려되는데 어떤 대책을 고민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통화량이 많이 풀린 데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고금리 정책을 지금 쓰고 있는 마당에 생긴 문제들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도는 없다"고 답했다. 

무책임한 발언이다. 설령 정말로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도가 없다' 해도 이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미 연준이 연말 기준금리를 3.4%까지 올리고, 한은은 같은 시기 기준금리를 2.75~3.00%까지 올릴 것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바로 경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高) 상황에서 누구보다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20일 은행장들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금감원장의 이러한 '이자 장사' 언급 직후 대출금리를 내리는 추세다. 

이 또한 엇박자가 아닐 수 없다.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강력한 매파적 정책을 펴고 있는 가운데 금리인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장에서 그만큼의 금리 상승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정부는 한쪽에서는 실수요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대출을 풀어주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이자장사를 하지 말라고 은행들을 옥죄고 있는 셈이다. 

현재 경제 정책은 정부 따로 당국 따로 손발이 안 맞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DSR 규제를 강화했으면 가계부채를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다하든지, 실수요자들에게 주택 구입을 권장할 생각이라면 전세계적인 긴축 분위기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놓든지, 그 어느 것도 안되고 있으면서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내용에만 임시로 풀칠하듯 대책을 내놓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당국이 협력해 '3고'를 헤쳐나갈 일관성있고 강력한 정책을 내놓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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