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속이론③] 좌파 대부의 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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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속이론③] 좌파 대부의 변절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7.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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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남미 종속이론의 대부였던 카르도수 대통령, 신자유 이론 도입

 

1999년 취재차 브라질을 방문한 적이 있다.

상파울루에서 북서쪽으로 100km 떨어진 곳에는 미국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제너럴 모터스(GM)의 자동차 조립공장이 있었다. 초현대식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이 공장은 하루에 23시간 15분 동안 가동되고 있었지만,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공장 주차장은 부유해진 직원들이 저마다 자동차를 끌고 나오는 바람에 비좁을 지경이었다.

상파울루에서 리우데자네이루에 이르기까지의 대서양 연안에는 미국의 GM, 크라이슬러, 포드를 비롯, 독일 폴크스바겐, 프랑스 르노, 일본 도요타, 혼다등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들이 현지공장을 세웠다. 대부분이 1990년대에 세워진 것들이다.

1987년 치욕적인 모라토리엄(대외지불유예)을 선언했던 브라질은 1995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에 따른 도미노 효과의 파장도 이겨냈다. 경제가 안정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브라질을 대거 찾아왔고, 이제 브라질은 국제 모터쇼를 연상할 정도로 선진국 자동차회사들이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국가로 부상했다.

남미국가들은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고물가, 고실업율, 저성장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나라로 인식됐다. 특히 같은 라틴계인 멕시코가 지난 95년 페소화 폭락으로 침체하자 연쇄적으로 경제붕괴 현상에 직면했다. 남미 국가들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선진국 자본과의 대결에서 얻을게 없다는 것을 배웠고, 과감한 경제개방 조치로 난국을 돌파했다. 1997년말에 아시아 경제위기의 독감이 불어닥치자 더욱 과감한 개방 조치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남미 경제의 주축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세계 신흥국 시장의 한쪽 귀퉁이가 흔들려도 동시에 흔들리는 불안한 구조를 노출했고, 국내 빈부 격차가 커지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헤알 개혁

 

브라질은 1993년과 94년에 연간 2,000%에 이르는 가히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경제는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이를 해결한 사람은 1992년에 집권한 페르디난도 카르도수(Ferdinado Henrique Cardoso) 대통령이었다.

카르도수는 젊은 시절 종속이론가로 외국에서도 잘 알려진 학자 출신이며, 국내에서는 좌파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고생을 한 흥미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라틴아메리카의 종속과 저개발(Dependency and Underdevelopment in Latin America)’이라는 그의 저서는 제3세계 종속이론가들에겐 성경과도 같은 책이었다. 비판자들은 그의 저서가 선진국 자본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는데 그쳤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카르도수 교수는 이 책을 출간하고 좌익 이론가로서 탄압을 받아 프랑스, 칠레, 미국을 전전했다. 브라질은 1964년에서 85년까지 우익 군사독재정권의 치하에 있었다. 1979년 대사면령으로 귀국을 하게 된 카르도수는 4년후 좌익 이론가에서 중도 우익 정당의 상원의원이 됐다. 이듬해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시장경제론자이자, 개방론자로 변신했다.

한때 좌익 이론가였던 그는 브라질의 알짜배기 공기업을 해외에 매각하는데 앞장섰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정치 및 경제 개혁을 단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국제 자본에 저항하는 가장 좋은 대안으로 결국 그 논리를 수용키로 결정하는 스스로의 변절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종속이론의 대부로 하여금 변절을 하게 했을까. 그것은 브라질의 역사였다. 카르도수의 전임 대통령들은 모라토리엄을 겪으면서 선진국, 한마디로 미국에 저항했지만, 얻는 것은 가난과 살인적인 물가였다. 그는 무엇보다 인민에게 빵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자본에 저항하는 종속이론보다는 미국 자본의 시장개방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학자와 정치인의 차이일까. 카르도수는 20년전에 세웠던 자신의 이론을 과감히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을 부르짖었다. 그는 빈부 격차 해소를 주장하며, 농민과 근로계층, 좌파의 지지로 당선됐지만, 당선 후에는 보수세력과 가진 자들과 손잡고 정책을 폈다. 덕분에 그는 1997년말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로부터 라틴아메리카 최대국인 브라질 경제를 안정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정치구조를 현대화한 이유로 ‘올해의 라틴아메리카인’으로 선정됐다. 브라질 주재 미국 대사가 그를 칭송하는 글을 쓸 정도로 카르도수는 한때 그의 이론적 적이었던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가 1994년에 단행한 이른바 ‘헤알(Real) 개혁’은 물가 안정을 통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카르도수 행정부는 브라질 통화를 ‘프랑카(Franca)’에서 ‘헤알’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헤알화를 미국 달러화에 연동시켜 인플레이션 심리를 진정시키고, 고금리를 동반한 긴축정책을 실시했다. 공기업 민영화도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정부가 운영하던 항만을 민간에 불하한다는 원칙을 세워 진행했다. 연방철도공사가 운영하는 국철 6개 노선를 민간에 넘겼다.

헤알 개혁은 헤알화를 고평가함으로써 수출이 둔화되고 수입이 늘어 무역적자를 초래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헤알화의 환율은 초기에 1달러당 0.84 헤알로 상당히 높게 평가됐다. 예를 들어 구두산업의 경우 헤알 개혁 이전에 생산량의 70%가 미국으로 수출되는 효자산업이었다. 그러나 화폐가 고평가되는 바람에 중국산 구두가 가격경쟁력을 갖게 됐고, 수출 산업이 오히려 수입 산업으로 전환됐다. 1993년 740만 달러였던 중국산 구두 수입량이 95년엔 6,230만 달러로 10배 가까이 늘었으니, 구두산업이 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화폐 개혁을 통한 통화 절상으로 수출이 격감함에 따라 25개 회사가 파산했고, 5,000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건비가 싼 북부지역으로 이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대신에 수입물자 가격은 싸졌다. 미국의 의류소매점인 제이씨 페니(JC Penny)가 브라질에 상륙, 값싼 수입의류를 브라질인들에게 제공했다. 덕분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물가를 잡는데 성공했다. 1990년대초 1,000% 대를 넘던 물가는 95년 20%대로 떨어졌고, 96년엔 10%, 97년엔 6%대로 급격히 떨어졌다.

물가가 잡히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1993년 10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국인 직접투자는 95년 39억 달러, 96년 94억 달러로 불어났고, 97년엔 150억 달러로 늘어났다. GDP 성장률도 95년 2.5%에서 96년 3.3%, 97년엔 4%대를 기록했다. 직접투자에서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동차 산업이고, 세계 자동차메이커들이 투자를 마친 1999년에는 브라질 자동차 생산능력은 연산 270만대 규모에 달했다.

 

▲ 브라질 프리다난도 카르도수 전 대통령이 2009년 7월 헤알개혁 15주년을 맞아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아시아에서 몰려온 먹구름

 

브라질 경제의 급속한 안정은 1997년 하반기 아시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국제핫머니가 고평가된 헤알화를 공략하기 시작했고, 헤알화는 아시아 국가처럼 폭락할 우려가 높았다. 브라질 주가가 연일 떨어져 11월초엔 2주만에 40%나 폭락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헤알화는 1달러당 1.11 헤알로 하락했지만, 수출업자들은 달러당 1.3~1.6 헤알, 즉 30~50% 정도 절하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카르도수 정부는 헤알화 절하가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기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방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중앙은행은 헤알화 방어를 위해 수십억 달러의 보유 외환을 풀었고, 외환보유액도 50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이때 카르도수 정부는 아시아 국가들이 하지 못하는 극약처방을 채택, 시행했다. 중앙은행은 외국 자본의 이탈을 막기 위해 단기 금리를 하루아침에 두배(46%)나 올렸다. 기업들은 금리가 높다고 아우성을 쳤고, 수출확대를 위해서는 헤알화를 평가 절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쳤지만, 과거의 종속이론가는 외국 자본의 이탈을 막기 위해 긴축정책을 고집했다.

 

빈부 격차 확대

 

카르도수는 “인기를 위해 긴축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우선 정부 스스로가 모범을 보였다. 1998년 11월 카르도수 행정부는 50여개 항목의 긴축조치를 발표했다. 공무원 수를 10% 줄이고, 공기업과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를 줄이며, 공무원의 봉급을 깎는 것 등이었다. 정부 스스로가 모범을 보임으로써 180억 달러의 예산을 절감함으로써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세금을 290억 달러나 늘려 부담을 늘림으로써 그 설득도 반감됐다.

자유주의자로 돌아선 카르도수는 수입 물자 가격을 떨어뜨려 물가를 잡고, 외국 자본을 유치, 국가 파산을 막았지만, 빈민층을 양산했다.

브라질의 경제연구단체인 IBGE의 조사에 따르면 상위 부유층 20%가 국가 전체 부의 60%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하위 20%는 2%밖에 소유치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의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빈민층이 전체 국민의 4분의1에 이르렀다.

종속이론은 제국주의 자본에 의해 제3세계 인민들이 가난에 빠지게 되고, 이의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브라질은 종속 이론가들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경제 여건이다.

브라질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중 색다른 것은 무토지 빈민의 문제다.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리아등 대도시 주변 빈땅에는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밀려와 천막을 치고 살고 있다. 토지 주인들은 한번도 경작하지 않으면서도 땅을 점거한 빈민들을 쫓아냈다. 그들은 갱들을 시켜 주모자를 협박했다.

무토지 빈민들은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적 생존권을 요구하고 있다”며 동물들도 땅에 살 권리가 있는데,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는 땅에 사람이 살수 없다는 것은 생존권 박탈이라며 투쟁을 벌였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거치면서 도시의 공장에서 쫓겨난 무토지 빈민들은 수백만명으로 불어났고, 헤알화 개혁과 함께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전국 279 곳, 138만 에이커의 땅이 이들 빈민들이 점거, 천막촌을 이루고 있다. 상파울루 주변의 실업율이 90년 10.2%에서 98년초 16.3%로 늘어났는데, 이들은 도시 외곽에 빈땅에 살며 브라질 경제의 방대한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다.

종속이론에서 신자유이론(neo-liberalism)으로 변절한 카르도수의 경제는 좌파세력으로부터 국제 자본에 의해 경제 주권을 빼앗기고 빈부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상파울루 외곽에는 미국의 투자회사와 렌터카회사,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들이 세운 대형 옥외 간판이 서있다. 그 밑에는 갈데 없는 빈민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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