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보는 시각…“세속화가 위기를 불러왔다"
상태바
프랑스를 보는 시각…“세속화가 위기를 불러왔다"
  • 오피니언뉴스
  • 승인 2017.06.13 11: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레시안 기고문 두편…이병한 역사학자

 

프랑스판 '강남좌파', 그가 세상을 바꿨다고? (프레시안)

[유라시아 견문] 파리 : 앙시앙 레짐의 수도 <上>

이병한 역사학자

 

“응당 정권교체 너머 체제교체, 시대교체를 원했다. 그렇다면 판을 통째로 갈고, 말을 바꾸어야 했다. 말을 바꾸어 탄 것이 아니다. 내부자들이 상황에 즉하여 판을 바꾼 것이다. 적임자로 낙점된 이가 마크롱이다. 옛 술을 새 병에 담아 근사하게 포장했다. 마크롱도 '밤의 대통령'의 교시에 화답하여 '공화전진당'이라고 당명을 수정했다. '진보하는 공화당'의 출현에 기존의 진보/보수 구도는 교란되었다. 사회당 우파도, 공화당 좌파도 우왕좌왕했다. 판이 흔들리자 주류언론들은 쐐기를 박았다. 르펜을 트럼프에 빗대고 푸틴과 연결시키는 선전선동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 문화를 깔보고 러시아의 선거 개입을 우려하는 프랑스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다.”

 

68혁명 이후 세속화가 공화국의 위기를 불러왔다 (프레시안)

[유라시아 견문] 파리 : 앙시앙 레짐의 수도 <下>

 

“그래서 장래에 대한 전망 또한 대체로 어둡다. 2013년 르몽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75%가 프랑스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62%가 (그들이 뽑았을)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사르코지와 올랑드를 겪으면서 대통령에 대한 불신은 바닥을 쳤다. 2014년 사회통계에서는 1980년대 이후 태어난 30대의 삶의 수준이 한 세대 전에 비하여 17%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 30대 가운데 자식들의 미래가 본인들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응답한 경우는 9%에 불과하다. 과연 2000년 이후 나라 밖에서 직장을 구한 이들의 숫자는 160만까지 치솟았다. 고학력자, 특히 박사 학위 소지자 가운데 1/4이 프랑스를 떠났다. 능력이 된다면,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헬프랑스를 등지는 탈프랑스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배낭여행으로 처음 파리를 구경하며 감탄을 그치지 못했던 것이 1999년이다. 18년 사이, 격세지감이 어마어마하다. 우뚝 솟은 저 에펠탑이 피라미드라도 되는 양 19세기의 유물처럼 어릿해 보인다.”

 

“자연스레 두 나라의 대선을 견주어 보게 된다. 프랑스보다 한국의 대선이 훨씬 근사해 보였음은 비단 팔이 안으로 굽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2016-17년, 새 정치를 선보인 쪽은 서구가 아니라 동방이었다. 모자라는 지배자를 끌어내리고, 번듯한 지도자로 고쳐 세우기까지 철두철미 민간이 주도했다. 촛불이 앞에서 이끌고 정당은 뒤에서 따라가는 기특한 모양새가 수개월째 이어졌다. 80%의 견고한 집합의지=일반의지 속에서 20세기를 옥죄었던 좌와 우의 다툼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로움(利)을 쫓기보다는 의로움(義)을 추구하라 하셨던 오래된 가르침의 현현인 듯 보였다. 여/야의 대결보다는 공(公)과 사(私)의 대결, 사사로움/상스러움(俗)과 성스러움(聖)의 길항처럼 보인 것이다. 지난 겨울 이래 활활 타올랐던 촛불을 통하여 '다른 민주', '개신 민주'의 맹아를 보았노라 하면 현장감이 떨어지는 외부 관찰자의 오판일 것인가.”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