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방미의 데자뷰…반복하는 역사의 수레
상태바
문 대통령 방미의 데자뷰…반복하는 역사의 수레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6.29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4년전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때와 비슷한 상황…국가 이익을 위한 발언도 같아

 

“53년전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 이 자리가 아니라 정치범 수용소에서 있을지 모릅니다. 미국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 방미시 발언)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 방미시 발언)

 

데자뷰(deja vu)랄까, 기시감(旣視感)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서 무슨 발언을 할까를 예상하면서 14년전 노무현 대통령의 첫 방미시 발언을 찾아 보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발언을 하겠지,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비슷한 문맥의 발언이 나와 새삼 놀랐다. 세상은 돌고 돈다고 했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친구 사이이자 정치적 동지이고, 한국에서 진보정권을 수립한 대통령이다. 14년의 시차를 두고 두 대통령은 어찌 그리 비슷한 길을 걷고 있을까.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8일 방미길에 오르기 앞서 환송인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노무현과 문재인 정부의 출발점은 비슷했다.

첫째 촛불 시위에 힘입어 정권을 잡았다는 점, 둘째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었다는 점, 셋째 재벌 개혁등 경제사회에 구조적 변화를 추진했다는 점을 들수 있다. 또 한가지, 미국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고, 한국에 진보 정권이 들어선 상황도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말 어린 여학생 미선·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죽은 안타까운 사건으로 전국적으로 촛불집회가 확산되는 분위기를 타고 당선됐다. 반미 여론이 비등한 시점에서 노무현 후보는 선거 유세에서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주장했다. 그는 외교정책으로 ‘균형자론’을 펼쳤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다는 일종의 등거리 외교론이었다.

또 노무현 정권이 2003년 2월 출범하기 직전에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됐다. 미국 집권세력은 조지 W 부시의 공화당 정권이었다.

2002년 말 미국은 북한의 고농축우랴늄(HEU: High Enriched Uranium) 계획을 이유로 제네바 합의에 의한 중유 공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고, 북한은 12월 12일 핵동결을 해제하고 핵시설 가동과 건설을 즉각 재개하겠다며 맞대응 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미국은 대북 압박을 강화했고,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추방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 등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면서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에 전경련과 대결자세를 보이는 가운데 노동단체를 찾아가 “경제계와 노동계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 잡겠다”며 친노동적 입장을 밝히면서 재계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취임 초기에 검찰 개혁을 비롯해 청남대 개방등 개혁과 소통의 조치를 취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집권 2개월이 다가온다. 문대통령의 상황도 노무현 때와 비슷하다.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인정하듯이 촛불 시위의 힘을 업고 탄생했다. 촛불 세력의 일부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미국과의 마찰을 예고했다. 그동안 북한은 두차례의 핵실험과 셀수 없을 정도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은 이제 핵무기를 장착한 ICBM 개발에 거의 도달한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그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미사일 방어용 무기인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문제로 미국과 불협화음을 노출하고 있다.

미국은 8년간의 민주당 정권을 끝내고 도널드 트럼프의 공화당 정권을 선택했다. 상하 양원도 공화당이 다수당을 유지했다. 이제 미국에선 보수세력이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했고, 그들의 시각으로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 골격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균형자론과 비슷하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워싱턴 DC 장진호 기념비를 둘러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홈페이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첫날, 많은 발언을 쏟아 냈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 방문에 이어 국내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기업인들께서 저를 '친노동'이라고 하는데 제가 노동변호사를 오래 했기 때문에 맞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업의 고문변호사도 오래 많이 했기에 저는 '친기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의 경제개혁에 대해 걱정도 있으실 텐데, 새 정부 경제정책을 믿으시고 더 본격적으로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려 달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보수진영의 것과 비슷하다. 그의 지지자들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후 지지자들의 댓글 공세에 시달렸다. 당시 네티즌 사이에 “노 대통령이 그럴줄 몰랐다”, “부끄럽다”는 부정적 반응과 “국가 이익을 위한 전략적 발언”이라는 긍정적 반응이 동시에 쏟아졌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있을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 사드, 무역 등 민감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발언을 국민들이 주시할 것이다. 지지자들 중에는 일부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외교의 엄중함을 볼 때 나라의 리더는 국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며, 지지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될 일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첫 방미 이후 한미 공조체제를 이어 나갔다. 미국이 주도한 걸프전에 우리 군을 파병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미국 방문에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과의 공조를 기본으로 하면서 대중국외교, 대북 관계의 방향을 정할 것으로 본다.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은 있었지만, 강경화 외무장관이 이 방향을 뒷받침할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역사의 수레는 여전히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 같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