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연대기Ⅱ] ⑥ 할리우드 vs TV 전쟁의 시작-영화 유통의 역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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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연대기Ⅱ] ⑥ 할리우드 vs TV 전쟁의 시작-영화 유통의 역사 (하)
  •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 승인 2022.03.19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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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유통망 장악...시장 독점체재 일궈
할리우드, 강력한 경쟁자 TV 만나 위기
50년 전 할리우드의 탈출해법...지금의 OTT 시대열어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오피니언뉴스=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영화가 침체기에 접어들자 세계 영화 산업의 패권은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건너온다.

에디슨과의 특허 전쟁에서 살아남은 할리우드는 영화계의 맹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가 전 세계 영화 시장을 장악해 가기 시작하며 영화 산업은 본격적인 황금 시대에 접어든다.

1920년대 이후 영화 산업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 속에 크게 자리잡는다. 비싸지 않고 합리적인 티켓 가격에 사람들은 만족했고 수익이 늘어나기 시작한 할리우드는 점점 많은 수의 영화들을 찍어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영화들이 갑자기 유통되기 시작하며 공급 과잉 현상이 생겼다. 대형 스튜디오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작만 아니라 배급 유통까지 쥐고 흔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BIG5라 불리는 대형 스튜디오 독점 시대의 시작이다.

블록부킹으로 시장을 장악하다

1930년대 고전 황금 시대라 불리던 그 시절 할리우드가 시장을 쥐고 흔든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일명 블록부킹 (Block-Booking)이라 불리는 관행이었다. 제작사는 B급 영화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극장 측에 스튜디오의 모든 영화를 구매할 것을 요구했다.

TV의 등장은 할리우드 전체에 큰 위기감을 가져다 주었다. 사진출처=medium홈페이지 캡처
TV의 등장은 할리우드 전체에 큰 위기감을 가져다 주었다. 사진출처=medium홈페이지 캡처

인기 있는 A급 영화를 구매하기 위해 인기 없는 다른 영화까지 구매를 해야 하는 블록 부킹으로 인해 제작사 입장에서는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는 일이 없었다.

극장 입장에서는 분명 불합리한 구매 조건이었지만, 극장의 소유주 대부분이 대형 스튜디오들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피해를 입는 건 독립 극장주들이었다. 유통을 독점한 블록부킹의 폐해로 문을 닫는 독립 극장주들이 늘었고, 대형 스튜디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 극장들을 싼 값에 인수했다. 

이런 횡포가 막을 내린 건 1948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 대법원의 파라마운트 판결을 통해서다. 대법원은 할리우드의 이러한 관행이 독점 금지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따라 모든 할리우드의 대형 제작사들은 해체 수순에 들어갔고, 그 동안 카르텔에 의해 유지되던 할리우드의 ‘불패전설’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B급 영화들이 점점 사라졌고, 스튜디오의 권위는 약해졌다. 전속 배우와 스탭 계약이 사라지며, 점점 배우의 몸값과 인기 있는 제작진의 고용 비용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파라마운트 판결 이후 대형 스튜디오에 의해 독점되던 할리우드에 그 동안 숨죽이며 지내던 독립 제작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영화 산업은 보다 치열한 경쟁 체재에 접어들었다.

할리우드는 흥행의 중요한 요소인 배우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배우의 캐스팅 파워에 의해 배우의 몸값이 결정되고 이는 전체 영화 산업에 있어 스타 시스템에 의한 연예 비즈니스가 할리우드 전체 권력을 장악하는 계기가 된다. 

블록부킹으로 인해 한 영화관에는 동시에 여러 영화들이 상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출처: vulture 홈페이지 캡처
블록부킹으로 인해 한 영화관에는 동시에 여러 영화들이 상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출처: vulture 홈페이지 캡처

새로운 경쟁자 TV의 등장  

종전 이후 미국의 대중 문화의 생산과 유통의 환경이 달라지게 된 것은 텔레비전의 등장이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많은 청년들은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으며 베이비 붐이 일어났다.

청년들은 집 값이 비싼 도심지역을 벗어나 교외의 많은 주택 단지로 향했고, 아이젠하워가 추진한 교외 지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은 이러한 도심 탈출에 큰 역할을 했다. 교외화 된 지역은 집들만 있는 황량하고 매우 심심한 곳이었다.

사람들의 유일한 엔터테인먼트는 텔레비전이었다. 이 시점부터 새로운 미국 가정의 모습은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발전되었다. 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지켜보던 할리우드는 치명적인 경쟁자가 탄생했음을 깨달았다.

처음 TV를 사는 건 큰 비용이었지만 한 번만 비용을 지불하면 TV는 무료였고, 3개의 방송국이 있었다. 이들이 매일 제공하는 다양한 TV 프로그램은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다. 할리우드는 충격에 휩싸였다. TV가 할리우드를 곧 망하게 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제임스 딘은 할리우드가 TV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아이콘 같은 존재였다

할리우드는 살아남기 위해 TV 산업과의 차별성을 모색한다. 먼저 영화 콘텐츠의 블록버스터화(化)를 지향했다. 당시 TV 방송국은 할리우드와 같은 예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제임스 딘은 할리우드가 TV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아이콘 같은 존재였다. 사진=위키피디아
제임스 딘은 할리우드가 TV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아이콘 같은 존재였다. 사진=위키피디아

할리우드는 관객을 열광시킬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가 TV로 몰린 사람들을 다시 영화관으로 불러올 방책이라 생각했다. 할리우드가 살아남기 위해 채택한 두 번째 방법은 10대들을 노린 것이다.

TV 앞에서 10대들은 자신들의 채널 주도권을 가질 수 없었다. 할리우드는 제임스 딘으로 대표되는 10대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향후 이어질 TV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0대들은 영화관을 약속 장소와 문화 공간으로 삼았고, 영화관에서의 데이트는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 되었다. 할리우드의 이러한 틈새 시장의 공략은 성공적이었다.

만일 이 시기 10대들을 잡지 않았다면 영화 산업은 TV에 주도권을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TV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제공하자는 전략은 주효했다. TV가 보편적인 사회 윤리를 지향하며 검열의 수준을 높이자, 영화는 반대로 이를 파고드는 주제를 선택했다.

TV에서는 볼 수 없는 자극적인 내용들로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하자, 영상 콘텐츠 산업은 어느 한 쪽이 몰락하는 일이 없이 TV와 영화가 양분하는 형태로 공존하게 되었다. 이는 TV와 영화는 상호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찾아냈으며, 이는 현대 대중 문화에 있어 비슷한 두 산업이 성공적으로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키며 지금의 콘텐츠 시장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의미한다.

당시 영화 시장이 TV에 잘 대처하지 못했다면 영화는 아마도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흥미로운 점은 60년 전의 이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사뭇 비슷하다는 점이다.

새로운 미디어 공룡 OTT에 대해 과연 50년 전 TV와 영화가 보여 준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최후의 승자만 남아 모든 것을 독식하는 상황이 될지 현재 진행형인 지금의 시장 상황을 50년 전의 과거에 대비시켜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문동열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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