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연대기 II] ⑤ 에디슨이 만든 영화 특허괴물 MPPC의 등장...영화 유통의 역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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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연대기 II] ⑤ 에디슨이 만든 영화 특허괴물 MPPC의 등장...영화 유통의 역사 (중)
  •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 승인 2022.02.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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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디슨, 특허 괴물 MPPC를 통해 미국 영화 산업을 독점
반 에디슨 진영의 해방구, 할리우드
7년 만 해체된 MPPC이후...또 다른 독점 괴물 만든 할리우드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어떤 산업이든 산업이 형성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도 기업이 존재하게 되어 있다.

선도 기업의 진정한 역할은 그 산업을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하는 것에 있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산업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대 인터넷 기술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WWW(월드 와이드 웹)'의 확산에는 초기 이 기술들을 공개로 풀었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통큰’ 결단이 있었다.

만일 당시 누군가가 이 기술을 독점하여 사유화를 했다면 지금의 IT 산업은 지금처럼 커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20세기 초 영화 산업의 선도기업들이 ‘자행한’ 독점 행위로 인해 초창기 영화 산업이 휘청거렸던 것처럼 말이다.

에디슨의 특허괴물 MPPC

1886년 특허와 저작권법에 대한 베른 협약 이후 당시 최첨단 기술 중 하나였던 영화 산업에도 특허와 저작권 보호에 관한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있었다. 에디슨은 영화 촬영과 상영에 관한 주요 영화 원천 기술의 미국 내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토머스 에디슨과 특허괴물 MPPC에 참여한 회사들. 사진=timetoast 홈페이지 캡처
토머스 에디슨과 특허괴물 MPPC에 참여한 회사들. 사진=timetoast 홈페이지 캡처

영화 산업이 점점 커지자 에디슨은 이 특허를 무기로 미국 영화 시장을 장악하고자 했다. 1902년부터 에디슨은 미국 내 영화 관련 업체에 자신들의 장비와 필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특허 소송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상 영화 산업을 독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로 인해 경쟁자 입장에 있던 영화 제작자들은 에디슨의 특허 침해 소송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야 했다. 이를 버티다 못한 경쟁자들은 결국 에디슨에게항복 선언을 했고 에디슨과 협상을 벌였다.

1908년 에디슨은 코닥 같은 영화계 기득권 세력들과 함께 MPPC (Motion Picture Patents Company) 라는 회사를 만들었고, 이 회사는 이름 그대로 에디슨과 그의 동맹들이 보유하고 있는 ‘영화에 관한 특허’를 자산으로 하는 신탁회사였다.

에디슨은 그의 가장 큰 경쟁자였던 바이오그라프를 의도적으로 이 회사에서 배제했다. 에디슨 특유의 ‘이인자 죽이기’의 일환이었다.

계약서에는 영화 제작에 대한 모든 것을 MPPC가 세운 지침에 따를 것을 명했고 기술과 제작 공정에 대한 배타적인 기밀 유지를 요구했다. MPPC의 등장으로 인해 한참 급 성장중이던 미국의 영화 시장은 큰 혼란을 맞이한다.

MPPC에 참여한 회사들 에디슨과 10여개의 회사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사진=위키피디아
MPPC에 참여한 회사들 에디슨과 10여개의 회사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사진=위키피디아

MPPC는 시장 장악력을 키우기 위해 당시 중구난방으로 운영되던 영화산업을 그들의 입맛에맞게 재단했다. 우선 유통과 배급에 있어 기존의 판매 제도를 폐지하고 대여제도로 전환했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으로 결정되어 제작자마다 달랐던 영화 가격은 MPPC에 의해 균일화되었다. 일시적으로는 좋은 품질의 영화를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낮은 품질의 영화는 역으로 가격이 올라가는 효과를 낳았다.

MPPC의 입장에서는 출시되는 영화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받을 수 있는 로열티가 올라가기 때문에 영화의 품질은 큰 의미가 없었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의 길이도 제한했다. 영화의 길이를 1개에서 2개 릴 (10분~20분)으로 제한했다. 장편 영화의 출시를 원천적으로 통제한 것이다.

배우가 인기를 끌어 배우에게 권한이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배우의 이름이나 신원을 밝히는 것도 금지되었다. 이런 식으로 당시 모든 정책은  MPPC가 최대한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한 것에 집중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제작자들은 낮은 제작비로 많은 영화를 찍어내는 것을 선호하게 되며 했고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생산되는 영화의 경쟁력은 유럽 영화에 비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다.

에디슨을 피해 달아난 이들의 도피처, 할리우드

MPPC의 등장에 가장 고통받은 건 당시 전체 영화 제작자의 25%에 달했던 영세 독립제작자들이었다. 그들은 에디슨의 카르텔에 들어갈 역량도 부족했고, 바이오그라프처럼 그들에게 대항할 힘도 조직도 없었다.

MPPC가 카메라부터 필름까지 영화 제작에 필요한 모든 공정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고 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하자, 독립 제작자들은 벼랑끝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MPPC는 소유한 특허를 근거로 연방 공무원을 움직여 독립제작자들의 장비를 빼았거나 필름을 압수하는 등 일종의 사법권도 행사했고 여의치 않는 경우 그들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마피아같은 갱들을 동원하여 폭력을 선사하기도 했다.

많은 수의 독립 제작자들은 에디슨의 이러한 횡포를 이기지 못해 에디슨의 본거지인 뉴저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도피처를 만들었다. 바로 캘리포니아 해안의 작은 도시 로스엔젤레스였다. 제작자들은 이곳에서 할리우드라는 작은 마을에 터전을 잡았다.

에디슨은 결과만 놓고보면 ‘할리우드’라는 세계 영화의 메카를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출처=timetoast홈페이지 캡처
에디슨은 결과만 놓고보면 ‘할리우드’라는 세계 영화의 메카를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출처=timetoast홈페이지 캡처

할리우드는 이들에게 최고의 도피처였다. 우선 거리가 멀어 에디슨의 횡포로 부터 그나마 자유로울 수있었고고소를 당하더라도 해당 지역의 관할 법원이던 제9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특허 청구를 집행하는데 반감을 가지는 성향이 있었기에 조금은 시간 벌기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여차하면 100마일 만 더 내려가 멕시코로 살짝 도피했다가 금방 다시 돌아올 수 있기도 했다. 

영원히 미국 영화 산업을 독점적으로 지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MPPC의 체제는 10년도못 갔다. 결정적 계기는 1915년에 내려진 연방 법원의 반독점법 혐의였다.

하지만 이미 MPPC 체계는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필름을 독점적으로 보급하던 코닥이 MPPC 진영을 배신하며 독립 제작자들에게도 필름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독립제작자들의 양질의 영화가 시장에 깔리면서 반 MPPC 진영의 영화 시장 점유율이 33%이상 치솟고 이후 점점 에디슨의 입지는 약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산업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억압만 할 뿐 품질 관리나 해외 경쟁자들에 대한 경쟁력 향상에는 소홀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품질이 뛰어난 유럽 영화들이 미국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도 패망의 원인 중 하나였다.

그들의 가장 큰 패착은 로열티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시대의 흐름이었던 장편 영화를 규제한 것 이었다. 영화 산업이 성장하며 사람들이 더 이상 10분 20분의 짧은 영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기득권 보호를 위해 이 흐름을 따르지 못했다. 결국 MPPC는 특허라는 기득권으로 영화 산업을 독점하려 했지만, 결국 트렌드와 소비자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 내부로부터 붕괴해 버렸다.

몇 년 간의 짧은 권좌에서 할리우드라는 새로운 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주며 쓸쓸히 퇴장하고 한 것이다. 에디슨은 영화 산업을 만들었고 초기의 영화 산업을 선도했기에 영화 산업의 선구자로서의 찬사와 영예를 안을 수도 있었지만 혼자 시장을 독차지 하기 위해 만든 MPPC로 인해 영화계의 영원한 악역으로 남아버린 건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문동열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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