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비밀정원, 백사실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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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비밀정원, 백사실 계곡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7.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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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항복의 별장터…도룡뇽과 맹꽁이가 서식하는 청정지역

 

서울 한복판에 비밀정원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서울 종로구 창의문(자하문) 일대는 박정희 정권 때 쳐놓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인해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집이 허물어져도 고치지 못했고, 빈 땅이 있어도 새 집을 짓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서울 도심에 강원도 어느 산간마을과 같은 오지 마을이 형성돼 있다.

그 규제가 수십년 지나 도시인들에게 큰 복으로 돌아왔다. 도심 한가운데 산촌 마을의 깨끗한 자연을 맛볼수 있는 곳이 아직 남아 있다는게 신기하다. 바로 백사실 계곡이다. 행정구역은 종로구 부암동.

백사(白沙)는 조선 중기의 문인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호다. 우리에겐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이름이다. ‘오성(鰲城)’은 오성부원군 이항복이고 ‘한음(漢陰)’은 한원부원군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이다.

이항복의 별장 터가 이 곳에 있었다고 추정되면서 예로부터 이 계곡을 ‘백사실 계곡’이라고 불렀다. 인공적으로 꾸며 놓은 연못이 있고 그 옆에 정자의 기둥으로 사용되었을 주춧돌이 땅에 박혀 있다. 주춧돌을 토대로 그림을 그려보면 작은 한옥 한 채가 그려진다. 옛사람들은 이 곳을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불렀다. ‘백석’은 ‘백악(白岳)’ 즉 ‘북악산’을 말한다. 그러니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이란 뜻이다. 경치좋은 곳에 지정하는 명승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다.

 

▲ 이항복 집터의 연못 /사진=김인영
▲ 이항복의 별장터로 알려진 곳. 주툿돌만 남아있다. /사진=김인영

 

이항복은 해학과 기지가 뛰어난 인물이다. 그래서 어린이용 책자에 ‘오성과 한음’을 짝지어 소개된다.

그의 장인은 임진왜란때 도원수 권율(權慄)이었다. 이항복이 어렸을 때 집에서 자라던 감나무 가지가 이웃 권율 대감집으로 휘어지자, 권율은 자기네 것이라며 감을 따먹었다. 그러자 이항복은 권율의 방문에 주먹을 찔러 넣고 “그럼 이 주먹은 누구 것입니까” 추궁했고, 결국 권율에게서 미안하다는 승복을 얻어냈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는 알수 없지만 권율은 그에게 딸을 주어 사위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

또 친구인 한음 이덕형과의 우정에서 나온 우스갯소리도 있다. 어느날, 이항복이 전염병으로 몰살한 일가족의 염습을 이덕형에게서 부탁받고 혼자 그 집에 갔는데, 갑자기 시체가 일어나 볼을 쥐어박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다. 알고보니 이덕형의 장난이었다.

이항복은 이런 기지와 해학이 있었기에 풍류를 즐길줄 알았고, 이 백석계곡에 정자를 지어 벗들과 정담을 나눌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 /그래픽=김인영

 

최근에는 이 백사실 계곡에 도룡뇽과 맹꽁이들이 집단서식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만큼 청정계곡인 것이다.

이 곳을 가는 길은 쉽다. 세검정에서 올라오는 방법과 부암동에서 가는 길이 있다.

세검정에서 세검정 성당을 지나면 작은 야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야산에 비밀 정원이 숨어 있다. 조금 지나면 부처바위(佛岩)가 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땅 속에 뭍혀 있던 것을 주민들이 꺼내 세워둔 것이라 한다. 부처 바위를 지나 골목길을 따라 100여m를 가면 작은 폭포가 나온다. 그 골목을 오르면 현통사라는 절이 나오고 곧이어 백사실 계곡을 볼수 있다.

 

▲ 커피르린스 1호점 '산모퉁이' /사진=김인영

 

부암동에서 가는 길도 아기자기하다. 가벼운 오르막길을 산책삼아 가다보면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배경이 된 ‘산모퉁이’라는 커피숍이 나온다. 거의 정상 부근이라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암동 풍경이 넉넉하다.

그곳에서 커피 한잔하고 내려가면 백사실 계곡을 만날 수 있다. 쩌든 도시 생활을 피해 잠시나마 편안한 마음으로 걷기 좋은 코스다.

 

▲ /커피프린스 1호점 '산모퉁이'에서 내려다 본 평창동. /사진=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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