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갈 곳 잃은 '중대재해법', 이젠 방향을 결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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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갈 곳 잃은 '중대재해법', 이젠 방향을 결정할 때다
  • 유태영 기자
  • 승인 2022.06.1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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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5개월 지났지만 '반짝효과'도 기대하기 힘들어
모호한 시행령 개정해 기업들이 법 준수 할수 있게 도와줘야
유태영 산업부 기자
유태영 산업부 기자

[오피니언뉴스=유태영 기자]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길을 헤매고 있다. 입법 당시부터 시행 초기 '반짝효과'만 있을것이라는 예견과 달리 실제 산업현장에선 그조차 없었다는 것이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 통계로 공식 확인됐다.

올해 1월 27일 부터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공사현장이나 사업장에서 1명이상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기업 대표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이상 징역형을 부과한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한 처벌도 함께 받아야 한다. 50억원 이상 건설현장과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우선 적용했다. 

중대재해법은 '예방'보다 '처벌'이 앞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선 작년 동기보다 더 산재로 인한 사망자수가 더 많았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안전보건공단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1~3월 국내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올해 1~3월 산재로 인한 사망자수는 586명으로 전년동기(574명)에 비해 12명 증가했다. 사고사망자수는 241명으로 작년보다 3명 늘었고, 질병사망자수는 345명으로 9명 더 증가했다. '처벌 1호'를 피하기 위해 법 시행 초기와 2월 설 연휴에 장기간 산업현장이 휴무에 들어갔지만 2022년 대한민국 현장에선 작년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사망한 것이다.

특히 우선 적용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수가 작년보다 더 많이 발생한 점은 법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점이다. 한 노무사는 기자에게 "대기업들은 안전보건 조직도 확충하고, 로펌으로부터 자문도 구할수 있지만 중견이하 기업들은 뭘 준비해야 할지몰라 아예 손을 놔버렸다"고 털어놨다. 법을 준수하고 싶어도 모호한 시행령과 규칙이 자포자기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900여곳의 기업 대상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5인 이상 기업 930곳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 기업 실태’를 조사한 결과, 기업의 30.7%만 '중대재해처벌법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으며 대응 조치가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기업의 68.7%는 '법을 이해하지 못해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 노동자 CG. 자료=연합뉴스
건설 노동자 CG. 자료=연합뉴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다양한 산업군과 기업들의 현장에서 중대재해법 위반에 해당하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지만 수사 속도는 나지 않고 있다. '1호 사건'이 발생한 삼표산업에 대한 수사도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강력한 처벌을 통해 산재를 예방하겠다는 입법 취지와 달리 정권이 바뀌면서 미묘하게 기류가 바뀌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경영계의 중대재해법 처벌 완화 요구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고용부 출신 한 관계자에 따르면 "정권초기 고위 공무원들이 여당 기조에 맞춰가려는 경향이 짙어 중대재해법 관련 수사는 진척되지 않고 쌓여만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 갈 곳 잃은 '중대재해법'이 다시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손 봐야할 때다. 가장 논란이 많은 '경영책임자'의 대상과 범위를 구체화하고 경영책임자의 의무 내용을 명확화 하는 등 시행령의 개정으로 기업들이 법을 잘 준수할 수 있도록 방향을 알려줘야 한다. 지금 이순간 대한민국 현장에선 산재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법 시행 초기인 지금이라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머리를 맞대고 보완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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