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고 일어나면 '횡령 사건'...솜방망이 처벌로는 근절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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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자고 일어나면 '횡령 사건'...솜방망이 처벌로는 근절 안돼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5.17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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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감시·통제 강화해야
'내부관리시스템 강화'...재계·당국·정치권 머리 맞대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고 일어나면 경제·사회면에 상장 기업의 횡령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가히 '대횡령의 시대'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새해 들어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연이어 횡령 사건이 터졌다. 오스템임플란트 소속 직원이 회삿돈 2215억원을 빼돌려 주식투자, 금, 부동산 구매에 나섰고, 계양전기에선 245억원의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났다. 이번엔 4대 시중은행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우리은행에서 6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내부 직원의 일탈이 문제였다. 차장급 직원인 A씨는 과거 대우일렉트로닉스 입찰 당시 보관하고 있던 계약금 일부를 빼돌렸다. 무려 10년간 600억원이 넘는 돈을 사유화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은행 내부 통제 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셈이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신한은행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부산의 한 영업점 직원이 시재금(고객 예금을 대출하고 금고 안에 남은 돈) 2억원 상당을 빼돌렸다. 

그리고 17일 아모레퍼시픽에서도 횡령 소식이 들려왔다. 일부 직원이 30억원 규모의 회삿돈을 횡령해 가상 자산 투자와 불법 도박 등에 쓴 것으로 확인됐다.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영업 담당 직원 3명이 거래처에 상품을 공급한 뒤 대금을 빼돌리거나 허위 견적서 또는 세금 계산서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회삿돈을 횡령했다. 상품권 현금화 등 편법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앞서 색조 화장품 기업으로 유명한 클리오에서도 직원 횡령 사건이 벌어졌다. 40대 과장급 직원인 B씨는 지난해 초부터 올해 초까지 홈쇼핑 화장품 판매업체로부터 받은 매출액 일부를 자신의 통장으로 빼돌려 18억9000만원가량을 개인적 용도로 썼다. 횡령한 돈은 이미 인터넷 도박 등에 탕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이어 터진 대기업에서의 횡령사건으로 인해 내부 감독 및 통제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연이어 터진 대기업에서의 횡령사건으로 인해 내부 감독 및 통제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들 횡령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돈을 관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실한 내부 관리 시스템을 악용해 자금을 빼돌려 한탕주의와 쾌락에 빠졌다는 점이다. 

연이은 횡령 사고에 처벌을 강화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처벌만 강화한다면 횡령 범죄가 사라질까. 현행 형법상 양형기준은 횡령액 5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까지는 기본 징역 4~7년(가중시 5~8년), 횡령액 300억원 이상일 경우 기본 5~8년(가중시 7~11년)이다. 수백억원을 횡령한 다음 '몇 년 살고 나와 숨겨 둔 돈으로 호의호식하면 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미소 짓고 있는 고양이 모습. 사진=연합뉴스

처벌 강화 못지 않게 중요한 건 허울 뿐인 내부감시 시스템 강화다. 단적으로 우리은행의 경우를 보자. 우리은행이 2020년 펴낸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내부통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 내 소위원회로 '내부통제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수년 간 지속된 횡령을 막지는 못했다. 삼정KPMG에 따르면 내부회계관리제도 부적정 감사 의견 중 자금통제 미비로 인한 비율이 2019년 14.4%, 2020년 12.4%로 나타났다. 자금 횡령이나 유용 등을 막을 기업 내부 장치가 부족하단 얘기다.  

내부 감시 시스템 강화를 위한 당국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지배구조와 회계가 불투명한 회사가 어떻게 상장심사를 통과하고 시장감시를 피해 장기간 회계장부 조작이 가능했는지 금융 당국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 개인의 '도덕성'에 맡긴 현재의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회 역시 내부통제 기준을 위반한 임직원의 제재 및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해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관리 소홀로 인한 피해를 개인 투자자들에게 전가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더 큰 사고, 더 큰 시스템 붕괴가 있기 전에 바닥부터 점검하고 고쳐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같은 '대횡령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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