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도보기행] 거창 문화유산 여행길을 가다
상태바
[박성기의 도보기행] 거창 문화유산 여행길을 가다
  •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26 16:1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계 정온의 고택에서 수승대까지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며칠째 자욱했던 미세먼지가 사라졌다.

이른 아침의 맑은 공기는 기분 좋은 긴장감을 준다. 전부터 가보려 했던 거창으로 향한다. 봄이 지나가기 전 꼭 가보리라 했던 곳이기에 기분이 좋아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거창은 산과 맑은 계곡의 풍광이 일품이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위천(渭川)을 따라 이어지는 위천면의 정온 고택과 수승대, 북상면의 강선대와 갈계숲 등 선비의 자취가 짙게 남아있는 곳이다. 

 

척수대(滌愁臺)에서 근심을 씻다

봄기운이 여물어 어느덧 햇볕이 따가워 그늘을 찾게 한다. 수승대 주차장을 출발해 위천을 따라가다 강을 깔고 앉은 큰 바위 척수대(滌愁臺)에 이르렀다. 척수란 근심을 씻는다는 뜻이다. 

척수대에서 바라 본 풍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척수대에서 바라 본 풍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덕유산에서 흘러내린 위천(渭川)이 척수대 벼랑을 굽이치며 깊은 소(沼)를 만들었다. 큰 바위에 앉아 숙종 때의 명의 유이태가 이곳에서 여우와 사랑에 빠졌다 해서 ‘이태 사랑바위’라고도 부른다는데 도통 사랑의 감정보다는 경치에 취할 것 같다고 실소를 한다. 

척수대의 벼랑 소나무.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척수대의 벼랑 소나무.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아래로 강을 바라보니 아찔하다. 고개를 들어 강 위를 바라보니 첩첩이 둘러싸인 모리산과 성령산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위천에 비친 나뭇가지는 본래의 모습을 뭉그려 수면에 수묵화를 그렸다. 한동안 취한 듯 바라보며 이래서 근심을 놓는 척수대인가 싶다.

서로 희롱하는 원앙.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서로 희롱하는 원앙.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능허정(凌虛亭), 헛된 명리를 비우다

아름드리 소나무길과 위천을 건너 능허정(凌虛亭)을 향한다. 봄이면 능허정 주변 위천에 가득 벚꽃으로 덮이는데 시절이 맞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강에는 원앙 한 쌍이 서로를 희롱하며 물질을 하고 있어 걷는 자의 눈길을 잡는다.

 

능허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능허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능허정에 이르렀으나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담장 밖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팔작지붕에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난간(欄干)은 닭발 모양이다. 정자가 고아해서 옛 주인의 성품을 짐작하게 한다. 능허의 뜻이 헛된 명리를 업신여기는 것이니 선비의 도리를 말함인가. 이곳은 조선 초기 확계(蠖溪) 정옥견(鄭玉堅)이 은거하여 소일하던 곳이다. 들어서는 입구가 풀로 덮여있고 안내의 글도 보이지 않아 찾아온 후인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반구헌(反求軒), 자신을 되돌아보다

능허정을 나서서 동계 정온의 종택을 향하는 길에 대숲이 병풍처럼 뒤란을 감싼 고풍스러운 고택이 보인다. 동계 정온의 후손으로 조선 헌종 때 영양 현감을 지낸 야옹 정기필(鄭夔弼)의 집인 반구헌(反求軒)이다.

반구헌의 대나무.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반구헌의 대나무.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집 뒤 대나무와 그대로 한 몸인 듯 조화롭다. 과거에는 더 번성했겠으나 지금은 본채와 사랑채만 남았다. 뒤란 대숲은 가볍게 이는 바람에도 서로 고개를 맞대고 속삭이고, 스삭거리는 댓잎 소리는 귀를 간지럽혔다.

동계(桐溪) 정온(鄭蘊)의 종택과 그의 자취

반구헌을 지나 종택(宗澤)의 솟을대문 앞에 섰다. 이 종택은 조선 중기 때 문신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이 태어난 집으로, 후손들이 순조 20년(1820)에 다시 지었다 한다. 

동계 정온 종택 소슬 대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동계 정온 종택 솟을 대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솟을대문에 걸린 편액 ‘문간공 동계 정온지문(文簡公桐溪鄭蘊之門)’을 지나 종택으로 들어섰다. ‘ㄱ’자형 사랑채가 눈앞에 들어온다. 사랑채를 지나 안쪽으로 돌아가니 ‘一’자형 안채가 자리하였다. 안채 오른쪽으로 아래채, 왼쪽에 곳간채가 있다. 안채의 뒤에는 정온을 모신 사당 등 사대부 종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동계 정온 종택 사랑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동계 정온 종택 사랑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이 집의 특징을 설명해 놓은 글에 따르면 안채는 거창의 기후에 맞게 추위에 잘 견딜 수 있는 북부지방의 겹집 모습과 따뜻한 남부지방의 특징인 높은 툇마루를 두어 두 지역의 특징적인 요소를 잘 조화시키고 있다고 해서 살펴보니 비전문가인 나의 눈에도 집의 특징이 보인다. 

쉬엄쉬엄 쉬어 가는 지석정(支石亭)

종택을 나와 동계 정온 선생이 모리재를 오가며 쉬었던 지석정에 도달했다. 지석정은 길옆으로 작은 동산처럼 솟은 곳에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고고히 서 있고 바로 옆엔 큰 바위가 겹쳐서 놓여있다. 오르기 좋게 놓인 돌을 밟고 지석정에 올랐다. 몇 사람이 앉아 시도 읊고 담소도 나눌만한 자리가 있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석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지석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소나무가 그늘을 주고 바위에 앉아 쉴만한 곳이니 정온 선생이 모리재를 오르다 자주 들렀겠다. 뒤편 바위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희미하게 새겨있어 이곳을 지나던 선비들이 공명심에서 남겨 놓은 게 아닌지...

지석정을 돌아나오다 만난 물위에 떨어진 진달래.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지석정을 돌아나오다 만난 물위에 떨어진 진달래.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지석정을 내려와 작은 동산을 돌아가는데 주위를 흐르던 개울물에 산산이 떨어진 진달래 꽃잎이 지나는 걷는 자의 마음을 붉게 물들인다. 지석정을 뒤로 두고 길을 따라 말목고개로 향했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킨 농산리 석조여래입상(石彫如來立像)

여름은 이르지만 벌써 햇볕이 뜨겁다. 말목재 터널을 지나 고개를 넘어 내려가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1436호]을 만난다. 불꽃무늬의 광배(光背)와 연꽃 모양의 대좌(臺座)를 갖춘 통일신라시대의 돌부처가 서 있다.

농산리 석가여래입상.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농산리 석가여래입상.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본디의 제 자리의 바위에서 만들어지고, 1300여 년을 한 곳에서 오랜 세월 있다 보니 거무튀튀하게 채색되어, 시간의 풍상을 간직한 돌부처의 모습에 숙연해진다. 그러나 오랜 시간은 부처의 손이나 광배 등의 파손을 막을 수 없어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강선대(降仙臺), 신선이 내려와 경치를 즐기다

능산리 돌부처님을 뒤로하고 금원산(金猿山) 북쪽 끝자락에 있는 강선대에 이르렀다. 모리재 초입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한자로 ‘降仙臺(강선대)’라고 음각되어 있다. 마땅히 강 옆 거대한 바위 강선대에 신선들이 내려와 이 경치를 즐겼으리라. 

강선대.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강선대.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월성계곡을 따라 흘러 내려온 위천은 거세게 바위를 때리며 하얀 포말(泡沫)을 뿜어냈다. 억겁의 세월 휘돌고 곡류한 거센 물줄기는 강바닥의 화강암 바위에 결을 새기고 파도 모양의 무늬를 수놓았다. 위천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모암정(帽巖亭)은 강선대와 더불어 한 폭의 산수화를 담은 것처럼 아름다워 계곡의 풍취를 더해주고 있다. 

강성대 앞 위천. 건너편에 모암정이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강성대 앞 위천. 건너편에 모암정이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모암정을 나와 정면 4칸 측면 1칸의 소박한 만월당(滿月堂)을 지난다. 만월당 정종주(鄭宗周)를 기려 1666년(현종 7)에 세운 건물로 1786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월당.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만월당.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갈계숲과 갈천마을 은진 임씨 고택

만월당을 지나 좌측으로 들어서니 갈계숲이다. 석천(石泉) 임득번(林得蕃)과 그의 아들 갈천(葛川) 임훈(林薰) 등이 시를 지으며 노닐던 곳으로 은진 임씨(恩津林氏)의 숲이다.

나무위에 새는 학이 아닌 왜가리였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나무위에 큰 새는 학이 아닌 왜가리 였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청학교(靑鶴橋)를 건너자 나무 위에 학인 듯 싶은 큰 새들이 머리를 파묻고 있는 게 보인다. 자세히 바라보니 왜가리다. 다리 이름에서 학을 연상했나 보다. 

갈계 숲.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갈계 숲.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갈계숲을 따라 들어가니 가선정(駕仙亭)과 도계정(道溪亭), 병암정(屛巖亭)과 신도비 등이 소나무, 느티나무 등과 어울려 풍경이 빼어나다. 숲의 좌우로 흐르는 소정천은 본디 한 줄기인데 숲에 이르러 동서로 나뉘어 흐르니 갈계숲은 자연적으로 아름다운 섬이 되었다. 소나무 아래엔 노란 산괴불주머니가 고개를 바짝 들고 서로를 뽐내고 있다.

산괴불주머니.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산괴불주머니.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숲을 나오면 갈계마을로 500여 년 된 은진 임씨(恩津林氏) 집성촌이다. 마을에는 오래된 옛집들이 보인다. 갈계리 임씨 고가(林氏古家)와 서간소루(西澗小樓, 임승신(林承信)이 학문을 닦던 곳)의 푯말을 보고 찾아 들어갔다.

서간소루.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서간소루.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사대부의 위세를 자랑했을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서간소루와 사당, 대문채, 협문 등이 있다. 돌 위에 흙을 놓아 자연스럽게 어울린 담장은 예스럽다. 담장 밑으로 노란 수선화가 서로가 같은 키 높이로 고개를 내민 모습이 화려하지 않고 담장을 닮아 소담스럽고 예쁘다. 

돌담과 노란 수선화.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돌담과 노란 수선화.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용암정(龍巖亭), 자연과 벗 삼다

갈계마을을 나와 위천을 따라 걷다 용암정(龍巖亭)에 도달했다. 길을 새로 정비하는 중이라 길 찾는데 잠깐 지체를 했다. 용암 임석형(1751~1816)이 바위 위에다 지은 정자이다.

용암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용암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난간에 올라 강을 바라보니 계곡이 화강암 암반이라 물이 바위 위를 미끄러지듯이 흘러내린다. 물 위로 드리운 꽃 한 송이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하여 마음을 졸인다.

정자에는 편액이 동서남북으로 붙어있는데 용암정(龍巖亭), 반선헌(伴仙軒), 청원문(聽猿門), 환학란(喚鶴欄)이 걸려있어 이상 세계에 살고픈 초탈한 선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용암정에서 수승대 가는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용암정에서 수승대 가는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수승대(搜勝臺), 천하제일의 산수화

용암정을 나와 위천을 따라 수승대로 향한다. 수승대 가는 길은 위천 옆 산자락 데크길이어서 걷기에 편하다. 많은 전설을 간직했을 길을 따라 2킬로 남짓 강을 옆으로 쳐다보며 내려간다 

수승대 풍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수승대 풍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갈수록 강폭은 넓어지고 강바닥엔 크고 작은 바위가 기묘하고 다양한 모양으로 가득하다. 오랜 기간 강물이 바위를 때리고 휘돌면서 다양한 모양새를 만들었을 터다.

멀리 조그맣게 거북바위(龜淵岩)가 보인다. 거북바위는 수승대의 또 다른 이름이다. 거북바위 건너편 요수정과 관수루, 구연서원을 합하여 넓게 수승대 지역으로 부른다. 

거북바위에 앞에 이르자 위천물이 모여든 구연(龜淵)이 거북바위를 떠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거북바위로 가까이 보기 위해 구연교(龜淵橋)를 건너니 평평하고 너른 암반이 있는데, 물이 흐르는 곳에 ‘세필짐(洗筆㴨)’, 물이 고이는 곳엔 ‘연반석(硯磐石)’이란 글이 새겨 있어 이곳에 글을 짓고 시를 읊으며 시간을 보내던 조선의 선비들을 생각케 한다. 

수승대와 음각된 퇴계 이황의 명명시.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거북바위에 음각돼 있는 수승대와 퇴계 이황의 명명시.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거북바위에는 큰 글씨로 ‘수승대(搜勝臺)’가 음각되어 있고, 바로 아래 ‘퇴계명명지대(退溪命名之臺)’란 시가 있어 수승대의 이름 유래를 유추할 수 있다. 이곳의 본디 이름이 수송대(愁送臺)인데 퇴계 선생이 요수 신권(樂水 愼權)에게 명명시(命名詩)를 보내면서 수승대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이후 이 시에 대한 갈천 임훈(葛川 林薰)의 화답 시 ‘갈천장구지대(葛川杖廐之臺)’와 뒤따르는 선비들의 화답 글과 시로 수승대 바위 사방으로 가득하게 된 것이다.

수승대는 요수정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거북이 모양이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수승대는 요수정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거북이 모양이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거북바위를 사이에 두고 위천 양옆으로 요수정(樂水亭)과 관수루(觀水樓)가 마주하고 있는데, 둘 다 요수 신권이 세웠다.

요수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요수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특히 구연서원(龜淵書院)의 문루(門樓)인 관수루는 큰 바위를 밟고 올라 2층 누각으로 올라가게 했다. 따로 계단을 놓은 게 아니라 자연의 지형을 이용하여 오를 수 있게 하여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멋과 운치를 제대로 표현하였다. 

관수루. 오른쪽 바위를 따라 루각에 오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관수루. 오른쪽 바위를 따라 누각에 오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관수루에 올라 요수정과 수승대를 바라보니 아침부터 걸어온 길이 벅차게 떠오른다. 동계 선생의 고택에서 시작하여 은진 임씨의 갈계숲과 종택, 그리고 위천의 멋진 풍광에 같이 자리한 용암정, 수승대의 절경과 용수정과 관수루를 관상했다.

위천의 아름다운 산수에 조선 선비의 배움의 흔적이 어우러진 멋진 길 이곳은 거창이다. 수승대에 대한 퇴계의 ‘명명시(命名詩)’로 오늘의 일정을 마감한다.

퇴계명명지대(退溪命名之臺)   -퇴계 이황

수승(搜勝)이라 새롭게 이름을 바꾸니          搜勝名新換
봄을 맞는 경치는 더욱 아름다우리.            逢春景益佳
먼 숲의 꽃들은 피려 하는데                  遠林花欲動
응달진 골짜기에 잔설이 남아있구나.           陰壑雪猶埋
나의 눈은 수승대를 자꾸만 쏠려              未寓搜尋眼
수승을 그리는 마음 더욱 간절하다            惟增想像懷
언젠가 한 동이 술을 가지고                  他年一樽酒
큰 붓으로 수승에 깃든 구름을 그리려 하네     巨筆寫雲崖

거창 문화유산길 탐방 코스(14km) : 수승대주창장~이태사랑바위(척수대)~능허정~반구헌~동계 정온 종택~지석정~말목재~농산리 석조여래입상~강선대~만월당~갈계숲~갈계마을~용암정~수승대~관수루~수승대주차장  

● 박성기 도보여행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이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휴일이 되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30년째 걷고 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자의 기쁨'이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푸른숲 2022-05-27 08:36:23
멋진 거창길 소개 잘 읽었습니다.
같이 걸은 듯 사진과 설명이 훌륭하네요.

우형택 2022-05-26 21:48:42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