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옥자』…미자는 봉준호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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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미자는 봉준호 감독이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7.30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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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얘기하자. 이게 무슨 예술작품이냐. 누군가는 판타지라고 했다. 이런 환상을 겪어본 사람도 있나. 돼지와 뒹굴며, 돼지의 권리(豚權), 돼지의 생명을 존중하자는 것이다. 극단적인 동물애호단체를 등장시켜, 국제적인 기업을 가상공간에 끌어들여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느꼈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보려고 했던 영화가 매진되는 바람에 시간도 때울 겸, 워낙 광고를 많이 해대는 『옥자(Okja)』를 보았다. 집에서 케이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시커먼 돼지가 튀어 나온다. 영화 ‘옥자’ 광고다. 눈에 띠는 모든 곳에서 광고를 해대니, 그 영화가 뭔 내용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망이었다.

 

스토리는 그저 그렇다.

거대 글로벌 기업 미란도의 CEO 루시 미란도는 환경친화적인 기업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마케팅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탐욕의 자본가 루시는 동물학자 죠니 윌콕스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슈퍼돼지 프로젝트다.

화면이 바뀌어,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는 10년간 집채 만한 돼지 옥자와 함께 자라면서 친구이자 가족으로 평화롭게 생활한다. 옥자라는 이름의 돼지는 미란도 그룹이 추진해온 프로젝트의 소산이다.

어느 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의 직원들이 나타나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고,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미자는 무작정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여정에 나선다.

그 뒤의 스토리는 영화적 기교에 불과하다. 대형 트럭에 돼지를 싣는 모습, 돼지가 탈출해 도심을 휘젖고 다니는 모습, 미국으로 건나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컨테스트를 하는 모습. 돈 좀 들인 영화이긴 한 것 같다.

 

▲ 영화 '옥자'의 포스터 /영화사이트

 

옥자는 미국 인터넷 방송회사인 넷플릭스(Netflix)가 만든 영화다. 미국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케이블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보는 트렌드가 형성됐는데, 이를 주도한 회사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그간 다른 회사의 영상을 가져다가 상영하다가 자체 작품을 만들 필요를 인식하고 봉준호 감독에게 작품을 맡겨 옥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옥자는 미국산 영화다. 미국 기업 넷플릭스가 돈을 대고, 한국 감독이 찍은 영화다. 무역거래를 하는 상품처럼 굳이 원산지 표시를 하자면 ‘한국에서 생산된 미국 제품’인 것이다. 한국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한 영화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영화 옥자는 내용보다는 생산 방식에 더 많은 관심이 모아진다. 돼지가 미국 미란도 그룹의 소유이듯, 영화 옥자도 미국의 것이다. 미자가 따라가서 내 것이라고 주장해도 돈을 버는 것은 미란도 그룹이듯, 이 영화로 돈을 버는 회사도 넷플릭스다.

옥자는 넷플릭스였고, 미자는 봉준호 감독이었다.

영화 옥자는 컨텐츠시장의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와 방송 컨텐츠가 그동안 특정 국가내에서 그 나라의 자본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었는데, ‘옥자’에서는 미국의 자본이 들어와 국내 감독과 한미 양국의 배우가 출연했다. 국경없는 컨텐츠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옥자’가 보여준다. 미국산 돼지가 강원도에서 길러져 미국에 가서 컨테스트를 벌이는 영화의 내용이 영화 생산 그 자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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