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꿈·감동 남기고 ‘바람의 나라’로 떠난 김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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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꿈·감동 남기고 ‘바람의 나라’로 떠난 김정주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2.03.07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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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지난 1일 넥슨의 창업자 김정주 회장의 별세 소식이 들려왔다. 게임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NC소프트의 김택진 대표지만 게임업계에 최초로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인물은 김정주 넥슨 창업자다. 대다수 게임분야 창업자가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김정주 회장은 이미 1994년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게임을 산업화한 인물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어두운 오락실에서 진행되던 전자오락에서 탈피, 김정주 회장은 KAIST 대학원 동기들과 의기투합, 1996년 세계 최초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며 이름을 알렸다. ‘바람의 나라’는 PC 플랫폼 기반 온라인 게임으로 현재도 상용 서비스 중이다. 김정주와 바람의 나라에서 국내 게임산업은 스타트를 끊었다. 

비난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던 은둔의 제왕 

김정주 회장은 닌텐도 게임을 구매하기 위해 줄지어 선 일본 고객들의 모습을 보고 닌텐도를 넘어서는 글로벌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 등 수많은 메가 히트작이 나오자 서울대 및 KAIST 이공계 인력들이 모두 넥슨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게임을 산업화한 인물임에도 그는 생전 많은 비판에 시달렸다.

대부분의 게임기업이 게임개발에 주력해온 것과 달리 넥슨은 개발보다 인수합병(M&A)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비판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NC소프트가 게임개발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고 넷마블은 퍼블리싱, 모바일 게임 등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는데 노력해온 반면 넥슨은 이미 성장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인수하는데 치중한다는 것이다. 

M&A에 주력하다 보니 2011년 게임하이 인수과정에서 ‘서든어택’을 두고 CJ그룹과 갈등을 벌이기도 했으며 2015년 초엔 친구이자 호형호제 관계였던 김택진 대표와 NC소프트 경영권을 놓고 심각한 갈등과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급기야 2019년 넥슨의 매각 이슈까지 불거지며 김정주 회장의 기업가정신이 완전히 퇴보한 것 아니냐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특히 다른 기업의 CEO와 달리 전면에 나서지 않고 중요 의사결정을 배후에서 진행하는 점, 넥슨 본사를 일본에 두며 국내가 아닌 일본에 넥슨을 상장하며 파생된 다양한 이슈와 루머는 늘 그를 따라다녔다. 업계 구성원들의 비판이 존재했음에도 김정주 회장은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 못지 않게 그가 은둔의 제왕이라고 불린 이유이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사진=연합뉴스

유능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을 강조한 김정주 

워낙 두문불출하다 보니 그의 행보나 공식 인터뷰가 지난 10년간 진행되거나 알려진 적은 거의 없다. 최근 그가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지난해 3월 KAIST 이광형 신임 총장의 취임식뿐이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인수합병의 귀재라고 불리던 김정주 회장이 자신의 은사였던 이광형 총장 취임식에서 눈물을 보인 모습은 그래서 더 화제로 다가왔다. 

김정주 회장은 이광형 KAIST 총장을 향해 따뜻한 분이라고 평가하며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보금자리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언급했다. 그는 평소에도 똑똑하고 영민한 사람보다 항상 가슴 따뜻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강조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속내를 절대 드러내지 않았던 그는 학생들과의 대화 그리고 학교에서는 늘 자신의 진심을 편히 고백해왔다. 

공식적으로 언론이나 기업경영 현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그는 2011년 ‘기술벤처’라는 과목을 KAIST에서 한 학기 동안 강의하며 이공계 학생들에게 기업가정신을 가르친 적이 있다. 국내 벤처의 신화적 인물이기에 필자도 수업을 청강하며 그의 메시지를 경청했다. 특히, 그가 강조한 좋은 사람을 선발해야 한다는 얘기는 지금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김정주 회장은 지속 가능한 기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유능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우수인재보다 인품이 좋은 사람을 선발하겠다는 메시지는 결코 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유능한 사람은 언제든 좋은 조건에 따라 회사를 떠난다며 사람이 떠날 때 매우 힘들었다는 그의 당시 경험담은 별세 소식 후 결코 가볍게 와 닿지 않았다. 

김정주 회장이 M&A에 모든 역량을 기울인 것도 그가 꿈꾸는 넥슨의 미래는 닌텐도, 블리자드 같은 글로벌 게임기업이 아닌 엔터테인먼트기업 디즈니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정주 회장은 2016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디즈니랜드에 긴 줄을 서며 기다리는 아이들이 피곤해하지 않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디즈니를 넥슨의 미래상으로 제시했다.

2004년 위젯, 2008년 네오플 등의 게임기업 인수에서 벗어나 2013년부터 유아용품, 레고거래 중개앱 등 M&A의 폭을 훨씬 확대한 이유도 넥슨의 미래전략은 게임이 아닌 종합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구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1년 KAIST 수업에서도 디즈니같이 꿈과 감동의 기업이 되기 위해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 꿈은 끝내 미래시제로 남게 되었다. 

꿈과 감동을 남기고 바람의 나라로 떠나다

별세 소식 후, M&A로 인해 그와 갈등 및 대립을 겪었던 김택진 NC소프트 대표, 방준혁 넷마블 의장 또한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다. 꿈과 감동을 남긴 개척자라는 평가가 동료 CEO들로부터 이어졌다. 그가 남긴 게임은 게임을 즐겼던 이들에게 여전히 꿈과 감동으로 기억되고 있다. 넥슨은 디즈니가 되지는 못했지만 꿈과 감동까지 주지 못한 건 아니었다.

김정주 회장은 아이들과 부모에게 꿈과 감동을 주는 기업이 가장 위대한 기업이라고 강조해왔다. 이제 그 꿈을 넥슨 그리고 국내 수많은 콘텐츠, 게임기업들이 실현해야 한다. 예비 창업자 그리고 기업가들에게 정량적인 매출액, 영업이익 창출을 강조하기보다 꿈과 감동 등 정성적인 가치 창출을 강조한 그의 메시지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재평가될 것이다. 

꿈과 감동을 남기고 바람의 나라로 떠났다는 평가는 그의 추모공간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으며 올 2월 '2022년 한국경영학회 학술상' 시상식에서 'K-Management 혁신논문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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