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연대기 II] ④ 니켈로디언의 시대-넷플릭스로 이어진 영화 유통의 역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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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연대기 II] ④ 니켈로디언의 시대-넷플릭스로 이어진 영화 유통의 역사 (상)
  •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 승인 2022.02.1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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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 대량 생산이 기본인 현대 산업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유통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더라도 소비자에게 제대로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제품은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영화 같은 콘텐츠들도 마찬가지다. 제작자가 만든 영화 역시 유통(또는 배급)이라는 단계를 통해 퍼지게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관객들은 영화를 만난다.

많은 사람들은 극장이나 넷플릭스에 걸리는 영화의 최종 단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과연 이런 영화들이 어떤 식으로 제작자의 손을 떠나 우리에게 도달하는지 잘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이 영화 유통의 단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일반인들에게 감춰져 있는 곳이다.

많은 관계자들은 이러한 영상 유통의 시장을 두고 ‘진정한 영화의 권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흔히 감독이나 배우 또는 스탭들에게만 관심을 둔다. 눈에 드러나는 빙산이 있다면 바다 밑에는 더 큰 빙산이 있는 법이다.

실제로 영화 유통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영화 유통은 당시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상황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며, 유통의 방향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가에 따라 그 당시의 미디어 권력이 바뀌기도 했다. 영화(영상) 유통의 역사에 OTT 시대 점점 치열해져가는 ‘미디어 콘텐츠 전쟁’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를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 (1894)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를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 (1894)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니켈로디언 이전의 시대

영화를 역사상 최초로 상영했던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가 한 때 스쳐 지나갈 신기한 과학 장난감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영화의 미래는 없으며, 지금이야 다들 신기해하겠지만 이 관심은 곧 사그라들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의 예상은 틀렸다. 뤼미에르 형제의 이 시도에 영감을 받은 조르주 멜리에스 같은 사람들이 이 양식을 보다 그럴듯한 엔터테인먼트로 바꿔놓으면서 영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이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바라보는 사람들 중 가장 적극적으로 이 사업의 성장성에 눈독을 들인 건 발명왕이라 불린 토마스 에디슨이었다. 에디슨은 초반만 하더라도 영화 산업에 회의적이었다. 키네토스코프라는 영업장 설치형 영화들이 좋은 반응을 얻자, 에디슨은 빠른 태세 전환을 보였고, 키네타그래프라는 카메라를 만들며 영화 산업에서 독점적인 영역을 구축한다.

초기 영화가 전문 영업장이나 보드빌 쇼의 막간 공연, 박람회장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20세기 초반 들어 영화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며 장편 영화라 불리는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영화 엔터테인먼트는 서서히 다음 단계로 성장해 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영화가 장편화 되기 시작하면서 키네토스코프같이 동전을 넣고 몇분간 볼 수 있게 하거나 보드빌 쇼의 막간 상영같이 끼워 팔기에는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지난 1901년에 있었던 보드빌 극장 공연자들의 파업이 있자 이를 계기로 영화의 단독 상영이 일어나게 되었고 보더빌 쇼보다 훨씬 나은 수익성에 눈을 돌린 극장주들이 영화만 상영하는 쪽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현대 대중 문화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현대 영화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보드빌 극장, 무대 공연과 함께 4편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간판이 붙어있다. 사진출처=cinephilefix홈페이지 캡처
현대 영화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보드빌 극장, 무대 공연과 함께 4편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간판이 붙어있다. 사진출처=cinephilefix홈페이지 캡처

니켈로디언의 시대

영화의 장편화와 함께 스토리 영화들이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영화를 독립적인 콘텐츠로 소비하는 관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영화만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영화관’들이 만들어진다.

1905년 경부터 시작된 이른바 니켈로디언 극장이 바로 그것이다. 니켈 즉 5센트 동전 1개로 입장 가능한 이 영화관은 영화의 소비 계층을 중산층에서 일반 노동자 계급까지 확산시키는 데 큰 일조를 했다. 이 시기 영화 유통은 보다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게 된다. 

니켈로디언 극장의 특징은 객석 회전성에 있다. 10분에서 1시간 이내의 짧은 시간 동안 계속 영화관을 돌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유치해야만 했다.

니켈로디언이 싼 입장료를 내세운 건 이러한 회전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보더빌 쇼같이 매 공연마다 공연자들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는 필름만 틀어주면 될 일이었다. 콘텐츠 단가가 낮은 만큼 굳이 큰 돈을 받을 필요가 없었고,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현대 시장의 OTT 서비스들이 지향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거기에 더해 니켈로디언 극장들은 영화 관람객들이 영화의 일상화를 가능하게 했다. 균일한 입장료로 인해 사람들은 고심하며 영화를 선택하기 보다는 그냥 심심풀이용으로도 극장을 찾게 된 것이다.

니켈로디언 극장은 영화 산업을 상대적으로 생산 기간이 짧고 유통비용이 저렴하여 생산자에게 더 큰 수익을 보장하는 값싼 영화를 만드는 데 주력시켰다. 거기에 더해 유통 시스템 역시 보다 대중화에 맞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영화 제작자는 영화의 상영 즉 배급이라는 유통 활동까지 같이 맡았다. 영화 필름 자체가 사진에서 파생된 만큼 원본 필름을 복제하는 기술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신들이 배급의 역할까지 도맡는 것이 보통이었다.

콘텐츠가 필요했던 극장주들은 제작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우편으로 필름을 구매하거나, 샌프란시스코의 헨리 마일즈 같은 전문 대여업자들에게 영화 필름을 대여하기도 했다. 이는 현대식 배급 체계와 유사한 형태로 극장주 입장에서는 필름을 일일이 구매하지 않고도 빠르게 영화를 회전시킬 수 있기에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고 이 대여 시스템은 현대 영화 배급체계의 기원이 된다.

니켈로디언 시대 당시의 흔히 볼 수 있었던 니켈로디언 극장, 1904년 경 촬영. 사진출처=pantagraph 홈페이지 캡처
니켈로디언 시대 당시의 흔히 볼 수 있었던 니켈로디언 극장, 1904년 경 촬영. 사진출처=pantagraph 홈페이지 캡처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유통의 구조 역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쪽이 주도권을 쥐게 마련이다. 초기 영화 시장에서 콘텐츠는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제작자 또한 많지 않았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만드는 족족 팔려 나갔고 영화 제작자들은 큰 수익을 만질 수 있었다.

이러한 수익성을 계속 지키기 위해 일부 영화 기득권 계층은 독점적인 체재를 만들었고, 이 결과 MPPC (Motion Picture Patents Company)라는 영화 특허 회사가 탄생했다.

영화 산업을 독점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등장한 이 영화 특허 회사의 등장은 영화 산업을 또 다른 방향으로 튀게 만들며 영화의 역사를 새로운 곳에서 만들어 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 시작은 바로 미 서부의 작은 도시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할리우드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계속)

●문동열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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