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만행 어찌 잊고, 그리스만 탓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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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만행 어찌 잊고, 그리스만 탓하나...
  • 김인영 발행인
  • 승인 2015.07.03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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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 배상하지 않은 독일, 도덕적 의무 망각

앙겔라 메르켈과 알렉시스 치프라스. 유럽연합(EU)의 맹주인 독일 총리와 국가 부도의 위기에 처한 그리스 총리다.

“구제금융을 달라.” “긴축정책을 하지 않으면 도와줄수 없다.”

두 총리의 발언이 연일 외신을 장식하고 있다. 채무국의 총리는 비굴해야 할 텐데, 오히려 당당하다.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들에게 유럽, 구체적으로 메르켈 총리가 요구하는 긴축재정안을 반대하라고 선동한다. 메르켈 총리도 지지 않는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 EU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는 앙겔라 메르켈(오른쪽) 독일 총리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연합뉴스

독일과 그리스의 대결은 단지 채권국과 채무국의 차원을 넘어서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 원죄는 독일에 있다. 그리스 인들이 메르켈을 나치에 비유하며 독일을 원망하는데는 그 이유가 있다. 그리스 사태를 이해하는데는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독일의 그리스 침공

독일의 침공에 앞서 주축국인 이탈리아가 두차례 그리스를 침공했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1940년 이탈리아군이 지나가도록 그리스가 길을 터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오니아스 메탄시스 당시 총리는 “노(Ochi, 오히)”라고 거절했다. 무솔리니가 즉각 침공했지만, 그리스는 험악한 산악지형을 이용해 이탈리아군을 막아냈다. 다음해 무솔리니가 다시 침공했지만, 그리스를 꺾지 못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무능을 개탄하고 뭔가 보여주겠다며 그리스를 침공했다. 그리스는 독일에는 이기지 못했다. 독일은 1941년 4월부터 1944년 10월까지 3년반에 걸쳐 그리스를 점령했다.

나치가 아테네를 점령한 날, 독일 장교는 ‘신들의 언덕’이라 불리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나치의 깃발을 달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국기 게양의 임무를 맏고 있던 그리스 군인 콘스탄티노스 코우키디스는 그리스 국기를 감싸안고 언덕 아래로 몸을 던졌다. 죽음으로써 그리스의 상징을 지켰던 것이다.

하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이 기간에 그리스를 철저하게 짓밟았다. 수도 아테네에서만 4만명이 살해되고, 30만명이 굶어죽었으며, 6만3000명의 그리스 유태인이 폴란드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됐다. 나치는 그리스 주민을 학살했고, 유태인들은 인종청소의 대상이 된 것이다.

▲ 그리스가 지하철등에 상영하는 나치 만행 영상. /연합뉴스

가장 극심한 예가 디스토모 학살이다. 2차대전 막바지인 1944년 6월 10일 델포이 인근 디스토모 마을에 나치 친위대가 급습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을 자행했다. 나치는 가옥과 상점들을 불태우고, 임신부의 배까지 갈랐다고 한다. 나치 독일군을 공격한 그리스 레지스탕스에 대한 보복이었다.

나치는 그리스 중앙은행에 난입해 강제로 전쟁차관을 얻어냈다. 그때 강탈해간 차관 가운데 지금껏 갚은 것은 한푼도 없다.

독일이 부역자를 중심으로 아테네에 괴뢰정부를 수립했지만, 그리스 저항세력은 산으로 도망가 게릴라전을 펼쳤다. 치프라스 총리의 시리자는 이 저항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2, 2차 대전에서 배상하지 않은 독일

1차, 2차 대전은 독일의 선제공격으로 발발했다. 전쟁이 끝나면 승전국은 페전국에게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물려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게 국제 관례다.

1차 대전후 미국과 프랑스등 승전국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체결해 독일에 1,320억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전쟁배상금을 물렸다. 영국은 독일의 식민지를 빼앗다. 전쟁 피해가 가장 심했던 프랑스는 알사스와 로렌을 되찾고, 독일 자르 탄광지대를 넘겨달라고 요구하며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독일이 물어야 할 배상금은 GDP의 몇 년치에 해당했다. 독일은 로스차일드 등 유태계 은행들에게서 돈을 빌려 배상금을 갚고, 화폐를 대량으로 남발해 금융 부채를 상환했다. 유태계 은행은 고금리로 이득을 얻었으나, 독일국민들은 자고나면 물건 값이 두배씩 뛰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독일 국민들은 나치를 선택했다. 나치는 배고픈 독일인들을 선동해 또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독일이 2차대전에서도 패배하고, 연합국들로부터 배상 요구가 나왔다. 하지만 그때 세계주도권을 장악한 미국은 독일에 전쟁배상금을 물리지 않았다. 냉전체제가 고착되면서 미국은 소련의 확장을 막기 위해 오히려 독일에 경제원조를 주는 마샬플랜을 적극 밀고 나갔다. 소련이 독일에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배상 요구를 묵살했다. 영국, 프랑스등 서유럽 국가들도 동유럽으로 확장하는 소련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의 뜻을 따라줬다.

전후 독일경제의 부흥을 의미하는 ‘라인강의 기적’은 미국이 만들어준 것이다. 유태인을 학살하고, 그리스 경제를 약탈한 독일은 전쟁배상을 면제받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고, 유로라는 단일 통화를 주도하며 유럽의 수장으로 부상했다. 이에 비해 그리스는 전후 내전의 홍역을 치르면서 경제 부흥의 기회를 잃고, 또다시 독일 주도의 유럽 경제권으로 참여했지만, 공동통화가 내포하는 수탈 구조의 희생양이 됐다.

3. 전쟁 배상을 요구하는 그리스

그리스 정부는 나치 정권이 2차 대전 당시 경제적으로 수탈한 대가로 2,787억 유로(약 330조원)의 배상을 요구했다. 치프라스 정부는 나치 정권이 그리스 중앙은행에서 가져다간 돈(전쟁차관)의 상환과 점령기간 약탈에 의한 피해 배상금을 합쳐 이같이 산정했다.

독일은 1960년 1억1,500만 마르크를 그리스에 배상금조로 지불했으므로, 배상금 문제는 일단락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1942년 3월 14일 그리스 중앙은행은 독일에 4억7,600만 라이히스 마르크(구 독일화폐)를 지불한다는 협약문서에 서명한 바 있다. 그동안 국제협약이 어떻게 체결됐는지 여하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그리스에게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할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스는 독일군의 아테네 침공 74주년을 맞아 지하철역과 기차역에 나치 만행을 담은 영상을 상영하며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50여초 분량의 이 영상에는 “우리는 잊지 않는다”는 문구와 2차대전 당시 나치가 그리스에 벌인 잔학상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겐 전쟁 배상금을 한푼도 갚지 않고 빚을 갚으라는 독일에 대한 역사적 감정이 강할 수밖에 없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5월 3일 나치 강제 집단수용소인 바이에른주 다하우 포로수용소 해방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는 독일 정부가 2차 대전에서 자행한 만행을 철저히 반성하고 있다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반성을 모르는 일본에 비해 알겔라 메르켈을 비롯, 독일 정치인들은 제스추어에 강한 것 같다. 눈물을 흘리고, 진정성을 담은듯한 언어를 구사하고...
하지만 전쟁 배상금을 갚지 않는 반성이 진정한 반성일까. 그리스 국민들의 분노와 원망에 동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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