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식-조말수 체제붕괴⑧…포철를 쪼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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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식-조말수 체제붕괴⑧…포철를 쪼개라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8.1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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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 갈등 속에서 김영삼 정부, 제철소 분리 경영과 민영화 방안 검토

 

포철 경영진이 싸움을 하는 동안 정부에서는 포철에 대한 수술의 칼을 들이댔다. 그것은 포철을 포항과 광양으로 분리하는 「포철 분리론」과 「포철 민영화론」이다. 두 논리는 같은 논리의 연속선에서 이뤄졌다. 즉 포철이라는 덩치가 큰 공기업을 일시에 민영화할 경우 생기는 경제의 파장이 크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두 제철소를 분리, 하나는 공기업 체제로 유지하되 나머지 하나의 제철소를 민영화한다는 방안이다.

정 회장과 조 사장이 힘을 합쳐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 몰두할 무렵인 1994년 2월 중순. 삼미그룹의 모 전무는 포철분리론에 관한 자료를 입수, 특정기자에게 전달했다. 그는 󰡔포철에서 부사장을 지내던 사람이 작성한 자료인데, 정부 내 관련부처에도 전달됐다󰡕고 운을 뗐다. 그 자료에는 포철 분리 운영의 필요성 뿐 아니라 日本製鐵(新日鐵의 전신)이 패전 직후 맥아더 정부에 의해 분리되는 과정을 실례로 들었다. 게다가 거기에는 포철 임원진들의 갈등이 독점에 따른 폐혜로 지적, 민영화와 분리를 통해 이를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가 전달한 자료가 정부에 접수돼서 포철 민영화와 분리론에 참조됐는지, 그리고 포철의 전직간부가 그 자료를 만들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정부에서 검토하는 사안이 민간업계에 돌아다닌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만큼 포철에 대한 반발심이 정부를 비롯해서 재계에 팽배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였다.

정부가 포철민영화와 분리안을 검토한 것은 한이헌 경제기획원차관이 󰡔한전은 사장만 있는데, 비슷한 매출규모의 포철에 회장과 사장을 둘 필요가 있느냐󰡕는 발언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면 정부에서 검토한 포철민영화와 분리론을 알아보자.

1994년 2월 15일 경제기획원 김병균(金炳均) 심사평가국장은 한국경제인동우회 주최 공기업민영화 세미나에서 참석, 주제발표문과 토론내용을 통해 포철분리론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김 국장의 발언요지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분리하되, 포항은 민영화하고, 광양은 현상태대로 공기업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 이른바 부분민영화론이다.

김 국장의 발언으로 포철 분리론은 표면에 떠올랐지만 정부는 94년 3월말부터 9월까지 계속될 포철경영진단을 실시, 그 결과를 놓고 판단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경제기획원, 상공자원부, 생산성본부, 산업연구원 쪽 요원 및 교수 공인회계사등 모두 9명을 투입, 실시하는 경영진단은 포철의 장래를 가늠하게 될 중요사안. 정부는 민영화추진대책위원회와 실무대책반을 가동, 95년부터 경영체제개편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지였다.

정부내 이같은 움직임은 이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부터 있어왔다. 93년초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었던 한이헌씨는 󰡔포철을 대규모 기업집단에 포함시키겠다󰡕고 말한데 이어 경제기획원에서 포철 분리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경제기획원, 상공자원부등 실무부서 당국자들은 당시 포철 분리안 검토에 대해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나 포철이 자체 채널을 통해 타진한 결과 정부 부처에서 이 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정부안에 반대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당시 정부측 검토안은 포철을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로 분리하며 자회사를 독립시킨다는 것. 경제기획원의 심사평가국이 주도, 상공자원부기초공업국과 협의를 거친 안이었다.

정부당국자의 시각은 포철의 내부거래 정도가 매우 심각하고 계열기업이 지나치게 많은데다 경쟁자가 없어 거래업체에 대한 횡포가 극심하기 때문에 포철을 분리하고 계열기업을 정리하면 이런 문제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포철은 당시 출자지분 30%이상인 계열업체가 28개에 달하는 대기업. 출지지분 30%에 미치지 못하는 자회사까지 합하면 47개에 이르렀다.

 

 

경제기획원이 그동안 검토해오던 「포항제철 분할안」을 구체화할 움직임을 보이자, 포철은 󰡔회사가 분리될 경우 국가적 손실이 크다󰡕며 반대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포철의 반대입장은 홍보차원에서 반대론을 제시한 것이지, 정 회장이나 조 사장이 직접 나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칼자루를 쥔 정부에 사표를 낸 상태였기 때문에 포철 분리론 또는 부분민영화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최고경영자들이 가뜩이나 움추린 상태에서 정부 측에서 공기업인 포철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의 칼을 집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철은 정부의 부분민영화에 자신의 의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포철은 정부의 검토안이 미국 일본 EC(유럽공동체)등에서 제철소를 통합하고 있는 추세에 배치되는데다 포항과 광양제철소의 통합운영으로 얻어지는 규모의 경제, 보완관계를 잃게 된다고 내세웠다. 아울러 포철을 분리경영할 경우 발생하는 국가적 손실을 조목조목 제기했다.

우선 세계추세에 어긋난다는 점. 포철은 조강생산능력 연산 2,100백만톤으로 세계 제2위의 철강업체인데 1위인 新日鐵은 지난 70년초 야하다-후지제철소를 통합했고, 3위인 프랑스의 유지노사실로사도 3년전 유지노사와 사실로사를 통합한 회사이며, 미국의 US스틸사도 카네기사, 멜론사, 금융회사들이 통합, 단일회사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들회사와 국제경쟁 면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것도 2,100만톤 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포철측의 주장이었다. 따라서 분리할 경우 이러한 경쟁력을 잃을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또 규모의 경제를 이룰수 없다는 것이 포철측의 시각. 거대한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인 철강산업의 경우 규모의 증대에 따른 원가절감 효과가 매우 크게 나타나는데 포철을 분리하면 생산단가가 높아져 결국 국민경제에 피해를 입히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포항과 광양제철소의 양소체제 운영으로 나타나는 상호보완 체제가 무너진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포철은 1992년 10월 광양4기 준공으로 포항에서는 고급강 위주의 다품종소량생산에 치중하고 광양에선 열연및 냉연코일 위주의 소품종대량생산에 주력하는 등 제철소 특성에 맞는 제품구성으로 원가절감과 설비비용등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또 포항제철소에서 발생된 이익및 감가상각충당금을 광양확장사업에 투입, 광양제철소 투자비를 50%이상 자체조달했고 광영제철소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향후 포항제철소 설비합리화사업에 투자하는 보완기능을 갖추었다. 지리적으로도 광양은 중국 동남아등 환황해권수출에, 포항제철소는 소련 일본 북한등 환동해권수출에 각각 주력하는등 보완관계를 맺어왔는데, 분리하게 되면 이같은 장점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포철은 현재 양 제철소를 독립채산제 형태로 운영, 단일회사 내에 제철소간 경쟁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분리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주장했다.

포철 분리론은 형식과 본질은 다르지만 70년대말 광양제철소를 만들 때부터 제기되어온 문제였다. 정부는 광양제철소 건설을 추진하면서 별도의 회사를 설립할 계획이었으나 당시 박태준 사장이 강력히 반대했다. 박 사장은 박정희 대통령과의 담판에서 정부방침을 변경, 단일회사로 건설됐다.

포철 분리론은 2~3년전 호남출신 야당의원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검토되기는 김영삼 정권 들어와서 처음이었다. 또한 정부의 포철 분리 검토는 박태준씨가 회사를 떠났고 포철의 경영환경도 바뀌고 있는 여건속에서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이었다.

 

포철의 민영화계획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민영화의 일환이다. 즉 공기업이 갖는 경영의 경직성을 탈피, 민간기업이 갖는 경영효율성을 갖추고 국제경쟁력을 높여나간다는 것.

공기업민영화는 세계적인 흐름이었다. 멕시코 등 중남미쪽에서는 그것을 경제개혁의 요체로 인식하고 있을 정도였다.

공기업의 민영화 유형에는 ①경영권의 민간이양 ②정부지분의 민간매각 ③공기업의 민간매각 ④관리운영권의 민영화등이 있다.

80년대 이후 우리 경제의 민간부문 사업수행능력은 정부부문을 앞서고 있는 상태에서 공기업을 「주인없는 경영」을 두어 조직, 인력, 관리, 경영방식 측면에서 여전히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었다. 공기업이 생산하는 철강, 전기, 통신 제품의 가격, 품질, 경쟁력이 민간으로 직결된다는 차원에서 문제를 노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공기업민영화는 1968년, 1980년, 1987년 등 3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특히 87년의 계획에는 포철을 포함한 6개기관의 부분민영화작업이 담겨 있었다. 87~89년간 포철지분 34.1%를 국민주로 매각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국민주 방식은 재정수입 소득배분에 주안점을 뒀던 것으로 경영효율성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그것은 주가하락시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부담을 안겨줬다. 그렇다고 해서 소득 안정 효과가 있었느냐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소액의 주식을 배정받았다가 곧바로 매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탓이었다. 대신 국민주화 과정에서 행정력과 인력부담이 가중됐다.

부작용이 노출된 국민주방식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대신 향후 포철의 주식매각은 공개경쟁입찰이나 중시를 통한 매각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했다. 여기에 외국인 참여를 허용한다면 8%범위 내가 적합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경영진단반의 분석결과를 토대로 95년부터 중장기 민영화방안을 모색할 예정이었다. 포항과 광양을 분리, 부분민영화시켜 포철내부경쟁력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했었다.

 

포철측도 정부나 거래선들이 지적하고 있는 독점기업 포철의 문제점을 일부 인정했다. 그러나 포철의 개혁팀이 추진하고 있는 신포스코운동이 ①고객중심의 판매체제구축 ②구매제도개선 ③출자회사구조조정및 전략육성등에 주안점을 주고 있는 것도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포철은 독점폐해를 타파하기 위해 ①고개전담서비스제 강화 ②외상판매 확대 ③담보제도 완화 ④유통판매비율 확대조정 ⑤중소기업 지원 ⑥계약 및 행정서류 간소화등이 추진하고 있다며, 정부의 시각은 우려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두 제철소를 분리할 경우 문제는 심각하게 되며, 보완기능상실로 1백% 가동유지가 어려워진다. 여기에다 원료구매및 물류비용상승, 조직인력의 중복운영, 전산기술관련 추가비용 발생, 신용도 저하에의한 외자 차입금리 상승등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포철측의 주장이었다.

포철측의 자체계산으로 분리에 따른 원가상승액은 연간 3,400억원규모. 이는 철강재 공급가격의 5%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포철은 한마디로 국내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포철민영화와 분리안검토는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포철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이런 방안의 검토는 박태준이라는 실력자가 사라지고 후임경영진들이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몰아치는 외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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