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구식철도 폐선위기 vs 초호화 열차 인기누려···'명암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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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구식철도 폐선위기 vs 초호화 열차 인기누려···'명암 뚜렷'
  • 이상석 기자
  • 승인 2022.05.3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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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노선 위기에 내몰려
레트로 열차 인기 폭발적
일본에서 '서민의 발'인 구식 철도가 폐선 위기로 몰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초호화 열차는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연합

[오피니언뉴스=이상석 기자] 지하철이 발달한 도쿄를 벗어나 일본의 지방 도시에 가면 다양한 형태의 열차를 접할 기회가 늘어난다.

삿포로(札幌), 히로시마(広島), 나가사키(長崎) 등에 가면 도로 중앙에 깔린 선로를 따라 자동차와 나란히 달리는 노면 전차를 보게 된다.

좀 더 시골로 가면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지역을 운행하는 1∼2량짜리 전차가 눈에 띈다.

인력 부족 때문에 일본어로 '완만운텐(ワンマン運轉)이라고 부르는 1인 승무 방식의 전동차도 많다.

오래전에 은퇴한 수십 년 된 증기 기관차를 손질해 다시 운행하는 지역도 있다.

시속 603㎞를 기록해 기네스 협회로부터 세계 최고속 철도로 인정받은 리니어 신칸센(新幹線) 기술까지 보유한 나라에서 여러 형태의 재래식 철도가 여전히 유지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일본의 재래식 철도는 여행 중 레트로 감성을 만끽할 수 있는 재료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철도는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달 서일본여객철도(JR서일본)가 이례적으로 공개한 경영상황 자료에서 철도산업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철도 1㎞당 하루 이용객 수(수송밀도)가 2000 명 미만인 17개 노선 30개 구간의 정보를 공개했는데 이들 구간은 최근에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2018∼2020년도 3년 평균 실적을 봤더니 구간 운영 수입을 비용으로 나눈 수지율이 가장 높은 구간도 27.0%에 그쳤다.

수지율이 100%이면 수입과 비용이 같은 셈인데 수입의 비용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JR서일본은 이들 구간이 "대량 수송이라는 관점에서 철도의 특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며 인구 감소, 저출생 고령화, 도로 정비 및 도로를 중심으로 한 도시 개발 등을 재래식 철도 경영이 어려워지는 이유로 꼽았다.

가장 수익성이 나쁜 곳은 게이비선 히로시마현 북부 구간인 도죠(東城)역∼빈고오치아이(備後落合) 사이의 23.9㎞ 노선이다. 편도 운임은 510엔(약 5000원)이다.

영업 비용은 약 2억2000만엔인데 운행 수입은 100만엔선으로 수지율이 0.4%에 불과했다.

이 구간의 ㎞당 하루 평균 이용자는 1987년에는 476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9명으로 감소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여행객이 줄어 사업이 어려운 가운데 돈이 안 되는 구간까지 유지하는 것은 경영에 꽤 부담을 주는 일이다.

JR서일본은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에 약 1131억엔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런 경영난은 특정 기업의 문제라기보다 일본 철도 산업 전반의 해묵은 과제다.

JR의 전신인 일본국유철도(국철·JNR)는 1949년 일본 정부로부터 분리돼 공기업으로 체제를 전환했고 패전 후 기간 수송망의 역할을 수행하며 일본 경제 재건에 기여했다.

산업구조 변화, 자동차·항공기 등과 경쟁 등의 영향으로 철도의 수익성은 점차 악화했다.

규슈의 7개의 별이라는 뜻을 지닌 나나쓰보시인큐는 2013년 10월 운행을 시작한 특급 관광열차다.열차 이용권만 따로 팔지 않고 규슈 각지를 돌면서 자연 풍경, 음식, 온천 등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고급 여행 상품과 패키지로 판매한다. 사진=교도/연합

일본 국토교통성이 국철 민영화 30주년을 계기로 2017년 3월 발표한 보고서 '국철의 분할 민영화 30주년을 맞아'를 보면 1955년도에는 여객 수송에서 국철의 점유율이 55%였으나 1986년도에는 23%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철도의 화물수송 점유율은 52%에서 5%로 쪼그라들었다.

일본 정부는 1969년 이후 4차례에 걸쳐 국철의 재건을 위한 대책을 실시했으나 별 효과를 얻지 못했고 1987년 4월 결국 분할·민영화 조치가 시행됐다.

철도사업은 지역별로 여객 운송을 담당하는 6개의 JR과 일본화물철도(JR화물) 등 7개로 나뉘었다. 또 신칸센철도보유기구(1991년 해산), 일본국유철도청산사업단(1998년 해산) 등 2개 조직이 만들어졌다.

민영화 직전에 국철이 사실상 경영파탄 상태였던 것과 비교하면 경영 상황이 개선하기는 했으나 적자 구간이 늘고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가중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여객 사업을 하는 JR 중 규슈여객철도(JR큐슈)를 제외한 5개 사가 최근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수익성이 낮은 노선을 당장 없애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재래식 철도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의 경우 도쿄와 같은 지하철이 있을 리 없다. 노선버스도 하루 두세 차례만 다니거나 아예 없는 곳도 많다.

초중고생이나 면허를 반납한 후기 고령자 등 직접 차를 몰기 어려운 교통 취약계층에게 재래식 철도가 중요한 이동 수단이다.

인구 감소, 지역 경제 쇠퇴, 코로나19 확산 등 악재가 겹치면서 철도 회사의 경영은 어려워지고 있다.

이들 회사는 수익성이 낮은 노선을 폐지하거나 일대의 공공 교통망을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으로 대체하도록 정책 전환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JR서일본이 채산성이 낮은 노선의 경영 정보를 공개한 것 역시 이용이 저조한 노선의 폐지를 포함한 대응책을 검토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다.

지역사회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야마구치(山口)·오카야마(岡山)·돗토리(鳥取)·시마네(島根)·히로시마 등 5개 주요 광역자치단체장은 JR서일본이 노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경영을 지원해달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서민의 발'인 구식 철도가 폐선 위기로 몰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초호화 열차는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JR큐슈가 운영 중인 '나나쓰보시인큐슈'(ななつ星in九州)가 대표적이다.

규슈의 7개의 별이라는 뜻을 지닌 나나쓰보시인큐는 2013년 10월 운행을 시작한 특급 관광열차다.

열차 이용권만 따로 팔지 않고 규슈 각지를 돌면서 자연 풍경, 음식, 온천 등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고급 여행 상품과 패키지로 판매한다.

올해 10월에서 내년 3월에 출발하는 상품의 경우 1인당 이용 가격이 가장 저렴한 코스는 1박2일짜리 65만엔(약 643만원) 코스이고 가장 비싼 것은 3박4일짜리 270만엔(약 2672만원)이다.

비싸지만 신청자가 좌석 수보다 많아 추첨으로 이용자를 결정할 예정이다.

가장 등급이 높은 객실인 'DX스위트A'를 이용해 2015년 10월 13일에 출발한 3박 4일 코스의 경우 승차 희망자가 많아 31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나나쓰보시와 같은 특수한 사례가 위기에 처한 재래식 철도 산업의 일반적 해법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JR큐슈는 코로나19의 충격이 시작된 2020년도에는 189억엔(약 187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가 2021년도에는 132억엔(약 130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작년도에 흑자로 전환한 것은 여객 운송 수입의 완만한 회복 외에도 자산 매각 등의 영향이 컸다.

사업 부문별 성적표를 보면 본업인 운수 서비스는 여전히 적자를 면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용객이 적은 철도 노선을 유지하면 비용이 증가해 수익성이 낮아지고 독립채산제를 유지하며 노선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요금을 대폭 올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노무라총합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JR홋카이도·JR동일본·JR서일본·JR시코쿠·JR큐슈 등 5개 철도회사가 현행 노선을 모두 유지하는 경우 2040년도의 이익은 2019년도 이익의 70∼86%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노선을 유지하면서 2019년도 수준의 이익을 확보하려면 수송밀도가 4천명 미만인 구간의 요금을 2040년까지 30∼60% 인상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당국도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전문가를 모아 지역 철도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검토회의를 시작했다.

올해 여름까지 대응책을 마련해 내년도 예산요구서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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