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엔화 약세가 시사하는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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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엔화 약세가 시사하는 불안감
  •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 부문장
  • 승인 2022.06.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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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 부문장] 글로벌 자산시장이 인플레이션과 긴축에 따른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외환시장에서는 엔화의 상대적 약세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달러화 강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엔화는 달러 대비 30% 떨어졌고, 특히 올해 들어서는 그 속도가 더 빨라져 6개월도 지나지 않은 기간에 16% 이상 절하됐다.

원화 가치의 경우 절하 속도가 빨랐던 작년 말부터 5월 중순까지 10% 미만 떨어지고 지금은 되올라 YTD 기준 절하 폭이 5~6% 정도라는 점에서, 엔화 가치의 절하 속도는 매우 빠른 편으로 볼 수 있다. 작년에 100엔당 1050원 이상까지 갔었던 엔화당 원화 가치도 당연히 960원 내외로 올랐다. 작년에 100만원을 엔화로 바꿀는 때는 약 9만5000엔을 받았는데, 지금은 10만4000엔 정도를 받는다.

'나쁜 엔저'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

이렇듯 엔화 가치가 급락하자, 국내 언론과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엔저 현상에 대해 ‘나쁜 엔저’라고 평가하고 있다. 통화가치 움직임은 경제 주체나 기업별로 효과가 나뉘지만, 현재와 같이 고물가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엔저에 따른 수입 물가의 상승 압력이 일본 내 경제 주체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의 경우에도 통화 약세의 효과는 마찬가지인데, 수입품의 가격이 오르면 전체 물가상승률이 높아지고 내국인들의 구매력이 떨어진다. 또한 지금 일본 경제는 환율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19와 지정학적 위험에 의한 여행객 감소와 공급망 불안 등에 의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엔화 가치 절하가 오히려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특히 내수 경제 규모와 비중이 큰 일본의 경우, 중간재나 완제품을 수입해 내구 시장에 판매하는 기업은 제품 가격 인상에 따른 수요 둔화 가능성이 전체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에너지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일본은 국제유가 급등에 의해 무역수지 적자 압력이 높아져 있는데, 엔화 약세는 에너지 관련 제품 수입 기업들의 부담과 경제 전체적인 엔화 표시 적자 규모의 증가로 이어진다. 나쁜 엔저라는 평가가 신빙성을 갖는 이유다.

이러다 보면 국내에서는 내년 초 기분 좋은 소식이 들릴 수 있다. 일본과의 달러표시 1인당 GDP 차이가 거의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의 1인당 명목 GDP 차이는 15% 정도인데, 엔화가 10% 더 약세로 가고 우리나라의 명목 성장률이 높을 것이라 보면 차이가 미미해질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의 정책 당국자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긍정적이며, 일본은행이 엔화의 약세를 방어하기 위한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행의 구로다 총재는 최근에도 엔화 약세가 긍정, 부정적인 효과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이라는 의견을 내 놓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제로금리의 장기화와 장기 국채금리를 특정 범위에 머물게 하는 양적 완화를 지속할 가능성이 큰 편이다.

이러한 견해는 일본은행뿐 아니라 일본 정부가 갖는 뿌리 깊은 믿음이라는 점에서 엔화 추가 약세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달러화에 대한 엔화 약세가 지금부터도 10% 이상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1달러당 134엔 수준의 엔달러환율이 1달러당 150달러 내외로 오를 것이라는 얘기다.

올들어 엔화의 평가절하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추가약세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엔화의 추가 약세 가능성

이같은 정책과 엔화의 상대적 절하가 지속될까? 그리고 실제로 일본에 도움을 줄까? 아직 판단은 이르다.

일본 내부에서도 기업 CEO들은 대체로 나쁜 엔저라는 표현을 쓰며 엔화 약세의 부정적 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 일본은 여전히 글로벌 관점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고 이러한 대기업들이 경제 성장 전체를 이끌어 가는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엔화 약세가 강세보다 유리할 가능성도 여전하다. 지난 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반 흑자 규모의 축소 상황에서 정부가 엔화 가치의 절하를 용인하거나 유도해 내수보다 수출을 지원한 것은 이 같은 당국의 믿음을 잘 보여주는데, 해당 기간 중 성장률은 그 이전보다 올랐었다. 

일본이 엔화 가치 약세를 용인하거나 유도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엔화 약세가 장기간 뿌리깊게 자리잡은 디플레이션 위험을 완화하고 나아가 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좀비 기업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어 구조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매우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려 왔고, 이는 경제의 각 부문을 좀먹어 왔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일본 디플레이션의 장기화가 만성적 저성장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정부의 의도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하지만, 어쨌든 디플레이션과 빠른 고령화 과정에서 일본 민간 부문의 경제 활력은 계속 떨어졌고, 정부 부채는 극단적으로 늘어났으며, 1인당 GDP도 하락을 거듭했다.

이에 따라 2012년 출범한 아베 정부는 엔화 약세를 비롯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 바 있고, 2017년 이전 일정 기간 동안에는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면서 니케이지수가 2배 이상 오르고, 2000년대 들어 2012년 이전까지 0.7% 수준에 불과했던 연간 평균 GDP성장률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1.2% 수준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엔화 약세가 약화되면서 성장률은 다시 0.7% 내외로 떨어졌다. 아베노믹스가 추진했던 엔화 약세의 효과를 인정하지 않는 경제학자도 많지만, 맞는 방향이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나 관료 역시 만만치 않게 존재할 만한 상황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효과의 불확실성과 정책당국의 입장을 감안할 때 엔화의 상대적 약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엔화 약세의 폭이 커지고 장기화될 경우, 일본 경제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과는 별개로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는 최근 20년 사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엔화 약세는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위험

이미 올해 1분기부터 이와 관련된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외환시장 상황에 주목하는 일부 전문가들이 엔화의 급격한 약세가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 놓고 있다. 엔화의 약세가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교역 적자 확대와 통화가치 급락, 자본의 급격한 이탈을 초래할 것이라는 얘기인데, 과거 90년대 중후반 아시아 외환위기를 염두에 둔 평가다.

특히 이번 과정에서는 위안화 약세가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망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엔화 약세에 따라 중국 역시 위안화 약세의 유혹을 느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90년대 중반 아시아 외환위기 전에도 중국 위안화 약세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한 중국의 위안화 절하 정책이 통화가 느슨하게나마 달러에 연계되어 있던 아시아 각국의 교역 조건 악화로 이어졌고, 결국 대규모 경상 적자와 외환위기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이전 엔화 강세기에 이 지역은 일본 자본의 유입과 일본의 생산 세계화로 공급 과잉이 시작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타격은 더욱 컸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과거 골드만삭스의 경제학자 짐 오닐이 엔화 약세가 아시아의 외환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 같은 시각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 추정된다.

물론 아직은 과거와 같은 현상이 반복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당시 실패를 교훈 삼아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은 외환보유고를 늘려 왔고, 코로나19 이후 재정 투입에도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는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재정적자 증가 폭이 빠르긴 하지만, 아직 국가 부채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가계 부채의 문제는 남아 있지만, 자국 통화 부채라는 점에서 외환위기로 전이될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글로벌 증시가 여러 모로 불안한 상황에서 엔화의 꾸준한 약세는 불안한 소식만은 분명하다. 여전히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

 

● 최석원 부문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2016년부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근무하다가 최근부터 지식서비스 부문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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