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춘대성…왜 쌓았는지 의문이 드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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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춘대성…왜 쌓았는지 의문이 드는 성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7.1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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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보수하지 않고 방치

 

홍제천을 가다가 상명대에서 북한산을 오르다보면 얕은 능선에 성터가 발견된다. 보수한 흔적은 없다. 조선시대에 축성한 것을 그대로 두었다. 성 벽에는 나무와 풀이 성벽을 타고 어지럽게 자라고, 성을 쌓았던 돌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저 등산로일뿐이다. 능선이 가파르지는 않다. 중간중간에 암문도 남아 있다.

이 성을 왜 쌓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양도성이 있고, 북한산성이 있는데, 두 성을 연결하는 성을 굳이 쌓을 필요가 있을까. 보수한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면 문화재적 가치가 크게 없다는 판단이 서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은 등산객들을 위한 길을 제공해줄 뿐이다. 능선을 따라 가면 북한산의 한 봉우리인 향로봉이고, 비봉으로 연결된다. 성의 끝이 어디인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성을 쌓다가 말은 것처럼 보인다. 한참 오르다보면 바위다. 험준한 산세를 자연방어벽으로 활용한 셈이다.

 

▲ 위치도

 

이 성의 이름이 탕춘대성(蕩春臺城)이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33호.

숙종 37년(1711년)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도성 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북한산성을 축성한후 44년(1715년)에 탕춘대성을 축조했다고 한다.

탕춘대성을 축조하는 문제로 조정에서 찬반 양론이 있었다고 한다.

찬성론자들은 북한산이 신라 이래 전략적 요충지였고,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수도 방위의 망을 촘촘히 하기 위해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방어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반대론자들은 산성과 도성 사이의 방어선을 형성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으며, 병력 또한 모자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탕춘대성을 축성하자는 의견이 우세해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에 일단 마무리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탕춘대성의 출발점은 창의문이었다. 창의문은 인왕산과 북악산이 만나는 지점에 만든 도성의 소문이다. 이 곳에서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돌 담(wall)을 쌓은 것이다.

탕춘대성이라고 불리운 것은 현재 세검정 동쪽 100m 되는 지점에 연산군이 지어 풍류를 즐렸다는 탕춘대라는 정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 탕춘대에서 바라본 서울 /사진=김인영

 

성을 쌓은 후 동쪽(성내)에 군사훈련장을 짓고, 총융청(摠戎廳)의 군량미 창고(상창)와 선혜청의 대동미를 보관하는 창고(하창)을 지었는데, 이 두곳의 창고를 평창(平倉)이라고 했다. 평창동의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탕춘대성을 쌓았으니, 성문을 하나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만든 성문이 홍지문(弘智門)이다. 홍지문 옆으로는 수구(水口)가 다섯 군데 뚫린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이 이어진다. 홍지문과 수문은 1921년 홍수로 유실되었다가 1977년 복원되었다.

 

▲ 탕춘대성 흔적 /사진=김인영
▲ 암문 /사진=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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