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피서지에서 생긴 일②…동행자의 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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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피서지에서 생긴 일②…동행자의 화상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7.0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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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로부터의 후송길, 프랑스에서 구급헬기까지 요청해 보았다

 

[조병수 프라랜서] 제네바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레만(Leman)호수 쪽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먹구름과 비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호숫가에서는 사람이 서서 사진을 찍기도 힘들 정도였다. 무성(無聲)영화시대 영국의 전설적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이 그의 마지막 25년간을 살았다는 휴양도시 브베이(Vevey)에서, 『레만호에 지다』라는 TV특집극 제목을 떠올리며 그 호수의 운치를 느껴보고 싶었지만 변덕스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 휴양도시 브베이(Vevey)에서 본 Leman호 /사진=조병수

 

그렇게 그날의 일정을 마치고 제네바의 호텔에 투숙했다. 다음날 아침이면 그 친구는 런던으로 돌아가고, 나는 이태리 쪽으로 며칠 더 돌다가 가게 된다. 이제는 따라오는 차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조금은 홀가분해지는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친구가 이틀간의의 긴 여로(旅路)를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떠나는 날 아침은 각자 방안에서 간단하게 요기라도 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호텔은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우리가 가져간 소형 전기밥솥이나 전기기구들을 사용하지 못하는 콘센트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옆방 친구에게 아침식사 문제를 상의하러 문을 두드렸더니, 그 친구가 얼굴과 손에 화상(火傷)을 입고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중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어린아이 우유라도 타서 먹이려고 세면실에서 휴대용 버너를 사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누출된 약간의 가스가 순간적으로 불이 확 붙었다가 꺼진 모양이었다. 다행히 세면실 내부가 타일로 되어있어서 별 일은 없었지만, 문제는 그 친구의 화상이었다.
가족들은 호텔에 남겨두고 그 친구를 제네바 시내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병원에서 응급조치들을 하면서 신원확인과 담보(deposit)를 요구하길래, 여권과 주머니에 있던 여행경비를 다 꺼내서 맡겼다.


얼굴과 두 손에 연고를 바른 후 붕대를 동여매는 응급조치가 끝나자 경과를 봐야 한다며 입원을 하라는데, 이제는 이 친구의 직장 일이 걱정되는 상황이 되었다. 주재국 밖으로의 여행이 금지된 판국에 다른 나라 병원에 드러누워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회사 사정 때문에 이 친구가 내일까지는 런던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퇴원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담당의료진은 "그러면 비행기로 돌아가야 런던에 가서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정 퇴원을 하려거든 비행기표를 보여주어야 퇴원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퇴원이 되어야 비행기로든 기차로든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비행기가 예약되었다"고 둘러대고는 겨우 퇴원허락을 받았다.  그리고는 약간의 연고를 추가로 받아서 병원을 나오는데, 응급실에 올 때 맡겨 둔 현금을 전부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었다.
비록 같은 유럽의 런던에서 살긴 하지만 그래도 외국인인데, 그렇게 응급조치를 무료로 해주는 그 병원시스템이 의아했지만 그런 것을 따져볼 계제가 아니었다.


그 친구를 어떻게든 빨리 런던으로 보내야 2차 감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차를 여기다 세워두고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나중에 주말에 와서 다시 가져가라"고 했더니, 그 친구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차가 목요일 아침까지 런던에 가있어야 한다"고 우겼다.
"화상 때문에 출근을 못하게 될 텐데, 차가 없으면 사람들이 외국 갔다가 그렇게 된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주재국외(外) 여행금지 명령을 어긴 것이 들통이 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친구의 부인은 전혀 운전을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 상태로 자네가 운전은 할 수 있겠느냐?”고 하니까, “천천히 가면 따라갈 수는 있겠다”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친구가 직장에서 잘못되는 일은 없어야겠고, 동시에 화상에 염증이 오염되기 전에 런던으로 옮겨 놓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내 앞에 놓여진 것이다.
어쨌거나 사람은 살려놓고 봐야겠기에, 내 남은 휴가를 포기하고 같이 런던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냥 비행기를 타고 가고 차는 나중에 어떻게 하면 될 텐데, 너무 자기 생각만 한다’ 싶었다. 처음부터 내키지 않는 동반여행이었지만, 사람 살리는 일이 우선이겠기에 그런 잡념들을 물리쳤다.
그리고는 ‘나폴레옹이 이 길을 따라서 진군(進軍)했나?’라는 생각을 해가며, 앞장서서 천천히 알프스 산기슭을 지나 북상(北上)하였다. 그 친구는 상처가 당기는 고통을 무릅쓰고 붕대를 감은 손으로 자기 차를 몰며 따라왔다.
그렇게 오후 내내 프랑스의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고 있는데, 중간 중간 상태를 살펴보니 그 친구가 점점 힘들어 하고 있었다.
급기야 저녁 시간에는 상처 소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무작정 고속도로 인근에 있는 디종(Dijon) 부근의 큰 병원을 찾아갔다. 치료를 부탁하고는 다급한 마음에 "추가감염 위험이 있으니 빨리 런던으로 보내야겠다. 그러니 비행기를 탈 수 있는 파리까지 갈 수 있도록 구급 헬리콥터라도 띄워 달라"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큰 소리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 황당한 요구에 대한 병원 측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의사가 아주 정중하게 "지금 바로 띄울 수 있는 헬기가 없어서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가 아니고···.
정말 이 나라들의 의료복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물론 프랑스 디종의 그 병원에서도 응급처치비는 전혀 청구되지 않았다. 
그 당시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헬기까지 요구를 하였는지는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그 친구의 증세에 신경을 쓴데다가, 잘못하면 일생을 상처와 후유증 속에 살 것 같아서 어떻게든 조치를 해야 했었기에 그런 엉뚱한 용기가 나왔던 것 같다.

그 일이 있은 지 30여년이 흐른 어느 주일설교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자녀들이 아버지께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당당히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가 당연히 해줄 것이라고 믿고 요구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당연히 해줄 것이라 믿고 요구하자"는 취지였다.
그 당시 그 친구의 처지가 절박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런 말이 그곳에서는 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요청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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