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러시아 파산①…총리 비서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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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러시아 파산①…총리 비서의 실수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8.1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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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장관이 감히 대러시아 총리를 만나자고 하나”며 면담 요청에 딱지

 

1998년 5월 15일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미국 재무부 부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그의 모스크바 방문은 아시아 위기가 재발하자, 러시아가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해 대책을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서머스는 당시 아시아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로버트 루빈 재무 장관과 함께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협상가로 부상했다.

 

▲ 세르게이 키리옌코. 보리스 옐친 하에서 1998년 3월 23일~8월 23일 기간에 총리 역임. /위키피디아

 

시골뜨기 총리 비서의 자존심

 

그는 세르게이 키리옌코(Sergei Kiriyenko) 러시아 총리를 만나자고 크레믈린에 요청했다. 키리옌코는 35세의 젊은이로 공산당이 지배하는 의회(두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총리 지명을 받았다. 서머스도 43세로 젊었지만, 키리옌코는 더 젊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국제 투자자들은 미국이 지원할 것이므로 러시아는 곧 안정을 찾을 것으로 믿었다.

 

문제는 아주 사소한데서 발생했다. 키리옌코 총리의 비서는 모스크바에서 250 마일 떨어진 시골 출신으로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미국의 부장관이 건방지게 대 러시아의 총리를 만나자고 하는데 화가 났다.

러시아와 미국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등하게 동서 양대 진영을 호령하는 강대국이었다. 아직도 핵무기 보유에서 미국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핵탄두 숫자상으로는 미국보다 많다. 비서의 눈에는 일국의 총리가 부장관을 만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판단으로 서머스의 키리옌코 면담 제의에 딱지를 놓았다. 때마침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IMF 팀이 1998년도 세수 증가에 대해 러시아 정부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서머스가 키리옌코를 만나지 못했다는 소식이 곧바로 서방세계 금융가에 전해졌다. 그러자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동경 등 세계 주요도시의 빌딩에 근무하는 화이트칼라들이 러시아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그들은 증권회사, 뮤튜얼펀드, 투자은행, 헤지펀드등에 근무하는 펀드매니저들이었다. 그들은 러시아가 대외 부채를 갚지 못할 것이며, 러시아 정부와 서방 국가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투자자들은 한꺼번에 대량의 루블화를 달러로 바꿔 러시아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나타난 투자자들의 패닉 현상이 러시아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그해 5월말 열흘동안 100억 달러 이상의 외국 자본이 일시에 러시아를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2차대전 이후 40여 년간 치열한 핵무기 경쟁으로도 소련을 이기지 못했던 서방세계는 한줌의 자본으로 러시아를 굴복시켰던 것이다. 러시아 위기는 곪을 대로 곪은 국가 경제가 국제 금융사회의 오해와 정부의 서투른 대응, 불행한 사건 등으로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러시아 정부는 가뜩이나 부족한 보유외환을 풀어 막으려 했지만, 며칠 가지 않아 외환 창고에 바닥이 드러났다. 1997년 10월 230억 달러였던 러시아 외환보유액은 이듬해 5월말 140억 달러로 줄어들었고, 그중 45억 달러는 즉시 현금화할 수 없는 금괴였다.

루블화를 달러에 고정시켰던 러시아 정부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남아있었다. 하나는 아시아 국가들처럼 변동환율제를 채택, 루블화를 하락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 국가들처럼 통화 폭락을 감수해야 한다. 러시아는 그 동안 해외에 대량의 국채를 매각함으로써 예산 적자를 메웠기 때문에 루블화를 절하하면 해외 채권 상환금 부담이 엄청나게 불어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IMF의 요구를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여 받기로 예정된 차관을 빌려오는 길이다. IMF는 7억 달러의 차관을 러시아에 지급할 예정이었지만, 러시아 정부가 무리한 IMF 조건에 이의를 제기하자, IMF 사람들이 휑하니 모스크바를 떠나버렸다. 다시 IMF의 마음을 돌리는 길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파국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서방 지원에 의한 경제 발전의 한계

 

러시아는 1997년말 한국 원화가 폭락하고 아시아 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에도 위험한 상태였다. 선진국의 투자자들은 이머징 마켓에서 황급히 손을 뗐고,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97년말에 러시아를 빠져나간 외국 자본은 40억 달러에 달했다. 당시 한국의 종금사등 금융기관들은 40억 달러의 러시아 채권을 샀다가 그중 20억 달러를 매각했다는 것이 국제금융계의 정설이다. 러시아 정부가 이듬해 한국 대사관 직원을 추방하고, 한-러 관계가 냉랭해진 것도 어쩌면 이런 과정에서 생겨난 앙금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당시 중앙은행의 결정적인 실수는 보유외환을 쓸데없는데 허비했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은 루블화 방어를 위해 보유 외환을 썼어야 했는데, 채권시장 방어에 아까운 외환을 풀었다. 러시아는 구조적으로 채권 이자율을 낮춰야 국채 발행 및 원리금 상환 비용을 줄이고, 따라서 재정 적자를 메워 나갈 수 있었다. 러시아는 아시아 위기로 인한 패닉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보유 외환이 눈에 띠게 줄어들어 있었다. 약간의 충격만 닥쳐도 러시아는 크게 흔들리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경제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본질적인 체질을 강화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다. 빅토르 체르노미르딘(Victor Chernomydin) 총리가 그 중심에 있었다. 총리는 일련의 개혁 정책을 발표했고, 서방 투자자들은 러시아 총리의 개혁에 장단을 맞춰 러시아 경제 부흥을 지원했다. 루블화는 서서히 안정돼 갔고, 국채 금리가 40%에서 30%로 떨어졌다. 주가는 1997년 21%나 떨어졌지만, 폐허로 변한 아시아 국가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러시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IMF의 지원이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자유주의자이자 시장경제론자인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IMF를 통해 러시아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IMF는 1995년 4월부터 96년 3월까지 1년동안 러시아에 68억 달러를 지원한데 이어 96년 3월부터 99년 3월까지 3년 동안 1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협약이 체결돼 있었다. 아시아 위기가 절정이던 97년말까지 100억 달러중 절반이 이미 러시아에 지원됐고, 나머지 IMF 자금이 분기별로 7억 달러씩 지원될 예정이었다. IMF는 그해 연말에 러시아 경제가 불안하자 17억 달러의 차관을 앞당겨 크레믈린 당국에 지원했다. 서방세계는 IMF 자금이 예정대로 유입되면 러시아 경제는 견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서방 국가의 지원으로 러시아 경제는 구소련 해체후 7년만에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을 달성했다. 1997년 러시아 성장률은 0.4%로 미미했지만, 92~94년 동안 연간 7~15%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진전이었다. 거시지표 상으로 러시아 자본주의는 아시아 위기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뿌리 내리고 있었다.

서방 투자자들은 러시아 경제회복 소식에 반가웠다.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는 의회도 세출을 줄이고, 세입(세금 징수)을 늘려 재정적자를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998년 1.4분기 재정 적자는 GDP의 4.6%로 한해전의 8.1%보다 엄청나게 개선됐다.

그러나 러시아의 비극은 재정 적자에 있었다. 자본주의에 편입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들의 해외 단기외채는 큰 규모는 아니었다. 정부는 매년 재정적자를 채권 발행으로 메웠고, 국채발행액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채 발행액중 3분의 1이 해외에 매각됐는데, 그 규모는 1997년말에 150억~200억 달러에 이르렀다. 국채는 1~3년 만기의 단기채가 대부분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국채 만기가 다가오면 다시 채권을 발행해서 빚을 갚았고, 예산의 3분의1을 채권 원리금 상환에 퍼부어야 했다. 러시아는 IMF와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 금융기구, 그리고 서방의 국채 매입자에 의해 연명하는 종속적 자본주의가 굳어지고 있었다. IMF가 예정대로 자금을 지원하지 않거나, 외국 투자자들이 국채 매입을 중단할 경우 러시아는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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